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온통 새빨갰다. 뉘엿거리는 저녁놀을 보며 영묵과 젊은 여자는 저녁을 먹었다.
“젊은 아저씨요! 정말 미안합니데이. 믿고 먼저 내리가니더. 봉정암서 또 보입시더.”
중년 여자와 그 남편은 그렇게 젊은 여자를 남겨 놓고 내려갔다.
“외려 잘 됐네요. 오늘 산장서 푹 쉬시고 내일 아침에 해돋이를 봅시다. 삼십 분이면 올라가니까 힘들지 않을 겁니다.”
“참 노을이 고와요. 서울에서도 한강변에서 일몰을 가끔 보긴 하는데 산 위에서 보는 건 또 색다르네요. 색깔은 서울에서 보는 게 더 고운 것 같기도 하고. 해가 아파트 건물 옆으로 빨갛게 넘어가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어요. 영화에서 그런 장면 볼 때마다 감탄하곤 했는데 실지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으니까 이 세상 같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보는 해넘이는 아주 장엄해요.”
하얗던 얼굴은 노을이 물들어 짙은 오렌지 빛이었다. 그 미목과 이마에는 세상의 어떤 상념이나 고뇌도 없었다. 단지 자연의 일부분이었다. 여자의 발그스름한 아늠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영묵은 자신도 그 여자의 일부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아, 아름답다 저 얼굴.
중학교 때 단체 검진이 있었다. 그 달장근 뒤에 담임이 불렀다. 담임의 책상 위에는 철끈으로 묶은 진단서가 놓여 있었고 영묵이 들어가자 담임이 종잇장을 넘겨 그의 진단서를 폈다. 그리고는 심각하게 그것을 들여다보더니 영묵을 쳐다보며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기중이가 말이야, 결핵기가 좀 있는데…… 글쎄 뭐 그리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조심해야겠어. 언제 한번 병원 가서 정밀진단 좀 받아 봐. 알지, 인성병원?”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교무실의 하얀 회벽에 때마침 노을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 아름답다.
그러나 영묵은 재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았다. 그래도 별탈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이학년 때 마른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아, 이게 폐병이로구나, 나는 이제 죽는구나. 그래도 죽음이 별 두렵지 않았다. 다만 밖으로만 떠돌아다니는 남편에겐 희망도 기대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가엾은 어머니를 두고 먼저 하직한다는 죄스러움이 덩어리로 맺혀 울컥 목구멍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마른기침은 학기 내내 지속됐다.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나오는 기침을 참는 게 고통이라면 고통이었다. 그러다가 겨울로 접어들면서 기침이 너누룩하더니 겨울방학이 임박해서는 거짓말처럼 말끔해졌다. 죽음이 두렵지 않았기에 그리 반가운 것도 몰랐다. 다만 더 이상 어머니를 눈속이는 고생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개운해졌다.
이후로 대학시절에는 봄가을 환절기면 어김없이 마른기침이 더치곤 했지만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징병검사 때 결핵이라는 판정으로 징집면제를 받았다. 그래도 아랑곳없이 아버지의 내림을 받아 산을 쏘다녔다. 그러던 중 후배 윤수의 연인인 홍원희를 만났다. 영묵을 우상처럼 쫓아다니던 윤수였다. 늘 조치개처럼 붙어서 캠퍼스를 누비던 두 사람이었기에 홍원희는 자연스럽게 어울려 들어 삼총사가 되었다.
산을 좋아하여 강의가 없는 날이면 도봉산이나 북한산, 또는 수락산을 오르내렸다. 산을 오를 때는 그는 늘 혼자였다. 그에게 산은 신앙과도 같았다. 아무리 가까운 윤수라 해도 그는 한번도 같이 가자는 소리를 안 했다.
그리고 윤수가 입대했다. 남겨진 홍원희는 영묵에게 더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핵균이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간 헐치한 결과였다. 산에 오르지 못했다. 출면 못한 끝에 병원에 들어갔다. 다행히 그가 늘 울가망하던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신 뒤였다.
