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방

뒷내 마을의 해바라기와 거머리

설리숲 2014. 9. 10. 22:57

 

 오늘도 그녀가 토마토를 놓고 갔다.

 비뚝비뚝 위태로워 보이게 혜영이가 걸어 나간, 문짝도 없이 설주기둥만 시늉으로 서 있는 대문을 바라보다가 영애는 후 한숨을 쉰다.

 아무리 봐도 혜영이는 천생 여자다. 맘씨 곱지, 살림 싹싹하지, 살갗이 가무잡잡한 게 그 미목이야 누군들 이쁘다 하지 않을 수 없고, 이웃 누구에게나 서글서글하니 웃는 낯으로 대하는 그가 영애는 새록새록 정겨워 가슴이 다 벅차다.

 다만 안된 것은 그 곱살스런 몸태에 다리가 한쪽이 짧은 건지 어쩐 건지 걸을 때 보면 비뚝비뚝 표나게 흔들리는 것인데 자신도 그걸 감추려고 두 다리에 힘을 잔뜩 몰아 버팅기며 무진 애를 쓰긴 해도 그럴수록 걸음걸이가 영 불안해 뵈곤 한다.

 그래 속으로 생각하기를 구태여 저렇게까지 신경을 쓸 건 뭐 있나, 그냥 생긴대로 어엿하게 걸으면 될 것을, 하고 영애는 볼 때마다 그러긴 했어도 한번도 입 밖에 내진 않았다. 하긴 본인이야 얼마나 초라떼고 부끄러우면 저럴까 하면 더욱 그가 안됐다. 평생을 그리 걸어야 할 처지임에랴.

 허나 걷는 게 남보기 약간 자연스럽지 못할 뿐이지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을 받는 건 아니니 그건 됐다. 한데 영애가 가장 안됐어 하는 건 그 남편이다.

 화물차를 끈다는 그는 겉보매 벌써 검침하게 생겼고, 실지 행투도 동네 가마리가 돼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다는 식으로 버젓하게 나다니는 작자이고, 그도 그럴 것이 부락민 거개가 농사꾼인 동네라, 한번 나가면 며칠씩 들어오지 않는 때가 수두룩한 그의 직업이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고 어울릴 일이 없으니 구태여 잘 보이려고 할 필요가 없는데다가, 궐자가 천생이 날파람둥이어서 제법 큰 돈뭉치를 만지는 때가 많아 오히려 그 입장에서 보기에 육장 땅이나 파고 있는 농사꾼들이 눈 아래 보이기는 할 터였다.

 그래도 특별히 동리 사람들에게 이렇다 할 패악을 부린 적도 없어 그저 이따금 고샅이나 방천 등에서 마주치는 게 전부여서, 그때 늙은이를 보아도 머리 한번 꾸벅하는 법 없이 뻗대고 지나치는 그를 뒤돌아서 버릇없는 놈이라고 중얼거리고 말 뿐 여지껏 별다른 마찰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보다도 우선은 그의 처가 워낙 싹싹하고 예모다운 사람이라 동리 사람 누구나에게 칭찬을 받고 있는 터이므로 그 덕에 그의 위상도 그리 낮게 떨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한데 그 작자를 떠올릴 때마다 영애는 아랫배에서 거위침 같은 것이 솟구쳐 오르는 듯 하고 몸을 주체할 수 없는 것이다. 기룡이 그 작자, 혜영이만 아니라면 당장 집어넣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영애는 혜영이가 놓고 간 토마토를 물끄러미 보다가 머드러기 하나를 집어 베문다. 손도 크지, 옹솥만한 플라스틱 바가지에 고봉처럼 수북이 담았다. 요 며칠을 혜영이는 하루 한 축씩 영애를 보고 가는 것인데 그냥 빈손이 아니었다. 첫날은 가지, 둘째 날은 토마토, 어제는 정순 언니가 준 거라며 클렌징크림 하나를 두고 가더니 오늘은 또 토마토를 가지고 왔다. 영애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한숨을 쉬는 것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는 걸 부득부득 가져다주는 그녀가 딱해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마음 고운 혜영이가 자신 때문에 속을 얼마나 끓이고 있을지 번연히 알고 있기에 사실은 영애 자신이 더 큰 상처를 받았음에도 외려 그녀 보기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이제 내일이면 집으로 갈 작정을 하고 있는 그녀는 다시는 여기 뒷내 마을에 오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씻어도 씻어도 개운하지 못하고 무지근하게 그것은 아랫배에서 몰캉거리고 있는 것이다.

 

 집에 가 봐야 여기 보다 나을 것도 없다. 어차피 남편과는 남남이나 마찬가지다. 이혼도장 찍는 일만 남았다. 그래도 새끼들이 있으니 가긴 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선뜻 궁뎅이는 떨어지지 않아 미적미적하다 보니 집 나온 지 벌써 달장근이나 되었다. 진작 훌훌 털고 떠나갔으면 이런 개같은 일도 안 당했으려니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지마는 그래도 생각할수록 한가만 새록새록 드는 것이다.

