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그 젊은 여자가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 간힘을 들이며 영묵은 꼭뒤가 무거웠다. 대청봉을 코끝에 바라보면서도 여느 때 산 정상 직전에 느끼던 설렘이 없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곡풍이 산 밑에서 쉴 새 없이 올라왔다. 이제 대청봉에만 오르면 그녀들과는 이별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이별은 숙명이다. 길 위에서 만난 숱한 사람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곁에 없다. 지금 그의 뒤를 배슥거리며 따라오고 있는 두 여자도 그런 수태 많은 이들과 다르지 않은, 그렇고 그런 인연으로 끝나 헤어질 것이다.
영묵은 그러나 잠시 후면 헤어질 그녀들 중의 한 여자가 어쩐지 가지 말라고 그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는 듯했다. 뭘까, 그 여자에게서 전해져 오는 음습한 기운은.
그녀들과의 동행이 어쩌면 우연이 아닌지도 모른다. 정혜 스님이 그랬다. 왁실덕실 세상의 사람들이 결코 혼자일 수가 없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웅숭깊은 파란 강이 흐르고 있어 그 물줄기를 우리들은 서로 넘나들고 있다고. 그러니 잘났다고 군림하려 들지 말고 또한 못났다고 곱작거릴 것이 없다는 말도 했다. 그렇다면 그 두 여자나, 먼저 간 그네들의 일행들을 오늘 새벽 만난 것도 모두 앞앞이 이어진 물줄기가 흘러 든 것일 수도 있다.
멀쩡하던 랜턴이 갑자기 고장이 나서 어두운 등산로에서 꼼짝없이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난감함에 둥개고 있는 그때, 그녀들과 그 일행을 만난 것은 흔한 우연이라고 하더라도, 한 서른 명은 좋이 될 듯한 일행들이 제각각 짝을 지어 흩어지고 맨 뒤에 처진 것이 그 두 여자였다. 그것도 어쩌면 단순한 우연이라 할 수도 있었다.
“그라모 후라시를 디릴 테잉께 아저씨가 길잡이 좀 해 주소”
랜턴이 고장 나서 아주머니들한테 묻어가려고 한다니까 두 여자 중 하나가 씨억씨억하게 랜턴을 그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렇게 해서 동행이 시작된 거였다.
허나 두 여자는 산행이 손방이라 둥싯둥싯 지정거리기 일쑤여서 영묵은 번열증이 날 것처럼 부아가 돋았다. 설악산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결혼하기 전의 아내와 왔던 것이 십 몇 년 전이었고, 그 때는 병석에 있던 중 자근거리는 아내의 간청에 부개비잡혀 간신히 권금성까지만 갔었다. 그리고 속초의 한 여관에서 아내와 첫밤을 가졌었다. 이번엔 대청봉에서 해돋이를 볼 요량이었다. 그래 밤잠도 설치고 오색리에서 텐트를 걷은 것이 새벽 두 시였다. 랜턴만 고장이 안 났더라면 이 여자들과 동행할 일이 없었겠지만 어이하랴, 숲속은 캄캄하고 한 치 앞도 볼 수 없으니 그 랜턴이 참으로 종요로운 물건이었다. 그러므로 대청봉에서 일출을 보려던 일이 어긋날 것 같은 조갈증이 목까지 뻗쳐 올라와도 애써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어두운 숲에서 오도마니 앉아 있게 되지 않은 것만도 천행이었다.
설악산의 가을은 일러 오색계곡의 냉기가 차갑게 파고드는데다 위에서 내리 부는 산곡풍 또한 대단한 것이어서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촉상이라도 들 것 같았다.
“춥지요? 땀이 식으면 병나니까 얼른 올라갑시다.”
무슨 나무인지 아름드리가 밖으로 얼기설기 드러내 놓은 뿌리에서 일어서며 영묵이 어둠 속을 향해 말했다. 여자들 때문에 그렇게 지정거리기를 여러 번, 영묵은 성애가 났으나 드러내지 않으려고 부러 드레진 목소리를 냈다.
“우리 땜에 늦어가아 우짜지요? 젊은 아저씨 같은데 우리가 이 모양이라서 미안스럽어서……”
두 여자 중의 나이든 듯 한 여자가 정말 미안한 음성으로 공손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영묵과 말마디 하는 건 그녀뿐이었다. 또 한 여자는 그저 학학 숨소리만 들릴 뿐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묵묵히 뒤따랐다.
그네들은 경산에서 왔다고 했다.
“아저씬지 총각인지 몰라도 어서 오싰능교?”
글쎄, 어디서 왔다고 대답해야 하나. 영묵은 배낭을 걸머지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는 어디서 왔나. 또 가는 데는 어딘지. 길에서 또는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또바기 느끼는 난감함이다. 청송의 박 처사(處事)가 그랬다. 네발가지 짐승이 어디는 못 가나요. 고향도 없고 사는 데가 따로 없는 난데. 난 그냥 바람이 실어다 준 게지 뭘, 허허허. 가슴까지 내려오는 털수세 속의 가지런한 잇바디가 희고 고왔다.
“전 영월에서 왔습니다.”
기껏 대답한다는 게 영월이라니. 영월이 고향이런가, 그렇다고 주민등록지이던가. 아내 원희를 마지막으로 본 게 영월의 그 요양원이었다. 아, 아내는 지금 어디 있을까? 울컥 그리움이 느꺼 올라왔다.
“가차이 기시는구나.”
나이든 듯한 여자가 대답하며 주섬주섬 길 차비를 하는 눈치였다.
“야야 준아! 어여 가제이. 우짜든동 대청봉까정은 죽기 살기루 가야 한데이”
다리가 파근한지 끙, 하고 낮은 신음을 흘렸다. 영묵이 랜턴 불빛을 젊은 여자에게로 향하니 그녀도 엔간히 지친 모양으로 크지도 않은 가방을 짊어지는 양이 영 시뜻했다.
이네들과 동행한다면 산정에서의 해맞이는 틀려 버렸다. 그러니 아예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영묵은 풀쳐 생각했다. 일단 그렇게 마음을 먹자 아늑한 여유가 생겼다.
“아저씨는 와 혼잔교? 무섭지 않은교?”
“무서우면 혼자 나섰겠습니까.”
“혼차 댕기모 자유롭지요? 내 배짱대로 하니까예.”
나이든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사뭇 산드러웠다.