날마다 홍원희가 병상으로 그를 찾아왔다. 어느 날인가 몹시 추운 날, 찬바람을 무릅쓰고 그녀가 왔다. 창밖을 내다보면서 그녀가 말했다.
“내일 눈이 온다 그러던데 일기예보에서. 아 빨리 첫눈이 왔으면 좋겠다.”
그 말에 영묵도 영산이 올라 잠뿍 생기 실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용순의 충격은 오래 갔다. 세상에 딸을 중늙은이에게 팔아먹는 아버지가 다 있을까. 그녀는 울다울다 기색하여 쓰러졌다가 깨도하여 사수 들린 듯이 헛소리를 하다가는 다시 역한 단내를 풍기며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그녀가 겨우 비틀거리며 몸을 추서기까지는 근 반년이 걸렸다. 병석에서 그녀는 사뭇 월남장수에 가위눌리기도 하고 아버지가 크게 입을 벌리고 웃는 곡두를 보기도 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은 신열도 차차 가라앉고 허영거리나마 제출물로 화장실을 드나드는 때였고, 병이 성할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으며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기할 뿐 그 어떤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몸이 추서고 나서 잔질을 묻힌 채 집을 나섰다. 아버지가 있는 곳에는 단 일초도 있기 싫었다. 어슴새벽에 골목을 나오면서 여러 날을 노상 딸 옆에 붙어 앉아 간병하느라 오히려 파리하게 겅더리된 어머니가 가슴에 걸려 흐느껴 울었다.
여기저기를 다녔다. 걷는 길처마다 가을이 한창이었다. 죽고만 싶었던 심정은 날이 지나면서 헤실바실 희미해지고 대신 삶의 생기가 슬그머니 살아났다. 세상은 더 살아도 손해만 볼 것은 아니라고 한포국했다.
경상도 안강읍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읍에서 더 들어간 강동면의 한 공동체마을에서 사과를 키우고 있다는 신출내기 농부였다. 그 마을에서 며칠을 묵으며 그녀는 진짜 사람냄새를 맡았다. 졸부 아버지의 후광 덕에 고량자제로서 몸에 밴 설만과 도도함이 치욕스럽고 부끄러웠다. 더더구나 대구에서 막 귀농했다는 그 남자는 그녀가 도시에서 겪지 못한 듬쑥하고 여낙낙하기 이를데없는 남자였다. 그는 진즉 도시 때를 벗고 아주 싱그런 농군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곳을 떠나올 때 그 남자는 한겻이나 사과밭을 편답해 알새가 큰 놈으로만 골라 따다가 무거워 들지 못할 만큼 잔뜩 가방에다 들려주었다.
“지가 초보라서 아직은 벤벤치 않지마는요, 내년엔 아마 용순 씨만큼 이쁜 사과를 마이 맨들기라예. 그때 꼭 놀러 오이소.”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가로수 은행나무가 간들간들 몇 장의 잎만 남겨 놓은 늦가을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심조증으로 시난고난 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목숨을 건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봄에 구메혼인을 했다. 신랑은 월남장수였다. 억혼이 아니었다. 그녀가 제사날로 한 일이었다.
그녀는 이악스럽게 입을 감쳐물었다. 결코 행복하지 않으련다. 남편도 행복하게 하지 않겠다. 그저 되는대로 아무 의미 없이 살겠다. 자신 목숨을 포기하지는 못했지만 철저하게 자학하며 남편과 아버지에게 복수하겠다.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는 결혼생활이 한 해에 또 한 해가 보태지면서 아들 준이가 나오고 둘째 연이가 나왔다. 아무 의미 없이 또 한 해 위에 한 해가 쌓여 갔다. 지칠 만도 하건만 그러나 남편에게 그런 기색은 없었다. 이미 결혼 초기부터 아내의 애정은 기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녀가 더는 견디지 못할 지경이었다. 남편은 가정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였다. 객관적으로 완벽한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그럼에도 어떠한 애정의 실낱같은 늧도 생기지 않았다. 그저 의무적인 잠자리만 이따금 있을 뿐.
