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돌아와요 부산항

설리숲 2015. 3. 16. 22:34

 

 봄빛이 온 누리에 가득하긴 하지만 완연한 봄은 아니어서 동백섬의 동백꽃은 아직 덜퍽지게 벌어지질 않았다.

 

 부산.

 참 멀데이. 강릉서 버스 타고 에누리 없이 다섯 시간. 버스 시간만 왕복 열 시간이니 하루에 다녀오긴 어렵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비는 부산항에 없다. 생뚱하게 해운대 바닷가에 세워 놓았다.

 자타공인 한국 최고의 가수 조용필.

 그의 이 노래는 두고두고 회자될 노래다. 그가 대중 앞으로 나오는 최초의 노래이기 때문에 한국가요사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크다.

 조용필은 워낙 큰 산이기 때문에 섣불리 논할 수가 없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라야 그의 진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백섬과 동백꽃. 곧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것이다

 

해운대

 

 

 

오륙도

 

 


 

 

                    폴 모리 : 돌아와요 부산항에

             

 

 

 

 1975년 세밑에 내려진 가요규제 조치는 이른바 대마초파동을 부르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대마초 사범의 주요 과녁은 70년대 전반부를 지배한 뉴웨이브 기수들이었다. 이 불행한 명단에는 신중현, 김추자, 김정호, 이장희, 김세환, 하남석, 어니언스의 임창재, 정훈희, 이수미 등 당대 기라성 같은 대중음악가 20명도 포함되어 있다.
 도도한 기세로 진군하던 통기타와 록밴드의 백가쟁명은 일거에 울림을 멈췄다. 그 자리는 복고풍 구체제, 곧 트로트와 스탠다드팝이 차지하기 시작했다. 송대관은 <해뜰 날>로 오랜 무명의 설움을 씻었고, 밴드 보컬리스트 출신 최헌, 김훈, 조경수 등이 솔로 전향의 성공을 이루었다.

 야간업소 밴드 <그림자> 리더였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이 같은 팝트로트 태풍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이 노래는 한국대중음악사의 가왕 조용필에게 있어 어정쩡한 출세작이다. 음반사 요구대로 헐값에 취입한 이 노래는 그의 음악적 출발점이자 지향점인 로큰롤-리듬앤블루스와 거리가 있었다. 현대적 트로트 선율구조와 핵심을 상실한 리듬 패턴으로 이뤄진 텍스트는 바로 좌표를 잃어버린 4공화국 후반기의 매너리즘을 그대로 반영한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선풍적 인기를 얻은 감정적 배경 한 켠에는 76년 봄, 재일동포모국성묘단 귀향을 즈음한 누선공감이 숨어 있었다. 하지만 이 음반이 판매량에서 64년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 이후 한국 음반산업의 획기적 분기점을 기록하게 만든 결정적 원동력은 다운타운 음악다방과 나이트클럽, 그리고 대학가 학사주점을 한 줄로 엮었던, 현실과 미래에 대한 전망의 상실감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조용필 개인에게 영욕을 동시에 안겨줬다.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지만 이듬해 대마초 알레르기가 있는 그에게조차 대마초 가수라는 사슬을 씌운 단초가 됐다. 그리고 조용필은 궁정동에 총성이 울릴 때까지 3년 동안 활동금지 족쇄를 차고 영예와 인기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그 뒤 가요사가 말하듯 유신정권은 그로부터 노래할 권리를 잠시 빼앗았을 뿐 음악을 향한 열망까지 빼앗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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