“결혼했심꺼?”
여자의 말문이 터졌는지 간단없이 질문이 날아들었다.
“어데예. 안즉 혼자라예”
그가 짐짓 경상도 사투리를 섞어 너스레를 떨자 나이든 듯한 여자가 필요 이상으로 풀풀하게 웃어 제쳤고, 그 때까지 한마디도 없던 젊은 여자도 킥, 하고 웃었다.
“경산서 오셨다구요, 산악회원입니까?”
“친목회원이라예. 한 달에 한 분 모이는데 벨르고 벨러서 말로만 듣던 강원도 설악산을 오긴 왔지만서도. 대청봉까정 올라갈 수 있을까 몰르겠네예. 야나 내나 산에 댕긴 적이 읎어 놓이께네.”
영묵이 담배를 빼어 물고 불을 댕기려 했으나 거센 재넘이가 훅 불어 끄고 지나갔다. 차가운 냉기가 등허리를 타고 들었다. 해돋이는 아마 능선에서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며 간신히 불을 댕겨 붙인 담배를 그는 있는 대로 깊게 들이마신 후 길게 내뿜었다. 청송의 박 처사는 담배는 오장육부를 썩게 하니 아예 가까이 하지 말라면서도 정작 자신은 육장 썩초를 입에 달고 있었다. 영묵의 가슴 한가운데 기관지혈을 뚫어 사혈(瀉血)을 끝내며 박 처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정 그렇게 피고 싶으면 피쇼.
오랫동안 검질기게 달라붙어 진피를 부리고 있는 폐병이다. 아내를 만난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내댄 담배였다. 그러나 아들 현준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담배는 다시 그의 반려가 되었다. 근 십 년, 아내의 인고(忍苦)와 희생을 업은 절제의 생활로 폐병이 그의 몸에서 떠나는 듯 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아내와는 애시 버그러진 만남이었다. 후배 윤수가 학교 앞 주점에 그녀를 데리고 나타나던 그 순간부터 이미 모두의 앞날은 벗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달빛이 숲속으로 환하게 들어왔다. 그제가 추석이라 아직은 어연간히 만월이어서 만귀잠잠한 오색계곡은 바야흐로 빛잔치였다. 그런데 여태 숲속은 왜 그리 어두웠을까. 하늘이 흐렸던 것도 아니었다. 텐트를 걷으면서 달빛이 환하니 산행이 쉽겠다고 속으로 달막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고장나 버린 랜턴을 원망했으며, 애먼 두 여자만 대고 재촉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단하자 슬그머니 점직스러웠다. 달빛이 들어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숲속은 울울창창 키 큰 교초들이 삑삑하게 들어차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랜턴이 필요 없었다. 이제는 먼저 힁허케 올라가라는 나이든 듯한 여자의 채근이었으나 영묵은 굳이 그렇게 진동한동 모질음을 쓰면서 오를 것까지 없겠다는 생각으로 더딘 여자들의 속도에 맞춰 마냥 장승걸음을 걸었다.
가파른 돌계단을 한참 힘겹게 오르니 세 사람 모두 몸이 더웠다. 돌계단이 끝나는 곳에 산턱이 있었다. 휑하니 하늘이 열려 있었다. 거기 올라서자마자 세 사람은 일제히 크게 숨을 골랐다. 하늘은 애애(靄靄)한 기운으로 희부옇고 그 한가운데 둥싯 달이 떠 있었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별살이 쏟아져 내려 자칫 처연한 공포감마저 일 정도였다.
“어머 언니! 저것 좀 보세요, 진짜 팔광이네요.”
생급스럽게도 젊은 여자의 입에서 나온 탄성이었다. 처음으로 그녀가 한 말마디였다. 거추없는 그녀의 말에 나이든 듯한 여자는 그렇게 밖에 웃을 줄 모르는 듯 풀풀하게 대소하였고, 영묵 또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참, 팔광이라니.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골짜기를 따라 아랫마을로 사라져갔다.
“그래, 고래 웃으이 을매나 좋노. 이왕 나왔시니 가슴에 풀쳐 둔 거 싸악 씻어 삐리고 그 안에다가 이 시언한 바람 실컷 집어여라. 사람 사는 기이 그리 어렵은 것만도 아이라.”
웃음이 잦아지고 세 사람은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웃고 나니 물내린 몸에 금세 생기가 돋는 듯했다.
영묵은 환한 달빛 아래 드러난 그네들의 얼굴을 비로소 보게 되었다. 둘 다 호리호리한 체형인데 나이든 듯한 중씰한 여자가 키가 좀 컸다. 젊은 여자는 아까 전짓불에 언뜻 본 것 보다 조금 더 앳되어 보였다. 챙모자 그늘에 가려 상중정(上中停)은 보이지 않고 입술만 거무스름하게 도두보였다.
“이 냥반은 지 예펜네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혼차 잘두 내뺐네. 흐이구 남편이라구 원”
나이든 듯한 여자가 먼저 앞서 올라간 제 서방을 초들어 엉절거리며 웃었다. 그래도 영묵이 듣기엔 남편에 대한 원망이 전혀 담겨 있지 않고 오히려 은근히 도타운 정이 느껴졌다.
또 아내를 떠올렸다. 원희와의 관계는 어떤 건가. 아내와는 애시 만나지 말았어야 옳다. 처음엔 사랑했었다. 아니 지금도 사랑한다. 보고 싶고 그립다. 그렇지만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한다. 그녀와 나 모두를 위해서는 그게 옳다. 아들 현준이가 또 눈에 밟혔다. 녀석이 정혜 스님을 잘 따르는 게 여간 대견하지가 않았다.
털북숭이 삽사리를 쫓아다니느라 제 아비가 온 줄도 모르고 아이는 부도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한창 신이 나 있었다. 산그늘이 내려앉고 있는 어슬막이었다.
“저 녀석이 지 아빠보다 나은걸 뭐.”
정혜 스님이 현준이를 그윽하게 보며 말했다. 그 눈에 담뿍 애정이 실려 있었다.
“넌 어렸을 때부터 엄마만 잠시 안보이면 그악스럽게 울어댔지. 여북하면 내가 널 미워했겠니. 그럴 땐 하도 얄미워서 손바닥으로 니 등짝을 후려갈기곤 했었다. 물론 너는 더 크게 악악거렸지만 아무도 내가 때려서 그러는 줄은 몰랐지.”