 "새끼덜이야 어채피 애비가 있으니 어디 니 차지가 되간. 그냥 연락오면 도장이나 찍어주구 내처 예서 살았으면 했다만. 니가 와 있으니 적적하지 않아 좋구먼. 허긴 머……"

 어젯저녁에 영애가 집으로 가겠다고 말을 냈을 때 그의 고모가 밥밑콩을 까다 말고 무릎걸음으로 다가앉아서 애원하듯이 그랬을 때만 해도 그 말이 귀에 솔깃해지지 않은 건 아니나, 잠자리에 누워 이렁저렁 생각해 보니 도저히 낯들고 여기서 살 수가 없겠는 거였다.

 동리 사람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날마다 혜영이 보기가 여간 거북살스럽고 딱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가 그럴진대 혜영이가 그를 볼 때면 또 얼마나 속이 불편하겠는가.

 혜영이도 그렇고 또 그 개 같은 기룡이를 본다는 것도 여간 진절머리나는 게 아니었다. 개새끼! 또 성철이를 생각해도 얼굴이 확확 달아오르고.

 그래 결국은 그 하나도 나을 것 없는 집으로 들어가는 게 싫지만 어쩔 수 없게끔 되었다.


 영애가 그의 고모 내외가 단출히 사는 이 뒷내로 온 것은 남편과의 의초도 이젠 정나미가 떨어질 때로 떨어져 더는 관계할 수 없을 만큼 끝이 보이는 터에 매사 사는 게 지질하고 더는 남편의 데면데면한 상판을 마주대하기도 지겨워 뱃덧이 나 늘 속이 그들먹하더니 흑임자같은 기미가 하나 둘 생기는 걸 거울 앞에 서서 들여다보고 있자니 한숨만 폭폭 나오고 시나브로 심화(心火)가 들기 시작할 때였다.

 마침 강릉 있는 시집에서 방학 들어간 애들을 보내라 하여 두 녀석들을 행장을 지워 버스를 태워 보내고 나니 이젠 남편하고의 단둘이라 문득 밥상머리에 앉아 생각지도 않은 말이 불쑥 나왔다.

 "나두 어디 좀 갔다 올게. 그 동안 생각 좀 정리하고"

 뭔 정리를 하겠다는 건지 자신도 흠칫 놀랐고, 뜬금없는 그의 말에 남편은 그러나 심드렁한 상판인 채 우적우적 김치만 한입 가득 볼각거렸다. 사실 변변히 어디 갈 데도 없어 그렇게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무엇하긴 했다.

 그래도 정 갈 데가 없는 건 아니어서 지난 봄에 뒷내 고모부가 원주에 나왔다가 그의 집을 들러 가면서 애들 방학하면 다들 데리고 오라고 넌지시 하고 가긴 했었다. 사실 친정도 없는 그녀에게 뒷내 고모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일가붙이었고 기실 뒷내는 그녀의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했다.

 그래 어디라는 말은 없이 갔다 온다는 몇 줄 간단한 쪽지만 남겨 놓고 떠나왔던 것인데 남편도 그 어디라는 거야 뻔히 알 테고, 사실 갑작스레 튀어나온 그 정리한다는 속종 역시 그리 생급스러운 것도 아니어서 영애나 남편이나 전부터 마음 속에 갖고 있던 것이었다.


 뒷내로 오자마자 영애는 혜영이랑 사귀었다. 혜영의 집은 영애 고모네 집에서 한 마장 되는 거리에 호젓하게 있었다. 집 주위에 묵정밭이 제법 있는 걸 거기에다가 씨를 심어 각종 남새를 가꾸느라 혜영이는 노상 밭에 나가 있는 걸 취미로 알았다. 하긴 그녀의 남편은 한번 나가면 며칠씩 집을 비우는 게 일상이고 네 살배기 미순이를 데리고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날마다 그의 집에 가서 한두 고랑 김도 매주고, 미순이를 앉혀 놓고 머리도 묶어 주고, 같이 수다도 떨다 돌아오곤 했는데 그 생활이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

 영애는 혜영이를 해바라기 같은 여자라고 생각했다. 꼭 그랬다. 늘 웃기 잘하는 그녀가 해사하게 웃을 때면 영락없는 해바라기가 되는 것이다. 특히 첫날 보았을 때 그녀는 짧은 반바지에 노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아마 그래서 더욱 그런지도 몰랐다.

 미순이가 영애를 잘 따라 간혹 아이의 손을 잡고 개천가로 나가 앙증한 다리를 씻어 주며 놀기도 하고 방아깨비나 여치를 잡기도 하고 한창 익어 붉은 물이 주르르 흐르는 멍석딸기를 배가 더부룩하게 따먹고 오기도 했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오면 혜영이는 땅호박을 따다가 전을 부치기도 하고, 국수를 삶아 놓고 외꼬부랑이를 썩썩 채썰어 냉국을 만들고 있기도 했다.

이런 생활에 빠져 지겨운 원주 집이나 남편을 싹 잊는 게 영애는 좋았다. 특히나 앞내 성철이를 만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처음에는 혜영이네 집이 호젓하게 있는 줄 알았는데 마루에서 벌레투성이 개복상을 먹다가 문득 개울 건너 산기스락 밑에 희끗한 것이 보여 무슨 무꾸리 집인가 하여 물어보니 그게 성철이 집이라고 혜영이가 그랬다.

