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방

남촌에서

설리숲 2014. 2. 11. 08:53

 

 

                            1

 

 남풍이 불어온다. 저 남쪽 바다 어디에선가 시작된 바람이 오추산을 넘어 그 마을 들판을 지나가고 있다. 훈풍에 맨 처음 눈을 뜬 것은 토담 옆 묵정밭의 냉이였다. 이어서 산비탈 양지쪽에서부터 노란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논두렁에서도 싹이 돋았고, 얼음이 녹아 돌돌거리며 흐르는 개천가 방죽에도 여기저기 걷잡을 수 없이 싹들이 솟았다.

 들판을 지난 바람은 겨우내 윙윙대던 전깃줄을 스쳐 지나 그 마을 안 고삿으로 스며들었다. 그리하여 늘 어둡고 춥기만 하던 돌담 밑 그늘에 달리아도 싹을 틔웠다. 뒷산에 진달래가 피었다 지고, 다시 철쭉이 붉게 피었다. 붉은 철쭉을 두른 산이 그 마을을 고즈넉하게 내려다보고 있다.

 

 파랗게 물결치던 보리도 제물에 지쳐 점점 누래지고 있다. 일렁이는 보리밭 언저리를 처녀아이 하나가 걸어간다. 순영이다. 보리밭 가를 따라 뽕나무가 죽 서 있다. 처녀아이는 그늘을 골라 걷고 있다.

 오디는 아직 익지 않아 벌겋다. 한 순(旬)은 더 있어야 까맣게 익을 것 같다. 그렇건만 순영이는 벌건 오디를 두세 알 훑어 입에 넣는다. 잘근 오디알을 깨무는 이빨이 하얗게 싱둥하다. 콧등이 찌그러진다.

 "애퇘퇘! 뻐꾸기는 저리 울어쌌는디 요놈의 오디는 워찌 요리 더디 익는다냐."

 샐쭉 비튼 입술이 새초롬하니 예쁘다.

 뽕나무가 끝나면 오솔길이다. 아까시나무가 줄지어 섰다. 처녀아이가 어웅하게 그늘진 그 오솔길로 들어선다. 고수버들 아래 머슴애 하나가 처녀아이를 기다리고 있다. 윤오다.

 "야 인자 오냐! 모가지 빠져불겄다."

 순영이의 까만 데드론치마가 보이자 그 얼굴에 생기가 돈다.

 "휴! 날이 벌써부텀 요로콤 더워 으짠다냐.'

 털퍼덕 주저앉은 순영이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윤오야! 너넌 일도 않고 워째 밤낮 나만 불러쌌냐? 안직 불알도 안 여문 것이 고리 지집을 볼키면 못쓰는디."

 짓궂은 퉁박을 주며 순영이의 눈이 생글생글 웃는다.

 " 가시내 버르장머리읎기는. 함부로 이름 불러쌈스로. 지발 한번만 오빠라고 혀 봐라."

 "치, 개우 한 살 더 먹은 것 개지고 밤낮 우세는. 쓰잘디 없는 이약 관두고 헐 말 있담서? 어서 히봐. 나 오늘은 일찌거니 들어가야 헌께."

 허나 행투는 느긋하기만 하다.

 "워째 너넌 보기만 허믄 간다는 이약부텀 허냐? 그리여, 오늘은 나가 헐 이약이 있은게."

 윤오가 땟국에 전 적삼 안섶에서 신문지에 싼 것을 꺼낸다.

 "이거 먹어 보라마."

 부시럭거리며 신문지를 벗기자 순영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으메, 이것이 뭐다냐! 쪼꼬레트 아니여?"

 "그려. 이런 것 먹어 봤냐?"

 "치, 저만 잘났대지. 나도 저번에 읍내서 먹어 봤당게. 워쪄 이거 나 먹으라고?"

 "어지께 읍내 나갔다가 너 줄라고 안 샀냐. 자 먹어라."

 포장지를 까서 한쪽을 떼어 처녀아이의 입안에 넣어 준다. 달콤한 맛이 스르르 입안 가득 퍼진다. 윤오도 입을 쩍 다신다.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물거리는 처녀아이의 입술을 보고 있자니 열이 인다.

 '히, 조 입술. 환장허겄네. 워찌 조리 도톰허게 생겠다냐. 하이고 조걸 기냥.'

 그 딸기같이 붉고 도톰한 입술을 다른 사내에게 빼앗길 수는 없는 것이다.

 진즉부터 그녀를 마음에 두었던 터다. 한창 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순영이를 눈독들이지 않는 총각은 없다. 까만 눈을 살포시 들어 혹 어느 때 상대를 치켜볼 때는 총각뿐 아니라 나이 직수굿한 남정네까지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것이다. 게다가 한창 물오른 몸은 뭇 사내들의 밤을 눈뜨고 새우게 하기 충분하다. 그 나긋한 허리를 한드랑거리며 고삿길이나 논두렁을 걸을 때 보면 한껏 살 오른 엉덩이가 살랑거리매 바지게 지고 가던 김씨 노인도 슬며시 한번 돌아보고 만다.

 "허허, 고년 참. 궁뎅이 한번 통통허시. 저것이 시방 열아홉이제?"

 윤오는 그런 순영이를 다른 사내에게 빼앗길까 조바심이 났다. 한데 년이 통 말을 들어먹지 않는다. 이미 손목도 잡았고, 그 말랑한 젖가슴도 만져 보았다.

 그런데도 그녀의 태도는 영 시답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윤오를 싫어하는 눈치도 아닌 것 같으니 혼자서만 답답할 뿐이다.