현준이를 정혜 스님에게 맡기고 산을 내려오면서 얼마나 눈물이 쏟아졌던가. 제 핏줄을 두고 길을 떠나는 그 애통함. 사람으로 나서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하고 업장을 그대로 짊어진 채 비척비척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가련했다.
“저 녀석도 처음엔 밤에 자다가 깨나서 엄마를 찾곤 하더니만 워낙 틀수한 녀석인지 더 이상 울거나 보채지는 않더구만. 하긴 나이가 열 한 살이니 셈이 나기도 했겠지.”
코끝이 찡해져 오려고 하는데 현준이가 제 아비를 발견하고는 냅다 달려왔다. 영묵이 팔을 벌리자 녀석이 그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그의 목에다 박고 허발들린 듯 비벼댔다. 야들한 두부살같이 목에 닿는 감촉에 그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 힘주어 아이를 꼭 안았다. 아이의 입김이 보드랍게 혹혹 끼쳤다. 죄 많은 인간!
“스님한테 여러 가지로 부끄럽습니다.”
떠나오던 날 아침, 공양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데 정혜 스님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이젠 앞으로 그 스님이라고 부르지 마라 정 떨어지게시리…… 중이라고 해서 형제들과의 인연이 끊어진 건 아냐. 아이한테도 나더러 고모라고 부르게 했으니까.”
“네, 그러지요.”
“그리고 박 처사가 그러든데 네 이름이 별로 좋지 않다 그러더구나. 성명풀이를 해 보면 뜬구름이래나 뭐래나. 부모나 배우자와 대립하고 수심이 많고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한다고 거기 책에 다 나와 있대. 초분(初分)은 이산(離散)의 아픔을 겪고, 중분(中分)은 병으로 고생한다고 하고, 말년은 고독하다더라. 내가 중이 됐으니 이산이고, 지금 폐병이 살고 있으니 그것두 맞는 얘기고 보면 너는 늙어서도 피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니겠니. 그래 내 여러 날을 생각해서 네 이름을 하나 잡았으니 앞으론 그걸 써. 물론 호적의 이름이야 없앨 수는 없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니 이름을 자꾸 부르다 보면 그게 진짜 이름이 되는 거지.”
그렇게 해서 영묵(影墨)이란 법명(法名) 비슷한 이름을 누나, 아니 정혜 스님에게서 얻어 나온 게 지난봄이었다. 아이를 이별하고 섭진교(涉眞橋)를 건널 때 실개천 옆 바위벼루에 모다기모다기 연한 진달래가 소담스러웠다.
땀이 식자 다시 길을 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갈 곳이 어딘지, 왜 가고 있는지조차 잊은 듯, 허청대고 가파른 벼랑을 오르다가 때로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허위허위 무념무상의 세계에 들었다. 어느 너덜지대에서 두 여자는 파근한 다리를 가누지 못하여 돌에 퍼더버리고 앉았다. 거기서 간단한 요기를 하기로 했다. 젊은 여자가 사과를 깎고 영묵이 빵을 내놓았다. 시간은 다섯 시 오십 분, 희부옇게 동살이 잡히기 시작했다. 깎은 사과를 건네주면서 영묵과 젊은 여자의 손이 스쳤다. 차가웠다. 말이 없는 여자였다. 헤실바실 엷어져 가는 어스름을 따라 얼굴의 윤곽도 오련하게 드러났다. 전체적인 상호(相互)는 긴 달걀모양으로 열인을 한 경험으로 미루어 대체적으로 미인형에 속하는 얼굴이었다. 청송의 박 처사로부터 간단한 관상술 몇 가지를 얻어들은 후로는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의 얼굴을 톺아보는 버릇이 생겨 간혹 오해도 받아 오던 터였다. 그렇지만 아직은 갓밝이 전이라 뚫어지게 보아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영묵이 두 여자에게 빵을 건네자 젊은 여자가 다소곳한 음색으로 대답했다.
“별로 말이 없으시군요.”
“와요, 그렇기 말이 많진 안해도 벙어리는 아니라예. 서먹해서 그렇지. 힘이 들어서 뭐 얘기할 염이나 있겠는교. 니 더 갈 수 있겠나? 암만해도 내가 애먼 사람 잡지 싶다.”
“아직까진 괜찮아요. 빨리 해가 떴으면 좋겠네요.”
그러면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스름 동살에 비친 손이 하얬다.
“야는 집이 서울이라요. 내랑 언니 동상카는 처진데, 이분에 내가 반강제로 끌구와가 이 고생을 시키네예. 바람 한분 쐬여 줄라꼬요.”
또렷이 보이지는 않아도 나이든 듯한 그 여자는 확실히 좋은 관상이었다. 적당한 키에 적당한 살집, 두상이 좋고 음색이 서글서글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상호가 균형 있게 잡혔다. 하정에 후덕한 살이 있어 그대로라면 박박이 말년까지 팔자 좋은 늙은이 소리 들으며 살 관상이었다.
그녀가 보온병에서 따라 준 보리차를 마셨다. 더운 향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잠시 몸이 풀리는 듯 했다. 세 사람은 한동안 보리차만 호호거렸다. 밝아오는 하늘, 깊은 숲, 재넘이도 잠시 잠잠하고 그들의 어깨 위로 아침이슬이 내렸다.
“우린 대청봉 갔다가 봉정암으로 갈낍니더. 패들을 게서 만내기루 했는데 우리가 너무 늦어가 많이 기둘르겠네.”
“전 백담사로 갈 겁니다. 거기서 대승령으로 해서 다시 대청봉으로 올라구요.”
“하이고, 심들겠네요. 얼매나 걸리는교?”
“아마 백담사에 도착하면 날이 저물 겁니다.”
“산을 좋아하시는 분인가 봐요?”
추운지 무릎깍지를 끼고서 턱을 파묻고 있던 젊은 여자가 물었다. 그 사품에 얼굴이 달막였다.
“네, 산 좋아하죠. 산뿐이 아니라 길이라고 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아합니다. 네발가지 짐승이니 어디든 가고 싶은 게지요.”
청송의 박 처사를 흉내 내어 근사하게 웃으려고 하였으나 어쩐지 계면쩍어 그만두었다.
“가만히 보이까 이 양반 보통 사램이 아니구만. 무신 도 닦는 사램 아인교? 얼굴에 그렇기 써 있다카요. 증말 장개 안 간 거 맞소? 야 맨키로 집 나온 거는 아인교?”