아파트 이웃 동에 있는 사내 하나가 그녀의 눈앞에 자주 보였다. 어느 때부터 남편은 자주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그 사내가 가까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사내의 의도적인 술수인지는 몰라도 가는 곳마다 그와 마주쳤다. 생김이 제법 억실억실하고 산드러진 청년이었다. 처음엔 몰랐는데 차차 날이 감에 따라 멀리 그의 모습이 보일라치면 가슴이 왈랑거렸다. 청년은 예모다우면서도 너름새가 좋아 그녀에게 누이라고 부르며 삽삽하게 굴었다.
그를 알게 되면서 그녀는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이성의 욕망이 이는 걸 느꼈다. 그런 음한 욕망이 어디 숨어 있었을까. 그 청년이 원했든 아니든 이제 그녀가 그에게 찌그렁이를 부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느날, 두 아이들을 놀이방에 보내고 하릴없이 초여름으로 가는 더운 햇살을 내다보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그 청년이었다. 그를 안았다. 처녀시절 방종과 갸기로 누비고 다니던 그 때 이후로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남성이었다.
그 청년에게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잠자고 있던 욕망을 깨우쳐 준 의미 이상은 아니었다. 그를 만나는 횟수가 더해졌다. 남편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불화는 없었다. 원래가 구순하지 못한 관계였다. 그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음을 확인하고 그녀가 그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 왜?”
남편은 오십 중반의 이마에 주름을 한껏 접으며 딱이 말했다.
“여적지 저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해쌌더니만 인자 이혼허겄다? 그 새끼가 살자 그러든가? 그려, 니가 씹질을 허든 밴대질을 허든 상관 안헐랑게 맘대로 혀. 허지만 이혼은 못혀.”
남편은 송곳 하나 안 들어갈 차돌멩이였다. 여태 몰랐던 부부불화가 그제야 생겼다. 남편은 변함없이 아이들을 대했다. 자주 집을 비우는 것도 같았다. 그러나 한가지, 아내의 몸에 손을 댔다. 자주는 아니었다. 이미 남남이 되다시피 한 그이므로 마주쳐도 데면데면하게 소 닭 보듯 하는 그녀에게 다짜고짜 손찌검을 하는 것이었다.
“허다못해 지나가는 개새끼를 봐도 그렇게는 안 허겄다. 나라고 정 읎는 너 허고 살고자븐 줄 알어? 그전에 벌써 니 속을 알아부렀어야. 헌디 나가 니헌테 멋을 잘못혔제? 나가 바람을 핀겨 노름을 헌겨. 그렇다고 돈을 안 벌어온겨? 시방 생각혀도 나가 니헌티 잘못헌 것은 읎어야. 그런디 너는 어째 나헌티 그리 텁터그리허게 대혔는가 말이여. 나가 말은 안혔어도 그간 을마나 꾸척시럽게 살았는지 알어? 니가 내 심사를 아느냐고!”
그간 받아온 내소박과 업시름이 너무 억울해서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그걸 보답해 주는 방법이 있다면 너를 안 놔 주는 거라고 남편이 눈을 흡뜨고 내질렀다.
속이야 곪았더라도 겉으로는 평온한 날이 이어졌다. 사는 게 고통이었다. 입을 감쳐물고 도지게 먹었던 집심도 어느새 헤실바실 사라지고 어서 이 나락(那落)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녀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준이와 연이였다. 여섯 살 연이는 나이보다 오된 아이라 제 어미를 손찌검하는 아비를 표나게 외대었고, 여덟 살짜리 준이는 맏이 행세를 하는 건지 노성하게 제딴은 어미를 달랬다.
“엄마! 난 엄마 아빠가 다 좋은데 엄마도 아빠랑 우리를 다 좋아했으면 좋겠어. 아빠도 그렇구.”