 열흘쯤 전인가는 입도 맞추었다. 그날 밤은 두견이가 울다 지쳐 잠든 뒤에도 가슴을 달망거리며 뒤척였었다. 그렇건만 그를 대하는 계집애의 태도는 여전히 뜨듯미지근하게 심상하기만 하다. 게다가 그녀를 탐내 넘성대는 놈들이 있는 걸 아는 터라 애가 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시집 안갈 것이구먼. 아부지허고 펭생 둘이 살라네."

 순영이는 그렇게 조잘대고 마는 것이다.

 그래 요 며칠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궁리한 것이,

 '그려. 고년을 먹어부는 거여. 그럼 저도 벨 수 있간디.'

 암만 생각해도 그 수 밖에는 궁리가 안되었다.

 "워쪄, 맛 나제? 너 먹고잡은 것 있으면 다 말혀라. 내 다 사줄텡게."

 초콜릿향기가 아까시향기보다 진하게 오솔길에 퍼진다.

 "너 오늘은 참말 답혀야 쓴다."

 윤오가 정색을 하고 첫 말을 끄집어 내도 순영이는 그저 무심하게 초콜릿만 빤다.

 "너 정말 내헌티 시집 안올테여? 나 미쳐불겄다 너땜시."

 그래도 마찬가지다.

 "너 답허기 전엔 오늘 못갈 거그먼. 내 오늘참은 오지게 작심혔은게. 좋으믄 좋다 싫으믄 싫다 양단간에 결정혀라. 행에라도 나가 싫다믄 콱 죽어불란다. 니럴 내 각시로 못 셍길 바에야 기냥 항꾼에 죽어분 것이 나슨게."

말하고 나니 눈에 불이 인다. 그제서 순영이가 여느 때와 다른 낌새를 느끼고 윤오를 쳐다본다. 덥석 그가 손을 잡는다. 그녀가 눈을 내리뜬다. 윤오의 투박한 두 손이 순영이의 보드라운 손을 맞잡고 비비댄다.

 "나넌 니 없인 못 산다. 나 죽는 꼴 보고잡지 않으믄 내 말 좀 들어주라마. 내 호사시켜 줄랑게, 지발 잉?"

방금 전의 강단지게 다짐받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애원조로 바뀌고 만다. 손을 잡아끈다. 그리고는 순영이의 어깨를 감싸안고 끌어당긴다. 코앞에 바싹 그녀의 입술이 다가와 있다. 탐스럽다. 저도 모르게 입이 헤 벌어진다. 훅, 하고 입냄새가 풍긴다. 달콤한 초콜릿 냄새도 풍긴다. 참지 못하고 입술을 포갠다.

 입과 입이 부벼지고 순영이가 윤오의 등을 안고 뒤로 넘어진다. 뭉클하게 가슴이 닿고 윤오가 슬그머니 가슴을 더듬는다. 순영이 몸을 비틀며 그의 손을 밀어낸다.

 "안되야 이럼. 나 집에 갈란다."

 윤오는 그녀를 자꾸만 끌어당긴다.

 "내 오늘은 일 저질르고 말 것이구먼. 내 맘 잘 암스롱 워째 애간장을 태운다냐."

 "여그서 이럼 워치게. 사람 댕기는 질바닥인디."

 순영이 중얼거린다. 새근거리는 입김이 윤오의 목에 와 감긴다. 윤오의 눈에 아까시나무 뒤로 보리밭이 들어온다.

 멧새 하나가 봄의 푸른 허공을 까불대며 날고 있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에 보리가 한층 누렇다. 보리밭 한쪽 가에서 보리이삭들이 슬렁슬렁 움직이더니 보리밭 가운데로 움직여 간다. 분명 사람임에 틀림없다. 윤오와 순영이다. 누구 하나 관심 두고 보는 이 없다. 들대엔 아무도 없다. 다만 밭 한가운데서 보리가 풀썩 넘어지고 웅덩이가 패듯 구멍이 뻥 뚫려 있어 밭 임자가 보면 성 좀 나겠다.

 보리를 짓뭉개 가며 일을 마쳤다. 처녀아이의 등짝에 아직 덜 여물어 푸르딩딩한 이삭이 하나 붙어 있다. 아까 집에서 나올 때 그렇게도 정성 들여 빗은 머리는 제멋대로 헝클어졌다.

 "인자 니는 내 것이제?"

 윤오가 다짐받듯 중얼댄다. 땀이 끈적한 팔뚝에 까끄라기가 잔뜩 붙었다. 쓱 한번 문지른다.

 "나 빨리 가봐야 쓰겄구먼. 아부지가 지둘신께로."

 눈을 내리뜨고 있던 순영이가 옷매무새도 안 매만지고 엉금엉금 기어 나간다. 통통한 그 엉덩이를 바라보다가 윤오도 반대편으로 기어 나간다.

 

 

 

 

                                         2

 

 마을에서는 집집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워떤 배라먹을 새끼덜인지 잽혀만 봐라. 아 한참 찰방지게 여무는 보리를 그 모냥으루다 버르적거레 놓느냐 말이여. 에이 육시럴 놈들!"

 "아깨 보닝께 승구 아배가 얼굴이 시뻘개져 갖고 낫 들고 돌아댕기더먼. 그 집 밭은 반은 다 베레놔 부렀으니 그 아자씨 열통 안 터지겄어."

 "혹 산짐승 아니까?'

 "산짐승이 뭐러 가운데꺼정 기들어가 분탕질을 혀 놀랍디여, 가생이는 기냥 놔 놓고. 보닝께 하낫도 처먹덜 안했더구만. 에이 잡녀러새끼덜!"