“언니!”
젊은 여자가 퉁바리를 주어 무질렀다.
아! 영묵은 자괴했다. 젊은 여자에게서 진작부터 끼쳐 오던 알 수 없는 냄새. 오랜 장마에 어둔 부엌 살창 밑 굽도리에 눌눌하게 슬던 매기. 그 음습하고 퀴퀴한 냄새로 인해 영묵의 신경은 그간 그 말없는 여자에게 쏠려 있었다.
지금까지 스쳐갔던 사람들. 저마다 가슴 깊이 서리서리 얽어 놓은 내밀한 사연들. 영묵은 그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지감을 터득했다. 그들의 말투, 음색, 표정, 시선, 몸의 냄새로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어슴푸레 감지하곤 했다. 오랜 길 위의 생활에서 얻은 미립이었다.
그런 그들을 스쳐 지나치고는 혼자 헙헙해하기도 했고, 때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그의 방랑은 도피였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것은 책임을 떠안는 것이고 업장을 쌓는 것이었다. 그 무거운 책임을 감당하기에 그는 너무 박약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결국 길 위로 나섰던 것,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크든 작든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다시 제 갈 길로 사라져 갔다.
시작도 없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 길…… 그 길 위에서 그는 사람의 냄새를 배웠다. 눈빛이 거무스름하고 물기가 어린 이는 고독한 이고, 분노를 담고 있는 이에게서는 허무와 나태가 느껴졌다. 삶이 즐거운 이에게서는 거기에 합당한 은은한 향이 풍겼다. 그렇게 숱한 사연들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이 젊은 여자에게서는 성질이 다른 바람이 분다. 그녀의 가슴 어디에 휭한 공간이 있어 끊임없이 바람을 내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둡고 음습한 냄새가 난다. 뭘까.
영묵은 너덜바위에 등을 기댔다. 어차피 시간 다툼을 하지 않기로 작정했으니 바쁠 게 없었다. 바람도 없고, 물소리도 없는 고요한 숲이었다. 비겨 앉은 채로 젊은 여자를 보았다. 집을 나왔다고 했나.
“이마는 아주 잘 생겼는데 변지(邊地)에 좁쌀만한 점이 있어서……”
그래서 어디 정착할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게라고 청송의 박 처사가 영묵을 물끄러미 보면서 드레지게 말하고는, 그래도 법령(法令)이 길고, 인중(人中)이 좋으니까 수명은 길겠다고 흐리마리 뒷동을 달았다.
“그렇지는 않을걸.”
나중에 넌지시 그 얘기를 내자 정혜 스님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 집 씨가 원래 그런 씨야. 봐라, 아부지도 평생을 산만 쫓아다니지 않았니. 또 큰아부지는 평생 대목장이로 떠돌아다니셨고, 할아부지는 또 어떻고. 손에 돈만 들어오면 한 달도 좋고 두 달도 좋고 집안사람이야 굶어죽든 얼어 죽든 내전보살 돌아다니셨지. 그 피가 어디 가겠어? 나두 중이 됐잖니.”
여섯 살 때 소양강 댐이 생겼다. 소양강 지류의 조그만 오지였던 마을이 침수예정지가 되자 고향을 등지고 시내로 나왔다. 국민학교 일학년 때 견학 갔던 소양호를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기껏해야 여울진 개천이나 장마 때 검붉은 진흙탕물이 와와 소쿠라져 둔치를 개개던 것을 본 게 전부였었다. 소양호의 그 넓은 규모에 소년은 바람이 갑신 듯 숨이 막혔었다.
그 후 어느 해 연분이던가 아버지를 따라서 가 본 남해바다는 더 큰 경이를 주었다. 어찌 저리 물이 많을까. 점점이 겅성드뭇한 섬들 사이를 철철 넘치던 드넓은 바다. 그곳에서 소년의 앞날은 이미 정해졌다.
세상은 넓고도 넓은 곳, 이 창망한 세상을 어찌 바닥쇠 마냥 한군데 엎어져 기고 있을까보냐. 소년의 가슴은 울렁거렸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갔던 울진의 망망한 바다 앞에서 소년은 감정이 격해 눈물을 흘렸다. 이 우주는 도대체 어디까지가 한계인가고 그는 처연히 먼 수평선을 응시했었다.
그렇게 시작된 방랑벽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산의 영묘한 매력을 말없이 가르쳐 주었다. 어머니와 자식들을 도외하고 아버지는 산을 올랐다. 여러 나달을 산에서 헤매다가 어느 날 불쑥 들어서는 아버지의 매골은 추레하기 그지없었으나 눈빛만은 형형했다.
아버지의 역마살에 있는 대로 속이 썩은 어머니는 아들에게 그 못된 겁운이 대물림 될까 노심초사 사철 울가망했지만 정작 아들이 그 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먼저 생을 마감하였다.
대학시절부터 그는 산을 찾았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가까운 오봉산에서부터 오대산, 치악산, 멀리는 지리산, 백운산까지 섭렵했다. 그러다가 중학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폐병이 갑자기 울컥 성을 냈다. 산을 오를 수 없게 되자 세상을 잃은 것처럼 암울했다. 그 어름에 아내 홍원희를 만났다. 그리고 생은 벗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갑시다.”
영묵이 자리를 털었다. 그새 하늘이 희번해져 있더니 가파른 오름이 끝나고 완만한 능선에 이르자 돋을볕이 퍼지며 맞바래기에 이쪽 능선의 그림자를 지웠다. 거기서부터는 키 작은 관목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야, 준아! 저게 바다인 모양이다. 햐, 쥑이네!”
멀리 바다가 보였다. 해는 이미 수평선에서 한 뼘이나 떨어져 있었다. 새털구름이 수평선 가까이 어지럽고 아침 까치놀이 붉게 번뜩였다.
아름차게 배슥거리며 뒤따라온 젊은 여자도 함박 웃음을 담고 먼 데다 시선을 주었다. 그녀의 옆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어깨까지 늘인 머리칼, 이마에서 내려온 선이 오똑한 콧날을 세우고 얇은 입술을 지나 턱이 날렵했다. 예상대로 미인이었다.
영묵은 또 담배를 빼어 물었다. 푸르스름한 담배연기가 바람에 산산이 흩어졌다. 앞으로도 한 시간은 더 걸어야 대청봉에 이르리라.