 "저리 가까워 보여도 한 사십 분 걸려. 저 밑에 둔내다리로 해서 빙 돌아가야 되거든"

 개울가에는 망초와 달맞이꽃, 더위지기 따위가 엉크러져 메숲을 이루고 그 뒤로 미루나무들이 일렬로 죽 서 있어 평시엔 보이지 않다가 바람이 세게 불면 얼핏 그 집의 지붕 끄트머리가 보이곤 하는 것이다.

 실은 그녀가 뒷내로 오던 첫날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성철이었다. 동갑내기로 같이 자라다가 부모를 따라 뒷내를 떠난 영애와 달리 성철이는 줄곧 이 바닥에 붙박혀 있는 것이었다. 뒷내마을 들머리 격인 복찻다리를 건너고 저만치 첫집이 보이는데 부르릉 엔진소리 요란하게 등뒤에서 오토바이가 달려와 그녀를 지나쳐 휭 내빼더니 문득 엔진소리가 멎고 그가 오토바이에서 내려 그녀를 보고 섰는 것이었다.

 "너 영애 아니냐!"

 "어머!"

 그녀는 멈칫 섰다가 그가 예전의 성철이란 걸 알아보고 나서 까무라치듯 소리를 질렀다.


 성철이. 그와 마지막 만난 건 여고 삼학년 때였다. 영애는 원주에다 방을 얻어 학교를 다녔고, 한 달에 한번 꼴로 주말에 집에를 다녀갔다. 그럴 때면 오래 못 만났다 해후한 친구처럼 반가워하여 같이 어울려 지내곤 했는데 여고 삼학년 여름방학 때 그만 그로부터 어눌한 사랑고백을 듣고 말았다.

 사방에서 온갖 개구리가 울어 대는 논두렁길이었다. 비라도 오려는지 달무리가 허옇게 지고 유난히 후덥지근한 바람이 들판의 벼를 쓸고 와서는 단발머리 머리칼을 날리던  어두운 저녁이었다.

 "너 나랑 결혼하자"

 그가 더듬거리며 그렇게 말했을 때 그리 당황하지는 않았다. 아직 마빡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설마 진담으로 하는 말이랴 곧이 듣지 않았다. 원 싱거운 놈, 결혼이라니. 그렇게 가볍게 넘기고 말 일이었는데 달빛에 보는 그의 얼굴이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그가 손을 내밀어 영애의 손을 잡고 다짐이라도 받듯이 꼬옥 두 손으로 감싸 쥐었는데 그 느낌이 그리 호락하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걸 일깨웠다.

 슬그머니 손을 빼고 났지만 어쩐지 어색해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 했으나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질 앉아 맘 졸이다가 그만 애먼 달맞이꽃 대궁만 틱틱 분지르고 앉았었다. 다 지난 이야기다.


 영애가 뒷내로 오고 성철이는 매일 그녀를 보러 왔다. 이미 그녀의 사정은 다 알고 있는 터여서 제딴엔 위로한답시고 와서 들여다보고 가는 모양으로 처음에 영애는 혹 그가 아직도 자신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으나 가만히 보니 꼭 그렇지는 않고 진실로 옛 친구의 정의로 보이는 게 확실해 그제는 마음이 놓이는 것이었다.

 여러 날이 가도록 그의 방문을 받고 달가워만 했지 한번도 그의 신상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그만큼 영애는 자기가 안은 정황이 절실하긴 했다.

 한데 개울 건너 그의 집을 보는 순간 자신이 지극히 이기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집이 어딘지 마누라는 어떻고 애는 몇인지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더라면 하다못해 고모에게 물어서라도 알았을 것을 그제야 처음으로 그에게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가슴을 달막이며 어렵게 사랑의 말을 건넨 그에 대한 대접이 너무나 불성실했다. 내일은 그의 집이나 가볼까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도 미적거리며 성철의 집을 가지 못하고 며칠이 더 지난 어느 날에 처음으로 혜영의 남편을 보았다. 그날은 일요일이서 둔내 화장품공장 다니는 정순이가 먼저 혜영의 집에 와 있었다. 정순이라는 과부는 여덟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들어온, 혜영이보다 대여섯은 더 먹은 여자인데 둔내에 도도화장품 공장이 들어와 그를 따라 부러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 여자도 혜영이를 좋아하여 일요일이면 그네 집으로 와서 놀다 가곤 하는 것인데 자기네 공장에서 만든다는 화장품들을 들고 오는 걸 낙으로 여기는 모양이었다.

 영애도 그녀에게서 에센스 하나와 샘플 두어 개 받은 게 있거니와 자기는 공장에서 베테랑으로 쳐 주기 때문에 웬만한 화장품은 집에 갖고 가는 게 허용이 된다고 정순이는 야발스레 자랑을 늘어놓길 잘했다.