 푸지게 욕은 해 대고서는 돌아서면 그걸로 끝이었다. 보리밭을 분탕질 친 놈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제가끔 엄하게 단속한 때문에 보리밭은 이제 더이상 망가지는 일이 없어졌다. 대신 뒷산으로 올라가는 짐승이 새로 생겼다. 연초록으로 나무들은 새 잎을 달았다. 무성한 수풀을 헤치며 그 짐승들은 조마조마하게 산을 오른다.  어느 누가 관심 두고 보는 이는 없다. 다만 이제 그 잡녀러새끼들이 없어져 보리가 더이상 망가지지 않으니 그게 후련하다.

 철쭉이 흐드러진 등성이 바위 뒤에 사내 하나가 앉아 있다. 만길이다. 계집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내라 마누라의 감시하는 눈이 육장 따라다닌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속 깨나 달궜다.

 만길이가 벌써 파고다 담배를 두 개비나 피고 또 하나를 빼어 물 때쯤에 반송가지가 흔들리더니 처녀아이 하나가 나타난다. 순영이다. 발그레한 얼굴에 땀방울이 흐른다.

 "잉, 어서 오그라. 심들제?'

 만길이의 작은 눈이 더 작아진다. 입이 헤 벌어진다.

 "아이 심들어! 벌써부텀 날이 요로콤 더워 으짠다냐."

 만길이 멀찍이 털썩 주저앉는다.

"뭐땀시 여그꺼정 불러낸디야? 나 일찌거니 들어가야 헌께 얼릉 헐 이약 있음 혀 보시씨요."

 "알었다. 나가 니헌티 헐 말이 좀 있당게. 긍께 이리 가차이 좀 오제, 그러코롬 떨어져 있지 말고."

 순영이가 슬금슬금 앉은걸음으로 다가앉는다.

 엿새 전에 만길이는 방죽에서 순영이와 마주쳤다. 마침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 교태 잘잘 흐르는 처녀아이를 보자 작은 눈이 가늘어졌다. 대뜸 순영이를 들쳐업고 고섶의 보리밭으로 내달아 들어갔다.

 평소에 침을 흘리며 훔쳐보던 젖통이며 궁뎅이를 마구 주무르며 욕심을 채웠다. 보릿대를 깔고 늘어진 순영이를 뒤로 하고 나오며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것이 하낫도 반항을 안 허네. 허, 고년 참.' 반항은커녕 되려 자기의 몸을 더 끌어당기던 것을 생각하고 그는 빙긋이 웃었다. 요 다음에 또.

 달래도 보고 을러도 보고 하여 기어이 산으로 순영이를 불러낸 것이다.

  "음메, 왜 이런다요!"

 만길이가 손을 들어 저고리 섶을 들추자 순영이 펄쩍 물러나며 암상을 부린다.

 "쪼깐만 이리루 와 보랑게. 아 그리야 헐 이약을 허제."

 순영이에게로 바투 다가앉는다. 그러고는 거침없이 치마 속으로 손을 뻗는다. 순영이가 움찔하고 엉덩이를 뺀다.

 "이것이 무슨 짓이다요. 이러믄 안되는디."

 그러거나 말거나 만길이는 그녀를 덮쳐누른다.

 "이러믄 안 되는디. 아자씨! 음마!"

 가까운 곳에서 휘파람새가 지저귄다. 바위 뒤에서는 연신 음마 이럼 안되는디, 아자씨 이럼 안되는디. 비음섞인 소리가 들려 온다.

 "아줌니헌티 들켜불면 워칙헐라그요? 나겉은 것은 한 주먹에 직방으루 뻗어불 것인디. 인자 오늘만 지면 아자씨 안 만날라요."

 들판에서 보릿내음이 실바람을 타고 올라온다.

 

 

 

 

                                       3

 

 들판은 누렇게 익어 간다. 실하게 여무는 보리밭들을 여기저기 분탕질쳐 놓은 잡녀러새끼들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없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도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의 마음 속에 불씨같은 비밀들이 있는 것이다. 누구도 입 밖에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아낙네들은 제외다. 남정네들만의 빨간 불씨. 묵언의 약속이다. 그렇거나 말거나 보리이삭들은 제물에 척척 휘어져 간다.

 동이 트기 전부터 사람들은 부산을 떨었다. 승구네 보리를 베는 날이다. 잔입으로 아침내 떠들썩하게 밭 하나를 끝냈다. 짭쪼름한 간조기를 해서 우걱우걱 조반을 먹고 다시들 보리밭으로 어기적어기적 모여든다.

 "으잉! 이것이 뭐다냐!"

 한창 일이 손에 익어간다 싶었다. 승구 아배가 눈을 감았다 뜬다.

 "무신 일이요 승구 아배?"

 사람들이 허리를 펴고 그 쪽으로 눈알을 모은다. 승구 아버지가 보리 사이를 버르적거려 뭔가를 집어 든다.

 "요것 보랑께. 이것이 뭐여?"

 목소리가 어째 떨려 나온다.

 "워따, 그것 가락지 아니라고? 금가락지구마잉!"

 사람들의 눈알이 커진다. 입이 헤 벌어진다. 가락지다.흙이 묻어 거무튀튀해도 틀림없는 금가락지다. 석 돈은 좋이 돼 보인다. 사람들이 모여든다.

 "와따메, 고것 엄청시리 실허네요 잉. 솔찬히 값나가겄구만이라."

 "아따, 승구네 행재 히부렀고마이. 자네 돼지 꿈 꿨는가?"

 그날 밤, 극성스럽게 울던 두견이도 지쳐 잠든 고요한 고삿길을 사내 하나가 가고 있다. 용치다. 행여 발소리 날까 숨도 크게 못 쉬고 사부작사부작 달도 없는 어둔 길을 사르디뎌 어느 집 앞에 다다른다. 문도 없는 대문을 덥썩 들어가 곧바로 방문 앞으로 다가간다.