두 여자는 거기서 다시 퍼더버렸다. 영묵은 버너를 꺼내 불을 붙였다. 바람이 세어 버너 불이 위태로워 보였다. 배낭으로 바람을 막았다.
“자 이것 좀 드세요, 커피냄새가 아주 좋습니다.”
여자들이 뭉그적거리며 다가앉아 커피 잔을 받아 들었다.
“정말 오길 잘한 것 같아요. 세상에 나서 이런 경험 처음이에요.”
젊은 여자가 온기를 느끼려는 듯 두 손으로 종이컵을 감싸 쥐고 말했다. 미사리 밖으로 흘러나온 앞 머리카락이 땀에 젖어 이마에 붙어 있었다. 그녀가 생기 있게 웃었다. 힘에 겨워 안색은 불그스레했지만 활짝 웃는 미목이 끼끗했다.
“그렇제? 내도 그렇데이. 저그 울산에 가가 멫 번 바다를 보긴 했지만서두 산에서 보는 건 또 진품이네. 저것 좀 보래이, 저 뽀얀기 뭐꼬? 햐! 커피 맛도 환장하겠네.”
영산이 오른 중씰한 여자가 연신 너스레를 떨었다.
“기운들이 다 빠지신 것 같은데 힘들어서 어떡하지요? 앞으로도 한 시간은 더 올라가얄 텐데요.”
“괘않소. 머 죽기살기로 가믄 어트게 안되겠는교. 대청봉까정만 가믄 게서 쓰러지든지 까무라치든지 우리 서방이 업고 가겠제 머.”
“언닌 아저씨라도 있지만, 난 어떡하라구요?”
“여그 이 잘 생긴 아저씨는 어떻노? 총각이라카이께 좀 좋나, 뒤끝도 없일테고. 우해해해” 두 여자가 실없이 웃고 얘기하는 동안 영묵은 젊은 여자의 상호만 유심히 살폈다. 깨끗한 피부에 입술이 푸른빛이 났다. 어쩐지 애잔한 슬픔 같은 것이 있다. 중정과 하정이 좋지 않았다. 눈이 큰 아름다움에 진광(眞光)이 없어 어정쩡할 뿐 아니라 엷은 수기(水氣)가 어려 있다. 게다가 콧망울이 약해 쓸데없이 높기만 한 준두가 부끄럽다. 약한 콧망울도 좋지 않다. 모두가 용천스러운 것뿐이다.
영묵은 자기의 얕은 지감이 맞지 않기를 바랐다. 어이할꼬. 그 여자의 현재는 어지럽기만 하고, 또 가까운 미래도 결코 만만하지가 못하니 도진 부침 속에 휘둘리는 상이었다.
또 한가지, 가슴이 무거웠다. 간문(奸門) 옆 처첩궁(妻妾宮)에 흐릿한 자국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음란한 여자.
대청봉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허리께까지 올라와 있었다.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여자들의 일행은 없었다. 두 여자는 바윗돌에 퍼더버리고 앉아 종지뼈를 두드렸다. 젊은 여자는 개개풀린 눈으로 바다 쪽을 보고 있고, 나이든 여자는 지르퉁한 눈을 하고 중중거렸다.
“머시 이런 사람들이 다 있노. 으리라고는 눈꼽맨치도 없고마는. 으째 기둘르는 사람이 하낫두 없단 말이고? 딴 사람은 그렇다치구 이 서방인가 하는 양반은 지 마누라가 없는데도 저 혼차 내빼 삐리고 말이다. 으이구 오살할 인간!”
중청산장에 도착했다. 그 중도에서도 두 여자는 몇 번을 더 쉬었다. 눈앞에 빤히 보이는 산장을 한 시간이나 지정거려 도착했다. 산장 마당에 들어서자 아는 체를 하며 다가서는 사람이 있다.
“아지매 인자 오시는교? 아따! 기달리다 망부석 되는 줄 알았네. 다리 아프제요?”
“아저씨는 와 여태 이러고 있는교? 참말 내를 기둘른 건 아일테고.”
“어데요. 여기서 세 시간 기다렸다 아인교. 일행이 아직 안 왔는데 그냥 갈 수 있겠는교. 유진철 씨더러 기달맀다 같이 오라카이께 들은 척도 않고 내리 가 뿔데예. 아이구 참 사람이 얀정 없기는 허허……”
남자는 자신이 더 민망한 듯 부러 크게 헛웃음을 쳤다.
“그래도 수진 아빠가 최고네. 백찌 나 땜에 욕봤심더. 우리 그 양반 잔정 없는 거 다 천하가 다 아는고로.”
산장 마당은 많은 사람들로 부나했다. 수진 아빠라는 그 남자 부부와 같이 어울려 평상에 앉아 컵라면을 먹었다. 같이 내려가자는 남자 부부를 고집으로 꺾어 먼저 보내고 중년 여자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산 아래를 조망했다. 접침접침 능선 위로 부옇게 풍연이 끼어 있었다.
“아저씨요. 아깨는 농으로 장개가지 말라캤지만요, 우리 남편 어떤 사람인지 보셨제요? 마누라한테 정주는 법을 몰라요. 그래두 심성은 착한 사람이라 이러구러 속 썩는 일은 없지만서두 여자 맘이 또 어디 그라요? 남덜처럼 곰살스럽은 맛이 없으이 속 좁은 여자한테는 불만일 수도 있제요. 요새 젊은 여자들은 하마 사네 못 사네 그랄기요. 우리 하고는 벌써 세태가 달라졌시니. 여그 준이 엄마만 해도……”
그 동안에도 햇볕을 실은 바람은 간단없이 불어왔다. 하얀 구름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모였다 흩어졌다를 반복하며 설악을 부산스럽게 했다. 풀린 실처럼 늘어진 등산로를 사람들이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해는 중천에 올라 있었다.
해전에 백담사에 닿으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들썽한 마음에 영묵은 처음으로 여자들이 귀찮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가 사라졌다.
“아저씨는 이제 가셔야죠? 저희는 여기서 좀 쉬다 내려갈게요. 봉정암까지 가면 우리 일행이 있으니까 저희 걱정은 마시구요.”
젊은 여자가 날연한 음성으로 간곡하게 말했다.
“그럭하소. 쪼매 쉬믄 괘않을낀게 우리 신경 쓰지 말고 먼저 내리가시이소. 우리 땜에 욕봤심더.”