 그날도 교회를 다니는 혜영이가 돌아왔을 때를 맞춰 건너가니 정순이가 쇼핑백에서 립스틱 하고 자잘한 샘플서껀 내놓고 한동안 흥감하고는 자기가 생각나서 갖고 왔다면서 썬크림 하나를 영애에게 건네주며 자외선을 막아 준다나 어떻다나 생색을 내 보였다.

 그러고 있는데 혜영의 남편이 들어섰다. 그렇듯 그는 아무 때나 예고없이 불쑥 들어오는 사내였다. 정순이 자발없게 공중 일어나 신발을 꿰고 있는데 영애는 다소곳이 일어나 사내에게 인사를 할지 그냥 갈지를 몰라 하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얼떨결에 고개만 끄떡해 보이고는 정순이를 따라 대뜰로 내려서는데,

 "아 왜들 가세요 더 놀다 가시지"

 기룡이 돌아보며 말하는데 입에서 훅하고 인내와 문뱃내 섞인 역한 냄새가 끼쳤다. 뒤도 안보고 마당을 지나 나오는데 등뒤가 선득하니 여간 불쾌하지 않았다. 그 집에서 나와 꽤 멀리 왔는데도 그 사내의 눈길이 여전히 따라오듯 한 기분에 어깨를 한번 추썩여 털어 내고 힁허케 집으로 왔다.


 영애가 성철의 집으로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사흘인가 뒤의 일로, 그러니까 닷새 전이었다. 사람을 삶으려는 듯 물쿤 날씨가 여러 날 계속되고 있었다.

 남편이 나가지 않고 있어 혜영의 집엔 가지 못하고 대신 그녀가 얼가리 배추나 꽤 투실한 가지를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 가지고 와서는 잠깐 있다가 가곤 했다. 그날은 혜영이 대신 미순이가 쪼르르 들어와서는 봉숭아물을 들여 달라고 발음도 제대로 안되는 입을 종깃거리는 게 귀여워 봉숭아 꽃이파리를 따다가 손절구에 착착 찧어서는 파란 봉숭아 잎으로 처매 주니 아이는 신이 나서 또 쪼르르 제집으로 달려갔다. 그러고 나니 또 심심해져서 언뜻 성철이를 생각해 낸 거였다.

 그래 둔내다리를 건너서 앞내 그의 집을 찾아가는데 등골로 땀은 흐르고 길바닥의 모새에서 열기는 훅훅 얼굴로 끼쳐 쉬다 말다 자축자축 가는 길, 미루나무에서 참매미와 쓰름매미들이 그악스럽게 울 뿐 산천이 죄다 지쳐 조는 뜨거운 오후였다.

 왼편으로는 개울이 있고 미루나무가 죽 서있어 뒷내마을과는 단절돼 있고, 오른편으로는 논다랑이가 산기슭과 맞닿아 있는 호젓한 길이었다. 이따금 발치에서 송장메뚜기가 날아올라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며 걷다가 그녀는 흠칫 발을 멈췄다.

 저만치 미루나무 그늘 아래 웬 사내 하나가 앉아 있는데 보니 기룡이었다. 죽 그녀를 보고 있었는 모양이었다.

 사람마다 느껴지는 감정도 가지가지여서 그럴 이유도 없는데 기룡이 그 사내를 보는 순간 왠지 께적지근하게 켕기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되돌아가기도 뭣하고 해서 잔뜩 얼어 그 앞을 지나치는데 가슴은 두근거리고 오금이 졸밋졸밋 하는 게 오줌까지 마려워졌다.

 "어찌 사람을 보고 아는 체도 안해요?"

 그가 불러 세웠다. 선뜩 몸이 굳어졌다.

 영애가 마지못해 돌아서 시늉뿐인 고갯짓을 하니 그가 시물시물 웃었다.

 "멱감으러 나왔소?"

 흐물거리며 웃는데 영 정나미가 떨어졌다.

 "나도 멱감으러 왔는데 등 밀어 줄 사람이 없어 이러고 있는 거요"

 노골적으로 느물거리는 게 안되겠다 싶어 내처 가야겠다 하면서도 왠지 잘 안 되는 것이었다.

 "내 등 좀 밀어 주실라우?"

 별 미친 놈. 겨우 뒤돌아 발자국을 떼려다가,

 "어이, 영애 씨!"

 아무래도 사내가 곱게 보내 줄 것 같지 않을 성 싶어 똥줄이 당겼다.

 "제가 지금 갈 데가 있어요"

 겨우 떨리게 한마디 던지고는 몸을 돌려 몇 발자국 걷는데,

 "성철이한테 가쇼?"

 그러거나 말거나 다리에 힘을 주려는데 틈을 주지 않고 그가 소리쳤다.

 "벌써 바람난 모양이구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이혼도 안한 여자가 그럴 수가 있나"

 욱 구역질이 났다. 미친놈 멋대로 지껄여라.

 그러나 영애는 얼마 못가 그에게 붙들리고 말았다. 그가 뒤쫓아와 그녀의 어깨를 낚아 세우더니 홱 잡아챘다. 중심을 잃고 휘청하는 걸 길옆 개망초 풀숲으로 밀어 제쳤다. 어, 소리도 못하고 그만 영애는 풀더미 속에 넉장거리로 처박히고 말았다.