 "기신게라?"

 누구 들을세라 한껏 죽인 소리다. 잠시 안의 기척을 듣다가,

 "지무시는게라?"

 잠시 후 방에서 대답이 나온다.

 "뉘기여?"

 "……"

 빼꼼히 문이 열린다.

 "지구만요, 용치"

 "잉? 용치가 웬일이여? 이 야슨 밤에"

 "쪼깐 승구 아재헌티 디릴 말씸이 있구먼요."

 "그려? 싸게 들오와."

 "아 아니여라. 밖에서 말씸 디릴라요."

 그 저녁에 품앗이 일꾼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막걸리 한상 푸지게 대접했다. 뜻밖의 횡재라 인심 한번 쓴 것이다. 한데 그 자리에 용치가 안 보이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

뒤란 탱자나무 뒤로는 옥수수밭이다. 언저리에 커다란 평돌이 하나 박혀 있다. 두 사람은 거기 걸터앉는다.

 "자네 지냑때 워디 갔드랑가? 술추렘헐 때 안 보이드만."

 "야, 일이 좀……"

 "근디 헐 이약이 뭔가?"

 "야, 저기……"

 "에롭은 이야근가, 뭣을 그러큼 뜸을 드레싸?"

 "야, 말씸디리겄구먼요. 저기 아깨 아침나절에 줏은 가락지 말이여라. 그것이 실상 지꺼구먼요. 실은 접때 어른신네 보리밭을 그 모냥으로다 분탕질친 것이 지였구먼요. 어찌어찌 허다가 가락지를 거그서 잊어부렀는디요, 그걸 찾겄다고 그만 그리 망가뜨레 놨구먼요."

 승구 아버지는 반이나 망가졌던 자신의 보리밭을 생각한다.

 "그때 사실대루다 자백헐라고 혔는디 어르신이 너머 화가 나신성불러 차마 용기가 안 났구먼요."

 어두운 고샅길을 다시 되짚어 용치가 돌아간다. 그의 주머니에 승구 아버지가 돌려준 금가락지가 들어 있다.

멀끄러미 어둠 속을 향해 승구 아버지가 쓴 입맛을 다신다.

 "저눔아가 뭣땀시 남의 보리밭에 들어가 가락지를 잊어분거여?"

 조팝나무 사이로 머리 두 개가 움직인다. 순영이다. 다른 하나는 용치다. 두 사람이 이윽고 멈춰 앉는다. 떡갈나무 잎이 한 뼘은 되게 싸여 푹신하기가 이를 데 없다. 잎 썩는 냄새가 퀴퀴하다.

 "헐 이약 있담서. 얼릉 혀. 오늘 일찌거니 들어가 봐야 헌께."

 색색 숨을 고르며 순영이가 조잘댄다.

 "잉 그려. 나가 말이시 너 줄 것이 있당게."

 용치가 호주머니에서 누런 종이 뭉치를 꺼낸다. 행여 깨지기라도 할 양 꼬작꼬작 가만히 펼친다.

 "음메! 이것이? 금메 가락지 아니여?"

 순영이 눈이 열린다. 입은 그 보다도 열 곱은 더 벌어진다. 그 모양이 보기 좋아 용치는 마냥 흡족하다.

 "아나 이것? 접때 승구네 밭에서 잊어분 것 내 찾았구먼."

 가락지를 받아 손바닥에 올려 놓고 들여다보며 순영이는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이미 그 때 승구네 밭에서 받았던 가락지다. 그걸 손가락에 대충 끼었다가 용치가 너무 거칠게 다루는 바람에 손가락에서 빠져 버린 걸 일을 끝내고 나서 알았다. 그걸 찾겠다고 둘이서 보리밭을 망가뜨려 놓았다.

 순영이가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꼴을 보며 용치는 몸이 단다.이제 이쯤 됐으니 년은 이제 내 것이다. 일찍 간 마누라가 고맙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런 기막힌 계집을 꿈이나 꾸었을까 보냐.

 "고러큼 좋아? 아무헌티도 뵈주지 말아야 써. 니가 나헌티 시집만 와불먼 것보다 훨썩 큰 것두 혀줄랑게 지끔은 잠자코 있어야 되야."

 순영은 대답대신 눈을 흡뜨고 교태를 부린다. 그녀가 그럴 때면 사내들은 오금을 못 펴고 만다.

 풀썩, 푹신한 떡갈나무 낙엽위로 두 몸뚱이가 쓰러진다.

 "음마, 워째 이러요. 더워 죽겄는디. 헐 이약이 있담서 엉뚱한 일만 해쌈스로."

 둘의 몸이 낙엽에 묻힌다.

 누구도 보는 이가 없다. 마을 남정네들은 그러나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비밀들을 갖고 있다. 다만 서로들 모를 뿐이다.

 등짝에 초여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올 가을엔 장가들어야지 하고 용치는 다짐한다.

 

 

 

 

 

                                     4

 

 이른 봄에 남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하늘이 한동안 누렇다. 괜히 아는 척 하길 좋아하는 사람은 중국에서 모래가 날아와서 그렇다고 했다. 황사다.

 보리도 다 베어 가고 진초록이 산과 들을 뒤덮을 때도 하늘에는 또 한번 누런 바람이 분다. 송화가루다. 앞뒷산에 소나무가 지천이다. 소나무들이 일제히 꽃가루를 날린다.

 오줌 눌 새도 없이 바쁜 중에도 아낙네들은 종다래끼를 옆구리에 끼고 산으로 오른다.

 솔포기에 들러붙어서 아낙네들은 송화를 딴다.