영묵은 속을 들여다보인 것 같아 움찔 굽죄였다. 바삐 길을 재촉해야 할 일이 그에겐 없었다. 목적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다리는 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밤이 되면 멈춰 선 그 자리가 잠자리요, 돋을볕이 솟으면 일떠나 앞에 놓인 길을 가면 그뿐인 것을.
“저게 울산바위지요? 그림으로 봤어요. 이렇게 높은 데서 내려다보니 참 근사하네요, 우습기도 하구요. 산이 많은 이 국토에, 얼마 안 되는 도시에들 버글버글 복닥거리는 걸 생각해 보세요. 뭘 바라고들 그렇게 각박하게 사는 건지, 죽으면 그냥 끝인데……”
그녀의 시선을 따라 울산바위에 눈을 주었다가 영묵은 눈 아래 첩첩능선을 하나하나 톺아 나갔다. 이마에 하얗게 바윗덩이를 이고 있는 멧부리가 있고, 거무튀튀한 침엽수가 삑삑한 산줄기가 이어지고, 깎아 내린 듯이 거대한 돌비알을 전면에 내세운 마루터기, 병풍처럼 츠렁바위를 겹겹이 박아 놓은 능선들이 시야가 닿지 않는 먼 곳으로 가없이 뻗어 있었다. 남쪽으로는 키 작은 관목과 섶나무가 울울창창 잔디처럼 덮여 그대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게 새파란 수해가 펼쳐져 있었다.
내 보금자리는 어디인가. 영묵은 뽀얗게 능선이 사라진 너머를 무연하게 바라보았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그 곳 어디에도 사람이 살고 있겠지. 어디로 가는가 나는. 갈 곳이 없다. 그에게도 집은 있다. 주민등록상 엄연한 주소가 있고 그 번지수에 그가 누울 수 있는 집도 있다.
그러나 보금자리는 아니다. 그곳에 돌아가도 역시 혼자이고 반겨줄 이 없다. 혼탁한 도시 속의 어둡고 그늘진 그곳은 늘상 난데의 이방인처럼 그에겐 낯설고 서머할 뿐, 금새 지쳐 주저앉게 만드는 곳이었다.
어차피 고독할 바에야 차가운 도시보다는 바람에 실려 걷는 게 좋았다. 떠난다는 것, 관계를 끊는다는 것. 그것은 곧 책임을 벗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만들지 않는 것, 진작 알았더라면 얼마나 삶이 홀가분하고 부픗했을까.
가족, 가정. 우리가 돌아가야 하고 또 돌아가고 싶은 가장 원초적이고 궁극적인 울타리다. 그런데 가정은 늘 행복하고 안락할까. 가족 중의 누구 하나 아프면 나머지 가족들은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즐거울 수가 없다. 누군가 문을 나서면 가족들은 기다리고 초조해 한다.
그렇게 일구월심 세월을 보내면서 누군가는 영영 가족들을 떠나고, 또 다른 가족이 태어나고. 가족이 사라질 때마다 그들은 슬프다. 그런 반복을 거듭하며 사람들은 더께더께 시간을 쌓아 간다. 목적도 모르면서. 도시 안에 우글거리면서.
“안되네.”
연신 전화기 버튼을 눌러대던 중년 여자가 띡 하고 뚜껑을 닫으며 찌무룩하게 중얼거렸다.
“아저씨하고 통화가 안돼요?”
“글쎄. 안테나는 있는데 신호가 가질 않아. 저쪽이 불통인가?”
영묵은 일어나 마당가에 가 섰다. 울이 없이 발밑으로 완만하게 내려간 경사면에 전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질서 없이 능선과 계곡들이 달려 내려가고 숲 위로 구름 조각들이 피어오르다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바람에 가을 냄새가 실려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전나무 숲에 이어지는 잡목 군락에는 갈색이 점점이 물들어 있었다.
“낭패라예. 쟈가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암만해도 더는 몬 걸을 것 같소.”
다시 평상으로 돌아오자 젊은 여자는 변소에라도 갔는지 중년 여자 혼자였다. 그네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아주머닌 어떠세요, 걸을 수 있으시겠어요?”
“내도 죽겠지러. 그래도 죽을뚱 살뚱 가믄 몬 갈 것도 없제요. 인자 우리 걱정은 말고 아저씨 먼저 가소. 우린 여그서 두어 시간 좀 슀다 가야 될 것 같소. 우리 땜에 욕봤심더.”
“자꾸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저두 뭐 바쁜 사람이 아니니까 길동무하고 가겠어요.” 영묵이 그네에게 싱긋 웃어 보였다.
“내 보기에 아저씨가 미더워서 얘긴데, 쟈 말이요……”
대화도 끊어져 오가는 등산객들을 무료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중년 여자가 그렇게 새퉁스러운 말을 꺼냈다. 영묵은 눈을 빛냈다. 그 여자의 어둡고 음습한 냄새의 내밀을 엿보게 되려는가.
“아버지란 사람이 참 웃긴 양반입디더.”
그 여자 정용순의 아버지는 본디 농사꾼이었다. 단양의 궁벽진 한촌에서 부유하진 못해도 그럭저럭 탁탁하게 논밭을 가다루던 범상한 시골 촌부였다. 일년 열두 달이 가야 도부장수 외에는 낯선 장끼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 그 벽항에 동부새를 타고 실답잖은 풍문이 나돌았다. 저 아랫동리에 댐이 생긴다고 했다.
그때 마을 사람들과 너나들이 하며 자주 드나들던 돈팔이가 하나 있었다. 자기 말로는 월남에 파병 갔다가 넓적다리에 파편을 맞아 병신이 되어 온 국가유공자라고 하였지만 겉보기에는 별 이상한 태는 없어 보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 돈팔이를 꽤나 반겼다. 물론 마을 사람들 거개가 그를 반겼는데, 그 너스레며 걸쭉한 입담으로 월남에서 베트콩 잡던 얘기에다가 그곳 임자 있는 여자를 꾀어내어 연애질을 하다가 그 여자 남편에게 들켜 드르륵 따발총을 갈기고 줄행랑을 쳤다는 얘기를 그럴듯하게 셍기는 데는 모두가 너나없이 입에 침이 고였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그 돈팔이가 오면 앞뒤 볼 것 없이 사랑방으로 불러들여 며칠이고 바라지를 하며 그의 세상편력기를 듣곤 했다.