 "그리 사내가 궁하면 멀리 갈 거 뭐 있어"

 사내의 음탕하게 뇌까리는 말소리를 들으면서 그러나 영애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논 옆으로 도랑인지 옹당인지 그리로 머리가 처박혀 버려 허리와 다리만 버둥거릴 뿐 꼼짝도 할 수 없는 거였다.

 눈을 감았다. 귓가에 풀더미 스삭이는 소리가 났다. 아예 체념하여 그대로 축 늘어지려는데 깜박 하는 사이 시간이 몇 초나 지났는지 가늠도 못하게 정신을 놓아 버렸다.

 사내가 무게를 실었다고 느끼는 순간 억, 그가 낮은 비명을 냈다. 이어 그의 몸이 영애의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성철이었다. 그가 사내를 삽자루로 내려갈기고 있었다. 기룡이는 미처 대거리도 못하고 길바닥에 널브러진 채 비명을 흘리며 꿈틀댔다.


 그런 일이 닷새 전에 있었다.

 기룡이 그 인간이 죽이고 싶도록 밉지만 더운 여름날에 가칫한 입술을 해 가지고 병원에 드나드는 혜영이가 너무나 안됐어서 영애는 그만 잊어버리자, 미친개한테 물리려다 말았다고 풀쳐 생각했다.

 그날 얻은 타박상이 아직 목덜미에 남아 욱신거리긴 하지만 곧 사라질 테고, 휘지른 블라우스는 태워 버렸고, 무엇보다도 변을 당하지는 않았으니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다만 혜영이 보기가 피차 민망하고, 성철이 보기도 역시 그렇고, 미순이년 대하기는 왠지 더 부끄러워 아무래도 곧 원주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애들 개학도 다 돼 간다.

 병원을 드나드는 틈틈이 혜영이가 찾아와서는 거듭거듭 미안타고, 아픈 덴 다 나았느냐, 제발 용서해다고, 그 인간이 원래 그런 인간이 아닌데 그때는 더위를 먹었나 보다고, 내 얼굴을 봐서라도 좀 너그럽게 봐 다고 한 얘기 또 하고 한 얘기 또 해 가며 개개빌고 하는 것인데 그녀가 그렇게까지 안 하더라도 이미 속마음은 다 덮어 두기로 한 이상 이제 떠나는 것만 남았다고 영애는 거듭 다짐한다.

 아까도 빨간 토마토를 한 바가지 수북이 담아 와서는 미안하다고 며칠을 두고 한 얘기를 또 늘어놓고 갔다. 이제 됐으니 그만하라고 해 놓고는 마음에도 없는 안부를 물었다.

 "미순 아빠는 좀 어때?"

 그게 또 고마운지 그네의 눈이 풀렸다.

 "머 그리 대단치는 않아. 기껏 타박상인데 머. 머리가 약간 깨진거는 더 금방 낫는대"

 그리고는 '고마워' 하며 영애의 손을 붙잡아 흔들어 주고는 비뚝비뚝 대문을 걸어 나갔다. 그네의 위태로워 보이는 뒷모습에 영애는 짠해진다. 성철이 문제도 혜영이가 그 위태로워 보이는 걸음걸이로 경찰서를 뛰어다니며 뒷갈망을 해낸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혜영이만 피해를 입은 꼴이다. 그런데도 그가 혼자 동분서주 위태로워 보이는 다리를 끌고 애쓰고 다니고 있는 거였다. 그녀가 또한 성철이를 찾아가서 빌고 읍소하고 했을 것을 생각하니 기룡이 그 인간이 미운만큼 영애는 더 그녀가 안쓰럽다.

 내일 가야지. 영애는 혜영이가 두고 간 토마토 바가지를 마루 굽도리에 밀어 놓고 일어선다. 성철이에게로 가 볼 참이다. 무엇보다도 그가 궁금했다. 그날 이후 한번도 그를 보지 못한 것이다. 혜영이더러 물어 보긴 차마 못해 내일 떠난다는 인사라도 할 겸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 할 것 같다. 혹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혼자 마음 상해 머리 싸매고 드러눠 있는지도 모르지. 영애를 구해 준 은인이다. 진작 찾아 가 봤어야 할 걸 영애는 또 얌통머리없는 자신을 탓한다.

 벌써 해가 기울어 화단의 접시꽃이랑 풀협죽도가 긴 그림자를 마당에 그어 놓고 있다. 대문을 나서려다가 문득 배나무 옆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온다. 한창 노랗게 벌었다. 그리로 걸어가 앞에 서서 쳐다본다. 혜영이를 닮았다. 그래, 그는 해바라기다. 남편만 아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긴 부부 띠앗머리야 누가 감히 건드릴 수 있을까. 다 제짝이 맞기 마련이니 궁합이 좋아 백년행락하면 그게 젤이지.

 

 둔내다리를 건너 성철에게로 가다가 전날 변을 당할 뻔 했던 데를 지나친다. 개망초가 어지러이 쓰러지고 얼크러져 그날의 매닥질이 선히 보이는 듯해 눈살이 찌푸려진다.