 "올 갈엔 숭년이 들랑가, 겁나게도 많이 열었네잉"

 가루가 한 티라도 날릴까 조심조심 종다래끼에 따 넣으며 아낙네 하나가 야발스럽게 입빠른 소리를 한다.

 "누가 아니라고. 갈에 잔치가 있을랑갑는디 말이시."

 "잔치라고라? 누가 장개간다 그요?"

 "있잖여, 거 윤오 말이제."

 "윤오? 갸는 안즉 애셍이 아녀?"

 "애셍이는 무신. 나이 시물이먼 다 여물었을 거그만."

 "샥시는 워디 처넨디?"

 "아 것두 이적지 몰르고 있는감. 순영이배끼 누가 또 있다고."

 "그리여? 여태 깜깜소식이었구먼 나가. 하먼 혼약은 헌 게라?"

 "혼약은 안 했지마는 둘이 서로 좋아 지내넌 것은 쫙 퍼짔당게요. 읍내서 둘이 댕기는 것도 여러번 봤다 허드마요."

 "머시여, 글먼 확실헌 것도 아니네여."

 "아 처네 총각이 좋아 눈 맞추먼 되았제. 보라마 아매 존 소식 있을거그마."

 "글먼 존 일은 일인디, 순영 아배 그 홀애비가 딸년 여이고 워찌 산다냐 쓸쓸히서."

 " 아따 순영 아배가 고리 짜잔허면 거그가 한번 질을 터 보제. 홀애비 맴은 홀엄씨가 안다 안혀?"

 아낙네들의 질탕한 웃음소리가 솔숲으로 번져 간다.

 

 그들을 뒤로 하고 슬그머니 산을 내려오는 여인네가 있다. 윤오 고모다.

 "드러운 년이 어따 대고 꼬리를 살랑그려."

 윤오와 순영이가 좋아 지낸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 그 갈보년이 조카 윤오와 나란히 여편네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게 고약하기 이를데없다.

 순영이 년만 생각하면 가슴이 부들부들 떨린다. 달포 전이었다. 새참으로 국수를 삶아 남편이 일하는 밭으로 가니 윤오 고모부가 보이지 않았다. 밤나무에 소도 얌전히 매어져 있었다.

"이 냥반이 워디 간기여."

 곧 오겠거니 하고 채반은 두어 둔 채 비탈로 올랐다. 진달래가 지천이었다. 화사한 연분홍빛이 하도 고와 몇 잎 입에 따 넣고, 그 중 탐스럽고 고운 것을 골라 꺾으며 드텨 옮겼다.

 그러다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난 듯하여 발을 멈췄다. 그리자 또다시 풀썩 하는 소리가 났다. 꽃더미 뒤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네는 몸이 오싹하며 얼어붙었다. 어린애들 간을 빼먹으려고 진달래 흐드러진 곳에 문둥이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는 봄이면 애들을 무섬에 떨게 했다.

 "뉘, 뉘기여!"

 다리가 후들거려 도망칠 염도 못하고 소리지른 거였는데 그나마도 제대로 목 밖으로 내질러지지가 않았다.

잠잠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가슴만 콩닥거리고 섰다. 이윽고 사람 하나가 꽃더미 뒤에서 스윽 몸을 일으켜 모습을 내보였다.

 "익! 뭐여!"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남편이었다. 그 뒤에 사람 하나가 더 보였다. 기가 막혀 입만 벌리고 섰는데 그 년이 주섬주섬 옷들을 추스르더니 슬금슬금 뒷걸음을 쳤다. 순영이었다.

 그러더니 냅다 반송들 사이로 튀어 달아났다. 깝데기 벗은 허연 궁뎅이가 요란스럽게 실룩거렸다.

 그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몸이 부르르 떨렸다. 씹어 먹어도 분이 안 풀릴 터인데 그년이 조카 윤오를 홀리고 있었던 것이다.

 "고런 가랭이럴 찢에 쥑일년. 누가 에미읎이 자란 년 아니랄성불러 개지랄 떨어쌌는겨."

 혼자 중얼거리며 오라버니한테 넌즈시 물어보기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을로 내려간다.

 "하마 혼담이 오간 것은 아니겄제."

    

 

 

 

                                    5

 

 마지막으로 송 씨네 보리를 베고 나서 텅 빈 들판은 이번엔 곳곳에 여린 모가 파랗게 깔렸다. 어귀에 왕버들도 파란 잎을 무성하게 달았다. 마을의 당산나무다. 그 으늑한 그늘 밑을 처녀아이 하나가 지나간다. 순영이다.

 몸에 자꾸 달라붙는 옷이 자꾸 거슬린다. 상배가 사준 원피스다. 하얀 바탕에 분홍색 모란꽃이 가득히 들어찬 얇고 하늘하늘한 원피스다. 마을에서는 아직까지 그렇게 이쁜 옷을 입은 사람이 없다. 가까이 가 보면 순영이는 뽀얗게 분칠도 했다. 분도 상배가 사준 것이다. 더께로 분칠한 그 얼굴이 다들 밉다고 할 것이다. 다방년이라고 흉봐도 그리 틀린 건 아니리라.

 그러거나 말거나 순영은 마냥 들떠 납신거리며 읍으로 간다. 상배를 만나러.


 소티고개에서 잠깐 윤오를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삐죽 내민다. 윤오가 이따가 고수버드나무로 오라고 했다. 그러나 상배를 만나러 간다. 윤오가 좋다. 착하고, 무던하고 마음 씀씀이가 좋고, 부지런하고 허우대가 튼실하다. 그런데 왜 그리 좀상하고 못 났는지 모르겠다. 평생 농사꾼으로 흙바닥에 엎드려 기다 말 인생이다 윤오는.