두 아이를 보고 또 장래를 생각하면 울컥 목구멍이 막히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동생 길수가 든든한 울이 되어 주었다. 그는 제 누이하고는 다르게 순되고 슬금하여 아버지 후광에 자세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 누이의 떠세를 질타하는 수도 있었다.
그런 길수가 시종 누이의 혼인에 대해 아버지를 욱대기며 벋서더니 종내 누이더러 다 걷어치우고 다른 길을 가라고까지 하였다. 그가 그 즈음에는 날마다 누이를 찾아와 자기가 알아봐 줄 테니 아이들 데리고 어디 멀리로 가서 살라고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길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때 용순의 마음이 향한 곳이 있었다.
‘내년엔 용순씨만큼 이쁜 사과를 마이 맨들기라예. 꼭 놀러 오이소.’ 경상도 강동면이란 곳에 듬쑥한 청년이 하나 있었다. 이따금 그가 무심코 떠오를 때가 있었지만 다만 그는 먼 나라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그 쪽으로 마음이 가고 있었다. 아직도 거기 있을까. 그러다가 선뜩 놀라곤 했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해 이 지경까지 온 년이 이 무슨 헛된 가공망상이란 말이냐. 그리고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헛된 망령은 부리지 말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남편의 태도가 바뀌었다. 아예 그 쪽에서 이쪽을 백안시하는 것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그저 “물 줘” 따위 극히 의미 없는 말만 시틋하게 뱉을 뿐이고 들어올 때도 나갈 때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으며 숫제 사람이 눈앞에 없는 듯이 행동했다.
되려 용순은 그것이 용신하기가 좋았으나 그럼으로 해서 더 정나미가 떨어졌다. 남편은 같이는 자되 어쩌다 그녀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냉갈령을 부리며 몸을 사리고 돌아누웠다. 그리고 아침이면 밥상에 앉아 밥알만 되작거리다 말없이 나가곤 했다.
그녀의 마음이 참을 수 없이 들썽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텔레비전에 바로 그곳, 강동면의 그 공동체마을이 소개된 것이다. 왈랑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는 가운데 화면에는 그 때 그 사람들이 변함없는 얼굴로 나왔다. 십여 년 전 한창 경운기를 배우느라 입을 씰룩거리며 핸들을 꺾던 강씨 아저씨가 능숙하게 경운기를 타고 나타나고, 유난히 용순에게 다정스럽게 대해 주던 경숙 씨 부부도 수더분한 중년이 되어 나란히 카메라 앞에 섰다.
용순의 마음을 달막이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 남자였다. 가슴을 졸이며 화면을 지켜보던 그녀는 한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아! 저이. 아직도 있구나. 원거리촬영이라 얼굴은 자세히 볼 수 없었지만 그녀의 가슴은 세차게 뛰놀고 있었다. 저 남자가 아직도 있구나.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 남자가 딱이 용순에게 그 어떤 늧도 보여준 적이 없었건만 그와는 어떤 운명적인 끈이 연결된 듯한 감정이었다.
그래 가자. 여지가 없었다. 가긴 가되 남편을 흘러나 보아야겠다고 도스르고 남편을 기다렸다. 이틀이나 뒤에 들어온 남편에게 말했다.
“준이 아버지! 이제 더 이상 안되겠어요. 이혼해야겠어요.”
남편은 별 시식잖은 여편네 다 보겠다는 표정이었다.
“이혼할래요. 아니면 나 죽어요.”
시울을 붉히며 숨을 다가 몰아쉬었지만 남편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웃기네.”
그러고는 더 이상 말상대도 하기 귀찮은 듯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이에요. 나 내일 떠날 거에요!”
방으로 따라 들어가며 소리쳤지만 여전했다.
“맘대로 혀, 안 말릴텐게.”
“애들두 데려갈 거예요.”
“누구맘대로? 갈 테면 혼자 가!”
“이젠 안 올 거예요. 그래서 애들도 데리고 갈라구요.”
“미친 년!”
