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눈물의 연평도

설리숲 2015. 3. 2. 22:30

 

 

 

 멀고도 먼 절해고도.

 생각해 보면 이곳도 유배지로 적합한 섬인데 연평도에서 유형을 살았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일기예보에 반드시 언급되던 서해 5도.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라는 인식이 박혔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 바다에 어얼싸 돈바람 분다

얼싸 좋네 하 좋네 군밤이여.

에헤라 생율 밤이로구나

 

 

 군밤타령에 왜 연평 바다가 나오는 걸까. 아무튼 내게 연평도는 머나먼 미지의 세계였고 가고 싶어도 갈 수는 없을 것 같은 상상 속의 섬이었다.

 

 

 

 

 북한과의 두 번의 전쟁이 있었고 불의의 포격을 당했을 때 연평도는 공포의 땅으로 인식이 바뀌었다. 코앞에 북한 땅이 눈에 들어오고, 북한 쪽에서 보면 바로 코앞에 적의 군대가 주둔해 있는, 서로 불편한 형국의 애잔한 섬이다. 기실 이곳은 분단되기 전 황해도에 속한 섬이며 휴전선 이북으로 훨씬 넘어간, 지도상으로 보면 북한 땅이나 마찬가지다.

오늘도 이곳은 보이지 않는 곳곳에 적을 향해 포문이 살벌하게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다.

애젊은 청춘들이 꽃다운 나이에 사라져 간 비통의 땅이다.

 

 

 

 

 

 

 

 

 바다는 잔뜩 흐려 있었다. 햇빛 없는 바다는 두렵다.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심연의 바다.

 갈 수 없을 것 같던 그 나라, 막상 배를 타고 보니 좀은 싱거운 기분이었다. 별 것도 아닌 것. 배만 타면 가는 걸 그게 무슨 대수라고.

 멀고 먼 미지의 섬이라는 이미지와 전쟁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현실적인 이미지를 더불어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봤자 여기도 사람 사는 데고 사람 곳이면 어디나 다 거기서 거긴 것을.

 낙조가 아름답다는 연평 바다라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날씨는 찌푸리고 어두웠다. 일기예보는 다음 날에 비가 내린다고 한다. 저녁노을도 그렇고 아침노을도 글렀다. 생애 유일한 여행인데 날씨가 외면했다. 이것만도 다행이다. 전날에는 파고가 높아 아예 연락선을 띄우지 못했다.

 

 바다 위의 여행은 참 지루하고 재미없다. 이따금 섬이라도 보이면 좋으련만 흐린 날씨 탓에 그저 부연 해무뿐이다. 신비의 나라로 가고 있다는 환상을 가지면 그나마 좀 나았을까.

 

 

 

 

 

 

 

 

 

 선착장에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가 있다. 1959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태풍 ‘사라’로 슬픔과 고통의 바다가 되었다. 그 아픔을 노래한 대중가요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쟁의 아픔이기도 한 ‘눈물의 연평도’다.

연락선에서 수많은 사람이 쏟아져 내렸는데 어느새 다들 사라지고 파장한 장터처럼 한산해졌다.

 파시.

 이곳은 우리나라 최대의 조기어장이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뱃사람들이 몰려와 흥성대는 영광의 날들이 과거에 있었다. <군밤타령>에 어얼싸 돈바람 분다는 대목이 바로 연평도의 조기파시에서 나온 노랫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 마을에는 과거 영광을 회상하고픈 사람들의 염원이 곳곳에 보인다. 조기역사관도 있다.

 

 

 

 

 

 

 

 

 전쟁의 아픔 때문인지 거리와 골목은 새뜻하게 단장했다. 어촌답지 않게 깨끗하고 정갈하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프다. 상처를 지우려는 반증인 것이다.

 어느 특정한 구역이 아니라 마을 전체 담벼락이란 담벼락마다 벽화가 그려져 있다. 애잔하다.

 애잔한 감정만 빼면 사람 사는 동네다. 사람 사는 동네는 다 거기서 거기다. 설 연휴라 그런가 인적은 별로 없다. 이따금 병사들이 두엇씩 지나간다. 너무나 고요한 풍경이다.

 

 

 

날은 잔뜩 흐렸지만 이따금 구름 사이로 햇빛이 새어 나왔다. 심청이가 몸을 던졌던 인당수는 백령도의 인근 바다라고 한다. 백령도는 아니지만 지근 거리에 있는 이 바다 풍경을 보면서 심청이가 물에 뒤어드는 광경을 상상했다. 저 깊은 찬 바다. 무서웠다.

 

 '빠삐용 절벽'이라는 이름을 붙인 곳. 비슷한가?

 

 

 

 민박집은 등대가 보이는 곳이다. 햇빛이 없는 날씨 탓에 그나마도 희부옇게 멀다.

 아침에 일어나니 예보대로 비가 내린다. 바다는 온통 해무다.

 설 연휴다. 점포들이 죄다 문을 닫아 마땅히 사 먹을 데가 없다. 편의점이 둘이나 있다. 우산까지 사들고 뱃시간을 기다려 선착장으로 나간다. 전화로 확인해 보니 백령도는 바람이 세어 배가 운항을 안 한다 하고 다행히 연평도는 배가 들어온다 한다.

 

 

 

 

 

선착장과 섬을 연결하는 연육교 밑이다. 만조 때는 이 교각이 물에 잠긴다. 지금은 간조라 이곳으로 걸어 나갈 수 있다. 우산은 썼지만 바람이 거세 쓰나마나 옷이 다 젖을 판이었는데 이 교각이 제대로 구세주가 되었다. 문득 이곳에서 영화 한 장면 찍으면 좋은 그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연평도는 관광지는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사는 섬일 뿐이다. 애초에 큰 기대를 가지고 들어가면 실망한다. 그저 사람들, 우리와 같지만 생활환경이 다른 사람들의 억척스런 살림살이를 보려고 하자. 호기심이 아닌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말이다.

 

 

 

 

 바다 위에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바람은 불었지만 이상하게도 파도는 잔잔했다. 그날 바다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세계였다. 무섭기도 하고 황량하기도 했다.

 연평도에 다녀왔지만 나는 여전히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 같다.

 

 

 

 

 

 

 

              김남풍 작사 김부해 작곡 최숙자 노래 : 눈물의 연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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