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었다. 흐드러지게 화사했던 벚꽃도 차츰 그 화양연화의 청춘을 보내려고 하롱거리며 지고 있던 날 밤이었다.
외등에 목을 매 죽었다. 내 집 앞이었다.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대도 정황상 나는 사망자의 지인이었다. 경찰서에서 나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에 의하면 사망 시간은 안날 밤 열한 시경이라고 했다. 목을 맸는데도 자살은 아니고 타살이라고 추정하면서 처음에 경찰관은 참고인이라면서도 나를 용의자로 지목한 눈치였다. 나는 안날 애인을 만나 술까지 하고 새벽이 가까워져서 돌아왔으니 알리바이는 확실했다.
그 시간에 그는 왜 거기 내 집 앞에 왔을까. 나를 만나러 왔을까. 하면 왜 거기 외등에 목을 매단 채 죽었을까. 우리 골목에는 방범용 감시카메라가 한 대 설치되어 있었다. 한데 그가 목을 맨 외등은 카메라의 사각지대에 있어 아무 것도 찍히지 않았다. 그가 나를 만나러 왔다면 당연 모습이 잡혀 있어야 했는데 여느 사람의 왕래는 다 보여 주면서 유독 그의 모습은 없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한적한 길이라 사람의 왕래랄 것도 기실 없었다.
단지 경찰이 추정한 사망 시각에 한 아가씨가 걸어가는 게 보였고 잠시 후 되돌아 나오는 것이 특이한 사항이라면 사항이었다. 화면의 아가씨는 크게 놀라 허둥거리는 모양새였다. 아마 외등에 매달린 그를 보고 혼비백산했으리라. 경찰에 신고한 사람이 그 아가씨였다. 그리고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확인되었다.
사건은 이렇다 할 증거나 단서도 없어 흐지부지 미제사건으로 종결되는 분위기였다. 아니 정확하게는 자살로 종결될 것이었다. 자살이라는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의 정신질환병력을 들어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단순히 정신질환을 앓았다고 자살이 가당한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그는 전혀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있지만 벌써 여러 해 전의 일이고 근자에는 거의 그 병흔이 없었다. 가끔 혼잣소리를 하고 그럴 때마다 주위에 누가 있는 것도 아랑곳없이 깊은 사색에 잠겨드는 행위가 좀 특이하긴 했다. 사색이라지만 거의 정신이 빠져나간 듯한 멍한 상태였다. 그럴 때 나는 자기 혼자만의 특별한 세계에 노닐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는 내 아는 사람의 먼 친척 동생이었다. 그 아는 사람도 굳이 친척이라고 할 수 없게 멀고 먼 그냥 아는 사이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됐고 그때는 그가 정신과치료를 마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아주 가끔 우리 집에 들러 아주 잠깐 앉아 있다가 가곤 했다. 나이도 한참 어려 거의 두 바퀴를 도는 띠동갑 수준이어서 사실 말상대로도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니 엄밀히 나는 그의 지인이랄 수도 없는 셈이었다.
내가 보기에 분명 자살은 아니다. 내가 물론 전문가도 아니고 더구나 명확한 근거도 없지만 난 확연히 안다. 그래 자살이 아니다. 그럼 누가? 왜 죽였을까.
그가 가끔 와서 잠깐 앉아 있다 가기 때문에 별로 많이 이야기를 해보지는 않았다. 달포 전쯤, 밤 기온이 제법 쌀쌀한 저녁에 여느 때처럼 불쑥 찾아왔다. 벚나무 가지를 꺾어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툭 터질 듯이 꽃망울들이 부풀어 있었다. 벚나무 가지 때문이었는지 다른 좋은 일이 있었는지 그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번져 있었다.
“아저씨. 벚꽃 피면 저랑 놀러 가실래요?”
늘 휑한 눈빛만 보던 그에게서 오랜만에 기분 좋은 감정을 느꼈다.