그가 가지고 오는 물건은 드리없었다. 어느 때는 옷가지를 지게에 잠뿍 싣고 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서산 갯마을에서 난다는 젓조기를 갖고 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외제라며 여자들 향수며 머릿기름을 커다란 가방에 불룩 넣어 오기도 하고, 어느 여름날에는 생급스럽게도 스티로폼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가지고 자전거를 탈탈거리고 들어오기도 했다.
돈팔이는 올 때마다 그녀 정용순과 남동생 길수에게 선물을 주었다. 빨간 머리핀이며 팔과 다리가 움직이는 마징가제트, 또는 백설공주가 그려진 책받침이라든가 알록달록한 호루라기 등 시골 아이들이 혹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남매를 데리고 십 리 남짓 되는 읍내로 나가 짜장면을 먹인 적도 있었다.
그러해서 용순 남매는 그가 오는 것을 아버지보다 학수고대하게 되었다. 그가 어디 사람이고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용순 남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그가 방천길로 들어서는 것을 먼발치로 보면 월남장수가 왔다며 기꺼워했다.
아랫동리에 댐이 생긴다는 풍설도 그가 물고 들어온 것이었다. 어슬막이면 귀뚜라미가 목청을 돋구는 찬바람머리였다. 그가 물어다 준 소식에도 맹문을 몰라 눈만 슴벅이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용순 아버지에게 돈팔이 월남장수가 무릎걸음으로 다가가서는 첫닭이 울도록 쑤석인 것은 이랬다.
댐이 생기면 이 일대는 물론 저 아래 제원이나 중원, 제천이 죄다 물에 잠겨 버린다. 그러면 판판이 저 살 곳을 찾아 나가야 되는데 정부에서 보상금을 줄 것이다. 허나 등신같이 주는 대로 받아먹지 말고 당장 밭에다가 인삼을 심어라. 선산이 있는 사람은 나무 하나 하나마다 보상금이 나온단다. 그러니 비싼 약재인 인삼을 심어 놓으면 엄청나게 수지맞을 거다. 남의 돈을 써서라도 그리하면 나중에 내게 고맙다고 백 번 절할 것이다.
그리하여 사돈의 팔촌까지 찾아 빚을 내서 풍기서 다 이울어 쪼그라진 삼을 날라다가 수수밭, 옥수수밭, 심지어 두어 마장 떨어진 골채에까지 박아 놓았다.
이장을 앞세우고 들어온 눈먼 조사관은 무에 그리 바쁜지 한통속이 된 이장의 능갈맞은 사설에 고개만 끄덕거리며 휘 둘러보고는 용순 아버지가 거짓 신고한 내용에 도장을 찍고 가 버렸다. 물론 그의 주머니에는 용순 아버지가 찔러 준 꾹돈이 제법 들어 있었다.
벼락부자가 된 용순 아버지는 그예는 돈팔이 월남장수를 은인이라고까지 믿게끔 되었다.
용순네 가족은 서울로 이사를 했다. 그것도 월남장수의 말을 듣고였다. 서울에서 월남장수는 물 만난 고기마냥 휘젓고 다녔다. 어림쟁이 용순 아버지는 그가 하자는 대로 응응 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척척이었다. 맨 처음 건재에 손을 대 쑬쑬하게 돈을 번 용순 아버지는 다음엔 변두리 알땅을 헐값에 사들였는데 거기에 아파트가 들어서는 바람에 트럭으로 돈을 거둬들였다.
나중에 백 번 절하라는 그의 말대로 백번 천번이 아니라 한 몫 단단히 떼어주려고 용순 아버지가 돈을 내밀어도 월남장수는 그까짓 것 하며 정중히 거절하곤 했다.
“성님요, 나가 시상에서 젤루다 기찬헌 것이 머신줄 아요? 바로 돈이란 말시. 나가 성님보담은 시상구경을 더 했응게 허는 말이지만, 나가 째째헌 돌포리루다가 돌아댕겠어두 돈은 쓸맨침은 써 봤구마요. 헌디 돈이라는 것은 사람 사는디 고리 중허진 않아라. 그작저작 먹고 자고 허는 것만 있으면 충분하제라. 나야 뭐 성님이 다 뒤봐준게 머시가 필요허겄소.”
“그래두 내 성이를 생각해 주셔야지. 이게 다 누 덕택인가.”
월남장수는 그러나 고개를 젓고는
“나가 돈은 기찬헌께 둬 두시고요 정 글먼 시방은 되았고요, 내중에 지가 머 아쉰 소리 헐 때가 있을 것잉게 그때나 좀 봐 주씨쇼잉?”
뜻 모를 뒷동을 달았다.
정용순은 왕청되게 달라진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 도시는 말 그대로 신세계였다. 휘황한 도시의 불빛들과 그 속에 가득한 온갖 오락과 고량(膏粱), 거리에 넘실거리는 싱싱한 열기들. 그녀가 그토록 꿈에 목말라 하던 바로 그 서울이었다.
그녀에게는 매연에 찌든 하늘과 시궁창의 거무튀튀한 고장물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 온종일을 지둥치듯 악악대는 소음들, 이런 것이 모두 도시의 매력으로만 보였다.
단숨에 때벗은 그녀는 서울의 여느 중산층 아이들처럼 고아하고 생기발랄한 고량자제로 성장해 나갔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그녀는 대학에 가지는 못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쯧쯧 혀를 차는 걸로 서운함을 대신할 뿐 이후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아들 길수에게 더욱 기대를 돌렸다.
정용순은 도시의 쾌락을 만끽했다. 값나가는 옷에 액세서리, 유행하는 머리와 화장품들을 달고 발랐으며 물 좋다는 카페와 커피숍, 나이트클럽을 섭렵했으며 술을 마셨고 남자를 유혹했다.
차차 방탕해지려고 하는 그녀를 관심하며 제어해주는 사람은 월남장수였다. 그도 마흔이 넘어 중씰한 사내가 되어 있었다.
“용순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도 몰르는겨? 시방 고러크롬 고삐풀린 망아지맨키로 이 작은아버지 말을 시퍼보믄 낭중에 후회한다니께. 이자 고만 나댕기고 워디 참한 취직자리락두 알아봐 줄것잉마.”
그러나 한 가족이 되어 작은아버지로 부르는 월남장수의 그런 구닥다리같은 타이름에 귀를 기울일 나이는 지나 버렸다. 아버지 어머니도 가만히 있는데 하물며 월남장수라니.