 성철이는 집에 없다. 밭에라도 나간 모양으로 문지방에 후줄근히 바지가 하나 걸쳐 있고, 방금 먹다 만 옥수수에는 새카맣게 파리 떼가 달라붙어 포식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같은 뒷내에 이웃하여 살았다. 원래 개천이 둘이 흐른다 하여 두내란 이름이 붙었고 개울을 사이로 앞내 뒷내로 구분지었다. 인총은 뒷내에 몰켜 살았고 여기 앞내는 밭을 가진 임자들이 원두막 따위의 우덜거지나 세운 정도였다. 지금도 앞내에는 성철이 집 하나 밖에 없다. 

 '여편네 내빼 버리고 챙피해서 그랬는지 그리로 후딱 건너가드라. 그리곤 뭐 혼자 어떻게 뭘 끓여 먹는지 어떤지 생전 못 봐. 그래두 야 니가 오니까 뻔질나게 오는 거 봐라' 고모가 제법 동정하면서 성철이를 그렇게 말했다.

 머리를 들이밀고 부엌 안을 둘러보니 옹색한 대로 제법 깔끔하게 정리를 해 놓았다. 주전부리라도 있을까 하여 냄비도 열어 보고 살강도 올려다보고 했으나 뭐 하나 마땅한 거는 없고 냄비에 먹다 남은 호박국이 골막하고, 김치냄새 풍겨 나오는 냉장고 안에 반불겅이랑 풋호박이랑 제멋대로 얹혀 있고 수들수들한 배추잎도 몇 장 있다. 밥이라도 안쳐 주려고 열어 본 밥통엔 김빠진 찬밥이 가득 들어 있어 그것도 그만 둔다.

 산그늘이 내린다. 지게에다 산같이 물거리를 동여 싣고 성철이 들어선다.

 "나무 해 오는 거 보니 어디 아프진 않은 모양이구나"

 영애가 문지방을 넘으며 수럭수럭하게 반겨 나온다. 꿈벅하고 그녀를 한번 보고 나서 성철이는 다닥다닥 목이버섯 붙은 울타리께로 가서 펄썩 지게를 내려놓는다. 울밑은 벌써 어둡다.

 그래도 재주 좋게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마당으로 끌어들여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듣기 좋다. 허푸대고 세수를 하는 성철이를 문지방에 앉아 멀끄러미 보자니 참으로 안돼 보인다. 갈라면 번듯한 도시에라도 나갔으면 좋았으련만 이렇듯 굴왕신같이 옹색하게 살 건 뭐 있나.

 "어 시원하다. 어째 왔어?"

 영애가 내준 수건을 받아 들며 그가 비로소 첫말을 낸다.

 "너 왜 이렇게 사니? 이게 뭐야"

 "밥 안 먹었지? 있어 봐, 반찬은 없어도 한 술 먹자"

 빙그레 웃으며 부엌으로 들어가는 그 뒤에다 대고

 "야! 부엌에 가 보니까 뭐 먹을 맛도 안 난다야"

 퉁박을 주고 따라 들어간다.

 울타리에서 새로 호박을 따다 볶고, 파를 뽑아다 절임을 해 놓고, 지게 윗세장에 매달고 온 손가락만한 더덕을 벗겨 된장과 더불어 올려 그런 대로 먹을 만한 밥상을 물리고 나자 날은 꼴깍 어두워졌다.

 옥수수를 쪄 둘이 앉아 뜯는다. 모기향이 매캐하게 목구멍을 찌른다.

 "나 내일 간다"

 문지방 바로 아래서 귀뚜라미가 우는 걸 듣다가 어느새 여름이 가는 걸 생각한다.

 "난 말이다"

 혼자 소주를 따라 홀짝 넘긴 뒤에 입술을 쓱 문지르고 나서 그가 주절거린다.

 "이리 궁색하게 살아도 누구한테 신세 한번 진 적 없어. 내 한몸 건사하는 건 별거 아니란 말이지. 사실 말이지 나도 여기를 뜨고 싶다. 진절머리가 나. 떠나서 아주 더 외진 데 가서 살았으면 하고 요새 부쩍 그런다"

 뒷내에서 홀어미를 여의였고, 장가들었던 여자가 도망가 버렸고 손바닥만한 밭뙈기 하나 보며 사는 것도 한심하고 그러니 정이 떨어지기도 하겠지.

 "장가를 가야잖어"

 영애가 그랬는데 그 대꾸는 없이 성철이는 제 말만 주워섬긴다.

 "당장이라도 갈라면 갈 수 있어. 아냐 아니지. 갈 수 있다고 모질게 마음먹고 막상 떠나려고 하면 그게 잘 안된단 말이지. 자, 니가 한잔 따라 줄래?"

 그가 잔을 내민다.

 "사실은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 가고 싶었지. 그땐 혼자 계신 어머니 땜에 못 갔고. 그 다음엔 여자 땜에. 그런 여자가 있어"

 그건 나도 알아.