남편의 손이 목직하게 그녀의 뺨에 철썩 떨어졌다.
이튿날 용순은 준이와 연이를 데리고 영천행 버스를 탔다. 봄이 바투 다가온 삼월의 첫날, 그 해의 마지막 눈이 날리고 있었다.
봉정암 뒤로 병풍처럼 선 험한 돌비알에도 길이 있었다. 지돌이 안돌이를 지벅거리다가 잠깐 서자 발아래 움푹 구곡담 계곡을 파고 힘차게 뻗어내린 용아장성릉이 한 눈에 들어왔다. 자연은 어찌 그리 신비로운지 불과 하루 사이에 발밑 양쪽 능선에 제법 단풍이 울긋불긋했다. 정용순 그 여자도 전연 딴판으로 싱둥해져 보기가 좋았다. 산장에서 일떠나 그녀는 힘이 넘친다면서 영묵을 앞질러 대청봉에 올랐다. 회색 구름 사이로 붉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찬바람이 목구멍까지 갑시는 것도 아랑곳 않고 크게 입을 벌려 연신 탄성을 질러댔었다.
봉정암은 왁시글덕시글 사람들로 초만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산유곡에 있다는 이 작은 암자에 이토록 인총이 많은 것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의 한 곳으로 수많은 우바이 우바새들의 기도처요 순례지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자 하는 불자들의 신심이 이 험준한 곳에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용케 알아보고 전날의 그 중년여자가 다가와 아는 체를 했다. 이 사람들이 다 거기서 잤다는 그녀의 말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정용순은 거기서 그네들과 다시 합류해야 했지만 그녀가 백담사까지 동행해 달라고 고집하여 중년여자와 작별을 나누고 올라온 터였다.
중년여자는 그새 환경에 물들었음인지 안날보다 한껏 처연한 태도를 하고 있었다. 헤어질 때 그녀가 두 사람을 향해 경건하게 합장을 하며 말했다.
“부처님 가피로 모쪼록 펜한 길 가입시더.” 그리고 영묵을 보고는,
“성불하시이소.” 깊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저도 모르게 마주 고개 숙여 합장했지만 영묵은 깜짝 놀랐다. 성불이라니! 이 아줌마가 더위를 먹었나. 성불이라…… 나 참. 그래도 그녀의 태도는 누구도 감당 못하게 사뭇 진지하고 위엄 있었다.
오세암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중중첩첩 천봉만학이었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천야만야한 돌비알을 나무늘보처럼 는지럭거리며 한 시간 남짓 외밧줄에 매달려 사투를 벌였다. 다행히 정용순이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없어 영묵은 그리 지정거리지 않고 험한 절벽 코스를 빠져 나왔다.
깊은 산속 치고는 제법 넓은 상사목이었다. 가쁜 숨을 쉬고 나자 삽상한 바람과 함께 쏴한 물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거품을 뿜으며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서덜에 부딪쳐 공중으로 날아 흩어지는 비말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선득하게 했다.
물을 보자마자 영묵은 신을 벗고 들어서서 허푸허푸 세수를 했다. 정용순은 물살이 잔잔한 곳을 골라 반석 위에 앉아 물속에 발을 드리우고 앉았다. 그곳엔 두 사람뿐이 아니었다. 험한 낭비알을 내려온 사람들의 중간 휴식지로서 손색이 없는 분지같이 아늑한 상사목이었다.
서덜 여기저기에 사람들이 제멋대로 지지벌개고 있었다. 인총이 많은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한쪽에선 파라솔을 꽂아 놓고 차와 음료수도 팔고 있었다. 파라솔 뒤쪽엔 느릅나무 숲이 어두침침했다.
칡차 한 잔씩을 마시고 느릅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쏴아아 숲으로 바람이 들어와서는 이리저리 맴돌다가 다시 쏴아 하고 사라져 갔다. 바람에 잔뜩 가을이 묻어 있었다.
“느릅나뭅니다.”
영묵이 말했다.