그러마고 대답을 하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서 그날은 좀 오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돌아가는 그를 현관 앞에서 배웅하며 슬그머니 장난기가 동했다. 어느 때 나이가 한창때인 그가 여자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야, 밤에 골목길 다닐 때 조심해야 한다. 넌 얼굴이 잘 생겨서 아가씨가 좋아한다고 달려들지도 몰라. 그럼 넌 무조건 소리 지르면서 도망가야 하는 거야. 왜냐면 그런 여자들은 보통 간을 빼먹으려는 거거든. 우리 때는 산에 진달래 꺾으러 가면 문둥이가 숨어 있다가 어린애 간을 빼먹곤 했었지. 그러니까 벚꽃 구경한다고 혼자서 그런데 가면 안돼.”
그리고 닷새 전에 그를 데리고 약속대로 밤 벚꽃놀이를 갔었다. 돌아올 때 그는 여느 때보다도 더 정신이 몽롱해진 것처럼 보였다. 우리 집으로 데려와서 어떻게든 기분을 달래주려고 했지만 별 신통한 방법이 없었다. 벚꽃놀이에 가서도 그의 시선이 아가씨들에게로 자주 가던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또 여자이야기로 은근하게 화제를 돌렸다.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나는 또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근데 너 잘 생각해 봐. 이럴 땐 어떡할 거니”
이러면서 내가 친 장난은 이런 거였다.
세상이 험악해져서 요즘 사람들은 너무나 불편하다. 허구헌 날 뉴스에 나오는 게 부녀자나 아동 성폭력이고 게다가 살인까지 저지르는 무지막지한 세상이 되니까 예전엔 사내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보면 뒤따라가서 샤바샤바 연애를 거는 게 낭만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결혼까지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한적하고 외진 데서 남자를 만나면, 아니 남자의 기척만 있어도 우선 무섭고 오금이 저리니 이성이 아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리하여 남자는 죄다 잠재적인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여자도 불편하고 남자는 더 불편한 세상이 되었다. 도처에 감시카메라가 없는 데가 없고 우리들의 사생활은 발가벗겨진 상태다.
“너 말이야. 만약에 밤에 외진 골목길을 가는데, 아 그래 맞다. 네가 우리 집에 올 때라 해두자. 근데 막 가고 있는데 저 앞에 여자가 걸어가고 있어. 그 여자는 막 무섭겠지? 그럼 무서워하지 않게 안심을 시켜야 하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그 여자를 앞지르려고 빨리 걸을까? 그럼 여자가 더 무서워하겠지? 그럼 천천히 걸음을 늦출까? 그럼 여자가 더 무서워하겠지? 그럼 빨리 걷지도 않고 늦추지도 않고 계속 거리를 유지하고 따라가면? 여자가 더 무서워하겠지? 아참, 어쩌면 좋니.
그 여자는 네가 어떻게 하든 무섭지. 네가 거기 존재하고 있다는 게 그 여자에겐 공포인 거야. 그럼 어떡하지? 네 존재를 없애야 하는데 순간이동이라도 할까. 그래서 잽싸게 움직여 담벼락 뒤에 숨어 버리면 그 경우 여자는 더 무서워지겠지. 아, 참 어렵다.
그럼 이건 어떨까? 평소에 주머니에 칼을 넣고 다니다가 그럴 경우를 만나면 스스로 죽어 버리는 거야. 네 존재를 없애야 하니까. 어때 재밌지? 근데 이 방법도 젬병이다 너. 그 상황에서 네가 칼을 빼들어 봐라. 온 신경이 뒤쪽에만 쏠려 있던 그 여자는 그 순간 얼마나 공포스럽겠어? 어휴! 상상해 보면 끔찍스럽다. 그러니 칼은 안 되고 대신 끈은 어떨까. 그냥 그 자리서 가까운 나무나 전봇대에 끈을 매고 목을 매는 거야. 우리 집 앞에 보안등 하나 서 있잖아? 그것두 괜찮아 보이던데……
그렇게 네 존재를 조용하게 없애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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