 그런데 상배는 참 근사하다. 키도 훤칠하고, 미목도 수려하고, 옷 입는 것도 미끈하다. 꼭 서울사람 같다. 순영이는 서울이 좋다.

 상배는 잿마을 박 주사의 아들이다. 인근에서는 그래도 행세깨나 할만큼 알짜배기 부자다. 그는 순영이더러 서울에 데려다 준다고 한다. 서울이 좋은 그녀는 마냥 달떠 그저 상배가 좋다.

 그런데 사람들은 상배를 후레배라고 욕한다. 일은 않고 허구헌 날 읍내로만 싸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렇게 싸다니면서 하는 짓이란 또래 건달 놈들과 어울려 술집 다방이나 들락거리고, 처녀애들이나 희롱하고, 걸핏하면 싸움판을 벌이고, 주제에 똥멋만 들어 나주니 더 멀리는 광주까지 돌아다니면서 신식물을 먹었네 하고 갖은 꼴갑을 떨고 다닌다고 했다. 그러자니 자연 돈 좀 내라고 제 어미를 왈기기 일쑤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순영이는 그가 밉지 않다. 그에게서는 노상 좋은 냄새만 난다. 땟국 절은 땀냄새도 안 나고, 썩은 쇠똥냄새도 안 난다. 게다가 마을 다른 사내들처럼 보리밭이나 썩은 떡갈나뭇잎 더미나, 바윗돌 구석에 그녀를 자빠뜨리지 않는다. 그런 데서 일을 끝내고 돌아올 때면 등가죽이 다 얼얼하다. 그런데 상배는 근사한 여관으로 데려간다. 거기는 별다른 세상이다.


 순영이는 오늘도 상배를 따라 여관을 갔다. 길을 걸으면서 사람들이 흘깃거리는 걸 온몸으로 느끼며 화끈거리기도 했다.

 "이번 가을에 내 꼭 서울에 데리고 가 주지."

 여관방에서 지전 두 장을 쥐어 주며 상배는 또 그 소리다. 그가 하는 서울말씨가 귀에 착 감기는 것 역시 좋다.

 서울 간다는 생각에 부풀어 순영이는 다시 소티고개를 넘어 마을로 돌아온다.


 첫보매도 불량기가 흐르는 건달들 너덧이 다방에들 모여 있다.

 "상배야! 워디서 고런 가이내를 업어 왔다냐? 색기가 자르르 흐른 것이 색 깨나 쓰겄더먼."

 "잉. 우리 동네년인디, 고것이 맛도 기가 막혀야. 아매 고년이 사내 서넛 잡겄단 말시."

 "그려? 이딴 궁짜 낀 촌구석에 고로큼 기맥힌 지집이 있었단 말이여?"

 "그려서, 광주에다 내다 팔겄다고?"

 "팔아먹긴 좀 아까운디."

 "아깝기는 머시가 아까워. 허면 니가 마누라 삼을기여? 그런 지집은 서너 번 건들고 나믄 벨 재미 없어야. 그려, 팔긴 팔아야 헐틴디 그것이 말이여. 우리 동네 지집이라 나가 영 껄적지근혀서 말이제."

 "거 왜 있잖여. 나주 사는 태경이란 작자. 그 친구가 요즘 우리 읍내에 자주 보이드만."

 "팔아먹기 전에 우리도 한번 맛 좀 볼 수 있을랑가?"

 "니미럴 놈들! 그리여, 그런 지집이사 사내덜이 질닦아 주먼 외려 값이 더 나가는 법이제. 가차운 날에 한번 보드라고. 대신 맨입엔 안되야. 태경이 그 친구가 어딜 잘 간다 그랬제?"


 고수버드나무 아래 투깽이처럼 앉아 있는 사내 하나. 윤오다.얼굴은 거무죽죽 달아 올랐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힐 수가 없다. 아무래도 오늘 무슨 일을 낼 것 같다. 입술이 굳게 일자로 닫혔다.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미 몸까지 섞었으니 별 수 없으리라 안심했건만 여전 그녀의 마음은 확신할 수가 없다. 그렇게 신신당부 버드나무 아래로 오라고 했는데 이것이 날 어떻게 보고.

 순영이네 집으로 걸음을 떼는데 저만치 순영이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오고 있다. 눈에 불이 인다.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 몸선이 그대로 드러나도록 착 붙은 옷에다가, 콧등이 찌그러지게 풍기는 분 냄새. 읍내서 본 다방 가이내가 다름아니다.

 "니 시방 워디 갔다 오는겨?"

 가라앉은 음성에 차가운 노기가 추상같다. 서울 갈 염에 부부풀어 있던 순영이가 그 서슬에 멈칫한다.

 "워디 갔다 오냐니께!"

 고막을 찢듯 버럭 내지른다.

 "음메, 귀청 떨어지겄네! 워째 소리를 질러쌌고 그런대."

 샐쭉 하고 눈을 치떠 보인다. 여느 때는 간장을 녹이던 그것이 오늘은 화를 돋군다.

 "이눔의 지지배가 니 한번 죽어 볼티여?"

 다짜고짜 달려들어 뺨을 갈긴다.

 "이 새끼가 먼 지랄이여! 니가 뭐간디 사람을 때리고 지랄이여 잉!"

 "주딩이를 쫙 찢어 놀까보다. 머시가 워뗘! 멀 잘혔다고 주딩이를 나불거려!"

 다시한번 손이 허공으로 오른다. 순영이의 눈에 반짝 눈물이 비져 흐른다. 허공으로 오른 손이 힘없이 내려오는듯 하더니 애먼 무화과 가지를 휘어잡고 분질러 버린다. 뱃구레가 크게 달막이며 거친 숨을 몰아쉰다.