“아, 이게 느릅나무구나. 이름은 많이 들어봤어요. 유진 오닐의 희곡에도 나오죠?”
정용순의 목소리에도 가을이 묻어 있었다.
“느릅나무 밑의 욕정이요?”
“그 제목 때문에 느릅나무라는 이름을 들으면 꼭 관능적인 상상이 떠오르곤 했는데 이게 느릅나무라니요, 전혀 그런 것을 느낄 수가 없는데요. 이렇게 싱싱하고 푸른데.”
어제 저녁만 해도 그녀에게선 짙은 어둠 같은 습한 기운이 발산되었었다. 그런데 지금 여자는 정말 상큼하고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영묵은 눈을 지긋이 감고 그녀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았다.
십년 전 아내 홍원희와 처음 설악산을 왔을 때 아직 와병중이라 권금성에 와서 그는 더 이상 걷지를 못하고 퍼더버렸다. 그때 그의 어깨를 살포시 안으며 몸을 기대오던 아내에게서 싱그런 풀냄새가 났었다.
남의 애인을 강탈했다는 크나큰 죄의식을 안고 원희와 결혼했다. 그러나 꿀같이 달콤하지 못했다. 특별한 진인(眞因)은 없었다. 뒤에 두고두고 는지럭대는 것이 이것이었다. 시작이 잘못되었다!
병추기인 그의 바라지를 위해 재산은 구겨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달랑 전셋집 하나가 남겨졌다. 천행으로 그의 병세가 차도가 있어 오롯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동네에다 조그만 비디오점을 차렸다. 결혼초에는 그럭저럭 단란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영묵에게 폐병이 아닌 다른 병균이 스미기 시작했다. 자신도 그것을 몰랐다. 어느날 보니 깊은 병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래 삶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그냥 나왔으니 숨쉬고 살 뿐, 꿈도 희망도 목표도 지니지 않았다. 하늘이 준 삶을 그대로 받아 하늘이 부르면 원망 않고 그의 곁으로 간다는 것이 그의 삶의 철학이었다. 그래서 폐병이 검질기게 괴롭혀도 세상을 안존하게 관조하며 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다만 길을 못 떠나고, 산을 못 오르는 것이 답답해 폐병이 반갑지 않을 뿐이었다.
그런 그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버거웠다. 애초 결혼할 때부터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드레난 기계처럼 삐걱거린다고 생각했다. 달콤한 스위트홈은 가뭇없고 대신 그는 자신의 병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시작하여 아내에 대한 목마름이 비뚤어져 갔다.
처음엔 가출로 시작했다. 아무 말 없이 나가서는 이튿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들어왔다. 차츰 외박 일수가 길어졌다. 아이가 태어났다. 아내는 아이로 해서 남편의 마음이 돌아서길 기대하는 것 같았으나 그래도 그의 기행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병을 헐치하고 술이 늘었으며 한 달 이상을 산으로 떠돌다 들어올 때도 있었다. 그 때 청송의 박 처사를 알게 되었다.
“글쎄. 사주를 보면 원진살은 없는데 상호를 보니 부부운이 희박하긴 하구먼.” 박 처사가 영묵의 얼굴을 톺으며 말했다. 박 처사의 표정이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원희야! 우린 잘못 만났지? 만약에 우리가 헤어진다면 아무 것도 아닌 걸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안되겠지?”
어느 밤 술에 취해 들어온 영묵이 역한 문뱃내를 풍기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는데 심한 갈증에 잠이 깼다. 일어나려다가 귀에 선 소리가 들려 그대로 누워 귀를 기울였다. 아내가 어두운 구석 책상에 엎드려 흑흑 흐느끼고 있었다.
아침에 아직 풀리지 않은 눈을 하고 그가 말했다.