 '준영 아부지가 중신을 섰잖냐. 어서 그런 걸 데려 왔는지 원. 아 글쎄 몸에 음창이 난 여자였더란다. 그년두 그래, 지가 그런 병이 있으면서두 시침 딱 띠구 들오와 살아? 하긴 지가 먼저 싫다고 내빼긴 했지만서두. 한군데 얌전하게 있을 년이 아니야. 진작에 잘 갔지 그럼. 그래두 성철이 갸가 꽤나 상심하긴 하더라만 잘 간거야' 고모의 말이다.

 "그 여자 땜에 여적지 못 가고 있다"

 그의 눈가가 벌겋다.

 이런. 영애는 기가 막혔다. 겨우 반 년 살았던 여자, 그것도 고송 든 여자 하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이러고 산다니 이런 들떨어진 자식이 어딨나 그래.

 "남의 신세 안지고 혼자 산다고 뻥은 쳤지만 실은 그 여자한테선 도망 나올 수가 없었거든. 거머리야 그것도 찰거머리. 떨어지질 않아"

 주사라도 부리듯 횡설수설하는 말이 종잡을 수 없다. 얘가 뭔 말을 하는 거야. 영애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여는데 그가 틈을 주지 않고 연해 주절거린다.

 "그런데 인젠 진짜 마음 독하게 먹었다. 가야지, 그래 이젠 가야지. 너를 봤으니……"

 이건 또 뭔소리야.

 "이제 그만 마시자. 나 갈께"

 말로만 간다 하면서 영애 궁둥이는 움직일 생각이 없다.

 "영애야!"

 "……"

 "넌 왜 내가 싫었니?"

 "고려적 얘기 하면 뭐해"

 "그렇지. 그래,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너 그렇게 가고 난 다음에 이 둔내가 그렇게 정이 떨어지더군. 근데 홀로 계신 어머니 땜에 못 가고 그 다음엔 여자 땜에 못 가고…… 아참 그 얘긴 아까 했나"

 영애는 그가 안쓰럽긴 해도 이제 와서 미안함이나 죄책감 따위는 가질 필요가 없겠다 싶어 부러 생글거리며 그의 머리를 쥐어박는다.

 "너 아직도 나 못 잊고 있니. 이 빙신아! 히히히"

 "어쩌면 아마 너 때문에 여길 떠나지 못한 지도 모르지. 그래, 그럴지도 몰라"

 그러더니 갑자기 무릎을 탁 친다.

 "옳지! 그래 바로 그거다! 지금 막 생각난다. 떠나고 싶은데 아마 널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맞아! 사실 그 찰거머리 여자도 실은 핑계일지도 몰라. 그렇구나 그래서 널 보니 이젠 한이 풀린 셈이다. 너 한번도 안 왔잖아"

 마치 대각(大覺)이라도 한 양 성철이는 소리나게 손뼉을 치며 해죽댄다.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영애는 시계를 본다. 이제 여덟 시가 좀 지났건만 밤은 한참 깊은 것 같다.

 "니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또 내가 감히 말할 건 못 되지만 말이다. …… 한잔 할래?"

 그가 쑥 잔을 내민다. 더뻑 받는다.

 "너 이혼하지 마라. 몰라 더 이상은. 그냥 그게 무조건 진리인 것 같다. 하나님 말씀에 토를 달 수 있겠어? 히히히 나 교회 다닌다. 그 여자 땜에 나가는데 그것두 이젠 때려칠거구"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다. 여태껏 그 반 년 살다 갔다는 여자로만 알아들었건만 성철이가 말하는 찰거머리라는 그 여자는 또다른 사람임이 헤아려지는 것이다.

 "자, 한잔 받아. 히히! 내 첫사랑. 아니지. 지금도 사랑하는 영애씨. 히히히"

 술취한 척 한껏 실떡거리기는 해도 그게 가볍게만은 보이지 않아 영애는 또 짠해진다. 내일 가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

 "낼 간다고? 이젠 언제 볼 날이 없겠구나. 나도 가을걷이만 하면 여길 뜰 생각인데……"

 금방 또 멀쩡한 얼굴로 돌아와 있다.

 "장가는 아예 안갈 셈인가?"

 "히히히 이혼하기 싫어서…… 다 귀찮아"

 바람이 부는지 뒷숲이 쏴아 요란하다.

 "오랜만에 손 좀 잡아 보자"

 성철이 손을 내민다. 피식 웃으며 마주 내밀어 손을 잡는다.

 "이 손이 말이야. 옛날에는 세상에서 나만 만지는 손일 줄 알았다구. 아직도 곱구나"

 두 손을 다 그에게 맡긴 채 영애는 묘한 기분이 든다. 남자의 첫사랑은 평생을 간다더니 이 등신 같은 자식은 아예 끌어안고 사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때 성철이를 향했더라면 하는 별생각도 든다.  자기가 이혼하면 이 친구가 혹 받아 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뒤잇는다. 터무니없는 망상이라도 그리 싫지는 않다. 그때도 이렇게 손을 잡고 프러포즈를 받았었다.

 아 가버린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도 나는 언덕에 올라 그대를 그린다.