 순영이가 얼굴을 감싸쥐고 쪼그려 앉아 훌쩍거린다. 원피스 자락이 무릎 위로 기어올라 허연 허벅지가 드러난다. 화냥년 같은 그 맨드리가 꼴보기 싫어 슬그머니 몸을 돌려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순영이가 뒤를 따라 걷는다. 얼굴은 눈물이 얼룩져 게저분하가. 얼마나 걸었을까. 윤오가 뒤돌아본다.

 "그 옷 겉지도 않은 거 당장 벗어부러."

 순영이는 그저 추적추적 걷기만 한다.

 봇도랑이 나왔다.

 "어여 씻어. 이것이 뭔 꼴이여. 고 이쁜 낯에 덕지덕지 쳐발라갖고. 못 쓰게 되아 부렀잖여."

 순영이가 도랑에 쪼그리고 앉자 윤오가 제 손에 물을 적셔 얼굴을 닦아 준다.

 "보라마, 얼매나 깨끔허니 이쁜가."

 "치, 누가 저더러 때리랍디여."

 또 종알댄다. 못 견디게 깨끗하고 새초롬한 얼굴이다. 가만히 그 볼에다 입을 맞춘다.

 "많이 아팠제?"

 볼을 어루만지며 울컥 애틋함이 솟구친다. 솜털 같은 홀씨 하나가 그들의 머리 위를 떠간다.




                                6


 여름이다. 여름이 오기 전에 마을 남정네들은 저마다 순영이와의 비밀을 가지게 되었다. 기력이 쇠해 새벽에도 사타구니가 멀쩡한 노인네들만이 비밀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입 밖에 내어 놓지 않았다.

 그 즈음 순영이에게서는 더욱 색기가 흘렀다. 여전히 마을 남정네들은 년의 그 실한 젖통과 궁뎅이를 흘끔거리며 입을 다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칠월의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고 마을사람들은 거무튀튀한 잔등을 내놓고 왼종일을 뙤약볕에 엎드려 산다. 볏모는 검푸르게 죽죽 자라더니 어느 날 조롱조롱 알곡을 달았다. 삼복(三伏)의 더위가 숨을 막는다.

 읍에서 멀지 않은 아라천 계곡에 정자가 하나 서 있다. 아라정(鴉羅亭)이다. 주위를 빼곡하게 대숲이 둘러싸고 있다. 대숲 속의 아라정은 보기에도 시원하다. 비지땀을 흘리며 정자를 오르는 남녀가 있다. 순영이와 태경이다. 읍에서 택시를 타고 왔다.

 태경이는 집이 나주다. 돈 깨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며 상배 패거리와 어울려 다니는 작자다. 전에 한번 순영이를 보고는 눈이 뒤집혀 포주나 한가지인 상배를 돈으로 구워삶아 어엿하게 순영이를 달고 다니는 상건달이다.

 상배란 놈 진작에 태경이를 머리에 두고 있었으면서도 남 후리는 솜씨가 교활하기 짝이 없어 제 양껏 돈을 울거내고는 선심 쓰는 척 순영이를 넘겨준 것이다.


 순영이를 데리고 정자 집터서리 여기저기를 어정거리긴 하지만 태경이의 머릿속은 오로지 그 생각 하나다. 적당히 기회를 보다가 순영이를 이끌고 대숲으로 들어간다.

 상배와 그 패거리들에게 낸 돈이 태경은 하나도 아깝지 않다. 계집이 얼마나 사내를 녹이는지 삭신이 노곤하다. 년은 낙지처럼 흐물거리며 감겨든다.

 "순영아, 너 나주 안갈티여?"

 "나주? 거그가 먼가?"

 "멀기는. 택시 타먼 반 시간도 안 되제. 거그는 여그보담 훨썩 크당게. 차도 많고 사람도 하 많응게. 워쪄, 그런디서 살고잡제?"

 순영이는 대답도 않고 말똥말똥 사내의 턱만 쳐다본다.

 "내헌티 시집오란 말이여. 나가 호강시케 줄텐게."

 "장개 갔다 안혔습디여?"

 "아따, 마누라 죽어뿐졌다고 안허등가. 먼저 간 마누라 생각히믄 참 불쌍히제. 뭣 하나 지대루 못혀준 것이 가슴이 쌔이고 쌔여 노상 묵지근허당게. 그리서 새장개 가믄 시상에 다시 읎이 잘혀 줄꺼그만. 일찌거니 간 마누라 몫까정."

 손바닥으로 제 가슴을 탁탁 친다. 순영이 살그머니 그 가슴을 쓸어 본다. 머리를 기댄다. 남삼한 머릿카락이 태경이의 목에 감긴다.

 시옷시옷. 참매미가 그악스럽게 운다.





                              7


 뒷산 너머에서 서늘바람이 불어온다. 어김없이 들판은 황금물결이다. 바야흐로 참새외의 전쟁이다. 아이들은 너나없이 제 논가에 어정거리며 후-이, 목청을 뽑기도 하고, 줄을 잡고 허수아비를 흔들어 대기도 한다. 신나게 양은 냄비를 두들겨 대는 놈이 있는가 하면, 기운 좋은 아니는 딱, 딱, 태를 휘둘러 댄다.

 새들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외려 사람들을 보고 재밌어 하는 것 같다.

 "원 별 희한한 것들 다 보겄네잉. 무신 기운이 남아 저리 쎄빠지게 지랄들이다냐. 저것들 허는 짓거리가 똑 새대가리만도 못허시. 니미럴."

 아마 그러면서 저희들끼리 낄낄대기도 하는 모양이다.