“미안해, 그런 얘기. 너한테 정말 미안하다. 나도 나를 모르겠어. 왜 그런지를 알기만 하면 나도 나를 잡아 놓겠는데 말이야. 당신이랑 현준이가 너무 무거워, 나한테. 모든 게 자신이 없어. 내 자신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니 너를 안아 보듬기가 힘에 벅차. 처음엔 니가 내 옆에 있으면 참 편안하고 좋았는데. 너랑 함께 있으면 모든 게 자신 있었는데 말이야. 뭐가 잘못된 걸까?”
영묵 그 자신 그때는 몰랐다. 아내 원희도 물론 몰랐을 것이다. 그가 나타났을 때 비로소 깨단했다. 원희의 옛 애인이자 영묵의 옴살 후배인 신윤수가 아들 현준이의 담임선생이 되어 나타났을 때 그의 가정에 그토록 짙게 배어 있던 어두운 그 정체가 바로 그였음을. 그의 가슴 한켠에서 비로소 신윤수의 존재가 나 여기 있소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
“아저씨는 이제 포근한 집으로 돌아가시겠죠. 그런데 우리 주위에는 돌아갈 데가 없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저도 그 중의 하나지만요, 히히”
정용순이 겸연쩍게 생긋거렸다. 가을바람은 계속 느릅나무 숲을 드나들고 있었다. 직박구리가 시끄럽게 날며 우짖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 어제의 내가 아니라는 느낌이었어요. 몸도 아주 개운하고요. 이젠 혼자서도 견뎌 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을 귓전으로 들으며 영묵은 또다시 아내 홍원희를 생각했다.
처음엔 몰랐다. 그날도 한 보름을 산을 다니다가 돌아온 날이었다. 아이가 그를 보더니 한달음에 달려와 안겼다. 그리고는 다랑귀를 뛰며 말했다.
“다 싫어! 엄마도 싫구, 선생님두 싫어! 나두 아빠 따라 다닐 거야!”
그는 원희 이외 여자는 모르고 살았다. 폐병에 시달리면서 행인지 불행인지 그의 지감은 예민해져 사람이 내쏘는 냄새는 깔축없이 그의 오감을 비켜 가지 못했다. 오랜만에 아내를 안았다. 그녀에게서 낯선 냄새가 났다. 정신이 어리쳐 순간 당황했다. 갑자기 죽어 버려 더 이상 행위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상하게 하나도 서운하거나 배신감이 들지 않았다. 오래도록 기다리던 그것이 결국 온 것이라는 자조적인 포만감이었다.
아내와 살면서 수없이 헤어지자고 말했다. 물론 마음 속으로였다. 다 벗어 버리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고 싶었다. 그래도 자신이 쌓은 업장이니 다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강하게 심지를 굳혔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아내에게서 남자 냄새가 난 것이다.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녀에게서 거리낌없이 버림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그 자신 참 추접하고 더러운 인간임을 자학하며 싸늘하게 미소 지었다.
그 후로도 현준이는 걸핏하면 학교 가기 싫다느니 아빠 따라 다니겠다느니 하면서 징징댔다. 선생님이 밉다고도 했다. 또 엄마가 싫다고도 했다.
추저분한 짓이라고 스스로 책하면서도 아이를 핑계하며 아내 뒤를 미행했다. 어느 정도 예감은 갖고 있어 크게 놀랄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내가 만난 사내가 누구인가를 숨어서 보고는 그만 정신이 어리뜩해졌다.
윤수, 후배 신윤수였다. 십 몇 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편해졌다. 이제 비로소 모든 것이 원상태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원희의 원래 주인은 신윤수였다. 미쁘게 그에게 돌려주고 홀가분하게 길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아들놈이 걸렸지만 그 녀석도 윤수에게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부모 중 누군가는 맡아야 하고 자신은 안 되니까. 원희를 사랑하는 만큼 현준이도 윤수가 잘 거두리라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아들에게 마음이 자꾸 갔다. 보낸다고 생각하여 마지막 애정이 아쉬운 것일지도 몰랐다. 녀석은 부쩍 말이 없어졌다. 늘 혼자 방에 있기 일쑤였고, 기색(氣色)이 어두웠다.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어린 눈치에도 제 어미와 선생님의 심상찮은 기미가 싫었을 것이다. 또한 아비 노릇 한번 제대로 못해 준 게 못내 쓰렸다.