어느 세밑 추운 겨울이었다. 여럿이 뒤떠들며 세모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밤늦도록 놀다가 자정도 훨씬 지나서 돌아왔다. 바래다 준 사내놈이 다짜고짜 그녀를 담에다 밀어붙이고는 들러붙어 그녀의 입술을 빨았다. 처음엔 놀라 앙가슴을 밀어냈으나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녀가 상종하는 사내들이 너나없이 그녀를 흘깃거리는 걸 그녀 자신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대담한 사내들은 탐탐 기회를 노리다가는 이처럼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꺼워하고 있었다. 입술에 만족 못한 사내들이 가슴을 만져도 그녀는 내버려두었다. 겨울에도 짧은 치마를 즐겨 입고 있어 슬그머니 그녀의 치마 밑으로 손을 넣을 때가 있으므로 그것만은 뿌리치던 그녀였다.
사내보다 그녀가 더 능동적으로 상대의 입술을 흠빨았다. 예상대로 역시 그 남자도 가슴을 애무했다. 박박이 그 남자의 손도 자신의 허벅지로 올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는실난실 충동이 일었다. 그것을 바라고 있는 자신을 느끼고 흠칫 놀랐다. 술기운 탓인지도 몰랐다. 남자의 손이 유방에서 떨어지려는 듯한 기미가 느껴졌다. 필시 밑으로 내려가겠구나 예감하며 잠시 눈을 뜬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남자의 뒤 어두운 담장 모퉁이에 시커먼 사람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아도 단박 알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 월남장수였다.
부리나케 사내가 골목을 빠져 달아난 뒤에도 월남장수는 한동안 벅수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 형상은 많은 날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아 검기운 골목을 들어설 때면 그 자리에 월남장수가 서 있는 곡두를 보고는 소스라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해가 더 가고 용순의 어머니로부터 혼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도 스무 살 초반의 갸기와 방만이 조금은 숙어졌다. 그러나 그녀의 몸은 더욱더 난숙해져 여전히 사내들은 꼬였다.
그 어름의 어느 해토머리였다. 용순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겨울밤의 골목길에서의 그 일이 있은 후 월남장수는 문득 예전의 생활이 그립다면서 용순 아버지에게 트럭 하나를 받아 내어 여기저기로 떠돌이 장사를 떠났다. 황파에 대낀데다가 천래의 재주가 있어 곧 돈을 모았는지 지방에다 조그만 운송회사를 차렸다는 얘기를 전해 왔고, 또 심심찮게 용순의 집을 다녀가곤 했다.
그날 아버지 심부름으로 그가 있는 조치원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마지못해 가긴 했지만 그녀는 어쩐지 용천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밤이 새기도 전에 울면서 새벽에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뭔 일이 있었는동 아니껴? 시상에 별 망측스런……”
중년 여자는 얼굴을 구겨 가며 비죽거렸다.
“월남장수카든가 하는 그 등금쟁이가 그날 밤에 쟈를 기냥…… 하히구 언슨시럽은거.”
영묵은 가슴이 일렁거렸다.
“망칙스럽은 거는요, 새복에 쬧기올라온 쟈를 붙들고 앉아 지 아배가 뭐라캤는동 아는교? 글쎄 하는 야그가, 아부지가 미안하다 카믄서 그르치만 그 사람도 알고 보믄 꽤 괘않은 사람이데이 이카믄서 같이 살다보믄 정도 붙는기라. 내 보기엔 그만한 사람도 없구마. 니가 놀랬겠고로 너무 야속타 생각마래이 내가 낭중에 다 야그해 주꾸마, 지끔은 아무것도 묻지 마래이. 그카믄서 모쪼록 마음 잘 건사해가 이 애비 맘 좀 헤아리도고, 이래 망령을 부맀다 아인교. 월남장사가 문턱이 닳도록 그 집을 드나든 게 알고보이 어린 것에게 그런 음충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깁디다.”
후루룩, 영묵의 가슴 안에서 물까마귀가 한 마리 무연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음이 흔들릴 때는 관세음보살을 불러. 그 분의 광명이 환하게 비칠 거다.’ 정혜 스님! 나무 대세지보살.
“내가 쟈 준이 엄마랑은 먼 일가 사람이라예. 그래 우리 집안에서도 한동안 말이 꽤 많았제요.”
해가 중천을 지나 비스듬히 서쪽으로 쓸렸다. 그 동안에도 등산객은 부지런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예서 뭣하고 있는 거야!”
중년 여자가 얘기를 더 이으려고 입술을 종긋하는데 벼락같은 일성이 날아들었다.
“아 암만 기달려두 생전 올 생각을 해야지. 여기 퍼질러 앉아 갖구 뭔놈의 수다야!”
중년 여자의 남편이었다. 보동된 몸에 딱 바라진 어깨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기다리는 것도 잊고 웬 젊은 사내놈과 노닥거리고 앉아 있는 꼴에 애성이가 났는지 눈에 잔뜩 핏줄이 섰다.
“참말로 적반하장 아이가. 지 예펜네는 죽었는동 살았는동 저 혼차만 내빼 삐린 양반이 누더러 큰 소리가? 하히고 내는 다리가 아파 더는 못 가겠거마는. 아유 몰라, 업고 갈라카믄 가고 맘대로 해. 아이고 다리야.”
반생을 살아 오면서 이골이 난 남편인지라 중년 여자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남편을 향해 눈을 지릅떴다. 대번에 남편의 기세가 수그러졌다. 영묵은 빙그레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눈인사를 했다.
“예까지 나 델다 준 총각이라예. 이 총각 아녔으믄 나 여그 있지도 않았을 끼구마.”
남편은 그제서야 멋쩍게 웃음을 달며 황송할 정도로 허리를 굽혔다.
“아이고 이거 폐를 끼쳤습니다. 유진철이라 합니다.”
악수를 나누며 통성명을 곁들여 수어하고 나서 남편은
“준이 엄마는 어디 갔어?” 하며 선걸음으로 재촉할 태세였다.
“갸가 다 죽게 돼서 마루방에 가서 좀 눕으라캤제. 내비둬, 지금 한 발짝도 못 걷게 생깄어. ”
“당신은 어때? 어디 좀 봐. 걸을 수 있겠어?”
그러면서 남자는 제 아내 장딴지를 주물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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