 땅거미가 지고 있다. 저뭇해지는 고샅길을 아낙네 하나가 간다. 윤오 고모다. 얼굴에 독기가 서려 있다. 순영이 집 마당으로 더벅거리고 들어간다.

 "아저씨! 워떡헐라요? 나가 가마안히 봉께 순영이 저것이 애를 밴 것이 틀림읎다 그요. 저 씨가 누구 씬지 아시씨요? 챙피허고 챙피허지만 우리 영감 씨란 말이요. 저년이 우리 영감 꼬여내 갖고 저 뱃속에다 그 씨를 담고 있느마요. 질게 여러 말 헐 거 읎이 당장 낼 읍에 데리고 가십시다. 애를 지워야 헌게. 내맘 같음사 기냥 머리끄뎅이 잡고 개끌디끼 조리돌리고잡지만, 내가 위선 챙피혀서 관두겄소. 사람들 알기기 전에 후딱 해붑시다. 낼 다시 오겄소."

 씩씩대고 고삿을 되밟아 간다.

 어둑한 방 구석에 순영이 앉아 괭이눈을 하고 눈꼽재기창을 내다보다가 엉절거린다.

 "내가 뭐 지 서방허고만 붙은 줄 아나비여. 나도 뉘기 씬줄 몰르는디 지가 워찌 안다고 쌩야료야."

 언제부턴지 모르게 자신의 몸을 핥는 눈길을 느꼈다. 그제야 윤오 고모였음을 안다. 꽃이 비치지 않는 달거리가 세 번이 지나가 이상하긴 했었다. 누가 가르쳐 주는 이 하나 없다. 홀애비 딸.

 헌데 윤오 고모가 저리 펄펄 뛰는 건 웃기는 일이다. 아랫도리를 합한 사내는 윤오 고모부만이 아니다. 아마 그걸 알면 윤오 고모는 뒤로 나자빠질 일이다.





                                    8


 들판은 다시 휑하니 비었다. 바람이 제법 써늘하다. 엊그제 입동이 지났다. 고삿길 토담 곳곳에 홍시가 매달려 있다. 아침내 까치들이 감을 쪼느라고 법석을 떤다.

 햇살이 퍼지자 고삿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난다. 순영이와 그 아비다. 아비는 발부리만 내려다보고 걷는다. 오랜만에 입은 광목 두루마기에서 새물내가 풍긴다. 순영이는 눈이 부신지 반눈을 뜨고 하늘을 쳐다본다. 벽공에 하얀 새털구름이 하늘가에 비껴 있다.

 토담 위로 머리들이 나온다. 다들 찌무룩한 낯이다. 거창한 잔치구경이라도 할 줄 알았다.

 "아무리 재취자리라 혀도 그렇제. 워찌 잔치도 않고 시집을 보낸다냐."

 "저러큼 이쁘고 고운 처네가 남으 재취로 간다니께 맘이 으째 짜잔허네."

 "신랑집이 돈이 하 많다니께 따지고보먼 잘 가넌기제 머. 샥시집에다가 돈푼 깨나 보냈담서. 나주서도 몇 찌 안가는 큰 부자라고 허든디."

 "음미, 저 때깔 좀 보지. 참말 곱구먼. 시상에 인물 하나는 타고 났당게. 하이튼 지집은 이쁘고 볼 일이여. 워쨌거나 친정 아배 말년에 호강시케 주잖여."

 어비딸은 구부렁 황톳길을 구비돌아 멀어져 간다. 옥색 반회장저고리에 짙은 반물치마가 햇살을 받아 더욱 새틋하게 풍경 가운데 박힌다.

 아낙들은 야슬거리고 남정네들은 너나없이 입을 다문 채 시무룩하다. 이젠 어느 세월에 순영이같은 계집을 안아 볼라나. 그 교태 흐르는 눈매와 오금 못 펴게 하는 속살을 떠올리며 쩝 쓴맛이 입안에 가득하다. 어쩐지 가슴이 휑하니 빈 것 같다. 믿거라 하고 있었거늘 순영이년은 떠나고 총각들은 훨씬 비통하다. 필시 사나흘은 입맛 없으리라.

 아낙들 중에 눈을 가늘게 뜨고 섰는 사람이 있다. 윤오 고모다.

 "오살할 년. 얼굴값 허니라고 지 몸띵이 함부로 딩굴리쌌더니만."

 강제로 애를 떼고 후더침이 들어 파리하게 누워 있던 순영이를 생각하면 한편으론 안됐다. 그래도 진달래 흐드러진 산에서 제 서방과 훔치럭대던 광경이 눈앞에 보이매 다시 눈이 찢어진다.


 누가 알겠는가. 생래 사내를 좋아하고 밝히는 계집이다. 그 궁짜 낀 촌구석은 그네가 있을 곳은 아니다. 마을 남정네들을 다 겪고도 어쩐지 허무했다. 그게 무언지는 자신도 몰랐다. 태경이를 만나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남자는 물건이 좋은 것이다. 오직 그 사내가 배필임을 깨달았다. 돈이 많은 것 따위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 오로지 사내만이 끌렸다. 세상 것 다 부질없다. 사람의 행복이란 내 빈 곳을 채우는 것 이상이 없는 것이니. 마을 고샅에선 쑤군대지만 정작 순영이게로 가까이 가서 보면 눈꼬리에 훔훔한 교색이 흐르고 있다. 누구 아는 이 없다.


 병풍처럼 산이 그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그 산맥 어느 곳에 사람 하나가 묏등을 타고 앉아 있다. 윤오다. 순영이 부녀가 소티고개를 넘어 사라진 뒤에도 눈을 거두지 않는다. 그의 벌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순영아.


 남촌에 바람이 불어 온다. 순영이가 넘어간 소티 영마루로 찬 북풍이 넘어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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