그래서 한동안 아들을 몰래 지켜보곤 했는데 한번은 녀석이 학교 간 뒤에 그 애 방을 들어가 보았다. 어쩌다가 서랍을 열어 보았다가 수상한 걸 발견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예리하게 날이 선 칼이 있었다. 또 서랍 안에는 작은 약병들이 여러 개 있었는데 뭔가 하고 하나를 집어 뚜껑을 여니 시너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른 병들도 뭔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이 다 화학약품이었던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녀석은 분명 무언가를 꾸미고 있었다. 기가 막히고 무섭기도 했다. 열 살밖에 안된 그 조그만 몸 어디에 그런 내숭한 악마가 숨어 있을까. 어느 정도는 영리하고 올된 아이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영리함과는 전혀 틀린 성질의 것이었다. 무관심과 소외, 증오 그런 것들을 먹고 언제든 뛰어나올 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악마가 그 몸 안에 들어 있었다. 귀기가 서린듯하여 영묵은 얼른 그 방을 나왔다.
그날 밤 영묵은 잠을 자지 못했다. 아직 어섯눈을 뜨지 못한 녀석이 제 어미한테 무슨 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의 등하굣길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아무 확신도 대책도 없이 무작정 아이를 따라다녔다. 내두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예감이 있었다. 물론 집에서도 감시의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날, 숨어 있던 흑막의 꼬투리가 보였다.
그날 역시 학교 앞에서 캔맥주 하나를 따 들고 서성이는데 아이들이 삼삼오오 나오기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담장을 기대고 느런히 서 있는 무궁화 가지에 몸을 가리고 보자니 아이가 나왔다. 발맘발맘 따라가려니 아이가 찻길을 건넜다. 집으로 가려면 찻길을 건너지 않는다. 한 십 분쯤 따라가니 아이는 무슨 맨션아파트로 들어갔다. 대번 신윤수의 집이라는 걸 알았다. 아이는 안으로 들어가고 영묵은 관리실을 찾아 에멜무지로 신윤수의 이름을 대고 물으니 302호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무도 없을 집을 찾아 올라간다면 경비원의 의심이라도 살까 하여 담장 밖으로 나왔다. 못 견디게 바자왔다. 아이 녀석이 그 방에서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게 눈앞에 보였다. 역한 냄새를 풍기던 시너를 생각하자 당장에 맨션 건물이 시커먼 화염에 휩싸일 것 같았다.
오금을 졸밋거리기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가 나왔다. 손에는 책 몇 권이 들려 있었다. 아이는 다시 학교로 들어갔다. 영묵은 맨션아파트로 되돌아와 302호로 올라갔다. 검은 화염이 아니라면 아이의 책상서랍에 있던 각종 약품으로 미루어보건대 녀석이 제 선생님의 방에 저지레를 쳐 놨을 거라고 지레짐작을 했다. 가령 물이나 음식물 따위에 독극물을 넣는 무서운……
가슴이 뛰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고 영묵은 생각했다. 신윤수를 그런 일로 만난다는 게 던적스럽고도 찐덥지 못한 일이지만 어떻게든 불행은 막아야 했기에 거기서 윤수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거기 복도에서 보니 학교가 의외로 가까웠다. 복도 벽에 비겨 서서 한갓진 운동장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머리끝이 선뜩했다.
분명 현준이는 이리로 올 때 빈손이었으나 학교로 돌아갈 때는 책을 들고 있었다. 아하! 그럼 녀석은 제 선생님의 심부름을 왔다간 것이다. 그렇다면? 온몸이 수꿀해지는 느낌이었다.
그거구나! 영묵은 급하게 밖으로 나와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 과연 짐작대로 신윤수는 바로 그날 숙직이었다. 그렇다면 바로 현준이의 디데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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