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한류의 열풍을 몰아치게 한 것은 드라마 <겨울연가>다.
윤석호 감독의 계절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첫 번째인 <가을동화>가 크게 히트했고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지면서 그 관심과 열기가 희미해졌으며 마지막 시리즈인 <봄의 왈츠>는 거의 흥행 실패작이었다. 윤 감독 드라마의 내용과 패턴이 다 비슷해서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 여자 하나를 놓고 벌이는 삼각관계에, 한 남자는 원래 약혼녀가 있어 그 여자까지 가세해 4각관계가 되는 설정에,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출생 등 비밀이 얽혀 있고, 드라마를 대표하는 테마곡을 설정해 내내 배경으로 깔고, 동화 같다고들 하지만 동화라기보다는 현실과는 먼 만화 같은 상황전개 등 출연배우와 계절만 다를 뿐 다 똑같은 드라마다.
관광객이 밀물처럼 몰려들자 시에서는 준상이네 집 옆 공터에 주차장을 만들어주었다. 화장실까지 더불어.
일본에서는 겨울연가가 대박, 그야말로 폭풍이었다. 첫 번째인 가을동화는 일본에 수출되지 않았다. 만약 먼저 가을동화가 들어갔다면 한국에서처럼 겨울연가는 별로 흥행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용준 박용하 최지우 대신 송승헌 원빈이 그 위치에 섰을 것이다.
어쨌든 가을동화만큼은 아니어도 겨울연가는 그런대로 화제와 인기가 있었다. 당시 SBS에서는 <여인천하>가, MBC에서는 <상도>가 방영되고 있어서 채널권을 어른들에게 빼앗긴 젊은 시청자들은 대신 인터넷으로 들어갔다. 최고 접속률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겨울연가의 열풍으로 일본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 촬영지인 춘천은 대호황을 누렸다. 중앙시장과 명동거리에는 일본어 간판이 내걸리고 상점마다 엔카나 가부키음악들이 흘러나왔다. 거리에는 일본 여성들이 쓸고 지나다녔다.
특히 소양로 <준상이네 집>은 해외토픽에 나올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시에서는 이때다 싶어 준상이네 집 옆 공터에 주차장까지 만들고 공중화장실도 만들었다. 처음엔 공짜였으나 워낙 인파가 몰려들어 입장료를 5천원을 받았다. 아무 볼 것도 없는 평범한 집 입장료치고는 과한 요금이었으나 일본에서 온 사람들에게 그건 관심 밖이었다. 그들에겐 오로지 욘사마만 있었다. 아마 집주인에게 수익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더는 불편함을 견디지 못해 집주인은 그예 내방객을 차단하고 말았다.
지금은 안에 주인이 사는지 어떤지 대문이 굳게 닫혀 있고 철문은 녹이 많이 슬어 있다. 푸지게 내려 덮인 눈풍경만이 그나마 드라마의 분위기를 조금 풍겨 준다.
이곳은 춘천고 담장이다. 내 모교다. 드라마에서 준상과 유진이 담치기를 한 장소다. 그런데 이 담은 담치기를 하기엔 상당히 높다. 실제로 내 재학시절에도 이곳을 타넘는 학생들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졸업한 이후로 근처를 지나다니긴 했지만 교문 앞까지 와본 건 처음이다.
우리 학교 교육이념은 정도(正道)다.
정도. 바른 길? 학년초에 이것에 대해 얼핏 설명해주는 것을 들은 것 같기는 한데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뭐 별 귀담아 들을만한 것은 아니었나 보다. 어쨌든 글자대로 하면 바른 길이니 그럼 나는 지금껏 정도를 걸어왔나. 현재 이곳저곳에서 나름대로 사회의 주요 구성원이 되어 있는 동문들 동창들은 정도를 걷고 있을까를 잠시 생각해 본다.
나는 아니다. 그렇다고 비뚤어지고 삿된 길을 걷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정도(正道)는 아니다. 나는 비주류이고 아웃사이더이고 아나키스트다.
나는 학창시절엔 완벽한 모범생, 철저한 정도주의자였다. 많은 사람들이 학창시절을 그리워하고 추억하지만 나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때가 그 학창시절이다. 폐쇄 억압 소유 규정 복종 따위를 몸에 걸치고 견딘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묵묵히 그것을 인내하고 견디었다. 지나고 돌이켜보니 대견한 일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나는 모범생이었던 그때가 정말 싫은 것이다. 나는 범생이가 싫다.
명동거리
중앙시장
춘천은 눈에 덮여 있었다.
지금은 <겨울연가>의 열풍이 다 사라지고 없다.
여전히 남이섬에는 그 온기가 남아 있다. 욘사마도 지우히메도 여전히 인기가 높다. 욘하짱 박용하는 지금 고인이 되었다.
박용하가 자살로 삶을 마감했을 때 일본 아주머니들이 속속 입국하였고 TV연예정보 프로그램들은 연일 중점보도했다. 그녀들이 곡하는 소리는 듣기에 거북하였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죽음에 애통해하는 것까지는 이해하지만 직접 그 나라까지 날아가서 조문하고 애도할 정도란 말인가. 그렇게 비통하고 슬픈가. 나는 속으로 비아냥거렸다. 과연 저들은 제 남편이 죽었을 때 저토록 통곡할까 하고.
<겨울연가>의 주 테마곡은 영화음악의 귀재 프란시스 레이 작곡의 <하얀 연인들(13 Jours En France)>이다. 이 음악을 들으면 꿈속에서 허공을 날고 있는 듯 아련하다. 드라마에 제법 잘 맞는 선곡이란 생각을 한다.
오늘은 오카리나 연주곡으로 선택했다. 오카리나 특유의 음색은 더욱 몽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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