 흐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빼려 하나 그가 놓아 주지 않는다. 벽에 늘어진 전깃줄을 타고 노래기 하나가 기어오르다 툭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젠 이별이구나 첫사랑.

 그때, 벌컥 문이 열린다. 야릇한 방안의 정경은 삽시간에 파괴되고 사방 울어대던 귀뚜라미소리도 딱 멈췄다. 정적이다.

 

 저렇게 무서운 얼굴이 또 있을까. 영애는 너무 놀라 꼼짝할 수가 없는데 공포의 그 눈빛을 즐기기라도 하듯 우뚝 서서 방안의 남녀를 들여다보고 섰다. 혜영이다. 가무잡잡한 얼굴이 저렇듯 퍼럴 수도 있는가.

 "놀고들 있네!"

 야차다. 아니 혜영이다. 시퍼렇게 눈빛을 이글거리고 서서 신음하듯 내뱉는다. 입술이 파르르 떠는 게 방안에서도 역력히 보인다. 영애는 아는 체 할 짬수도 없이 얼혼이 나 그대로 굳은 듯 했다. 야차가 따로 없다. 저게 바로 야차다.

야차가 문지방을 넘어 들어온다. 위태로워 보이는 한쪽 다리가 보기에 더욱 선득했다. 입술만이 아니라 손도 바르르 떨고 있다.

 

 "익!"

혜영이 기괴한 비명을 내지른다. 내지른다기보다 신음처럼 흘린 그 소리는 그러나 사람의 간담 깊숙이 피고 들어 서늘하다. 세상에 나서 처음 들어보는 무섭고 소름끼치는 괴성이다.

 "개새끼!"

 손을 부르르 떨고 선 채로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게 예의 신음처럼 괴성을 흘렸다.

 그제야 잡고 있던 영애 손을 놓고 성철이가 천천히 움직여 일어난다.   그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움직임이 굳었다. 말없이 팔을 돌려 혜영이를 돌려 세우려는데 홱 하고 그녀가 손을 뿌리친다. 또한번 팔을 두르다가 놔! 하는 괴성과 함께 혜영이가 그를 밀친다.

 "집에 가. 내가 데려다 주께"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는 그러나 싸늘하다.

 "이 새꺄, 먼 개지랄야! 죽여 버릴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성철이 우악스레 그녀의 허리를 감아 문지방으로 끈다. 끌리지 않으려고 버티려 하지만 두 발이 질질 끌려간다. 그러나 문밖으로 끌려나가지 않을 요량으로 그녀는 문지방을 끌어안고 버티며 악다구니를 친다.

 "안가! 니가 죽든 내가 죽든 어디 한번 해봐 해 보라구! 내가 널 가만둘 줄 알아! 누구 덕에 살면서! 내 배위에 올라타서는 좋다고 히히덕거릴 때는 언제구 니가 이러믄 안되지. 내가 널 그냥 보낼 줄 알아? 넌 아무데도 못가. 내가 어떤 년인데 김히 나를 띄어 놀라구. 그래 죽여! 나도 죽구 너도 죽구, 그래 죽여!"

 문지방을 끌어안고 버티는 데는 남자 힘도 별 도리가 없는지 성철이는 어처구니없다는 면상을 하고 서서는 쉴 새 없이 왜장쳐 대는 여자를 내려다보고만 있다.

 한참을 눈물과 콧물을 짜며 악다구니를 치다가 그것도 잦아지더니 그녀의 눈이 방구석에 오도마니 서 있는 영애에게로 향한다.

 "그럴 줄 알았지. 드러운 년. 내 서방한테두 꼬리치더니 그래 이젠 성철이야? 나하구 먼놈의 웬수가 졌다구 개지랄야! 첨부터 알아봤지. 오죽하면 이혼을 당하겠어, 그렇게 사내를 밝힐 거면 양갈보라두 나가지 여긴 왜 기어들어와서 화냥질이냐구!"

 "씨발년!"

 보다 못한 성철이가 꽥 고함을 내지르며 그녀 허구리를 냅다 발길질했다. 새된 비명소리가 나고 영애는 그저 주저앉는다. 툭! 해바라기 꺾어지는 소리가 났다. 툭 투두둑, 정신을 못 차리게 고모네 뒤꼍 해바라기가 죄다 부러지고 있다.

 

 저게 미순 엄마냐. 저게 혜영 씨냐.

 

 혜영이가 문지방 밖으로 질질 끌려 나간다. 그리고 풀썩 태질치는 소리가 난다.

 "제발 니 상판때기 안봤으면 좋겠어 씨발년. 넌 거머리야 거머리. 아주 질긴 찰거머리야. 내가 너한테 빨린 피가 을만지나 알아! 에이!"

 성철이의 악다구니에 이어 새된 비명소리가 들리고 또다시 여자가 고래고래 뭐라고 악장을 친다.

 

 이젠 가야지.

 가야지.


 영애는 어정어정 일어나 마당으로 나선다. 마당 어둠 속에 혜영이가 뒹굴며 짐승같은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영애는 올래를 나서며 하늘을 쳐다본다. 까만 여름밤 하늘에 별은 참 많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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