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경비문제 등이 있어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도다녀온다. 샌프란시스코도 좋고 파리의 지붕 밑도 그렇고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남부 캘리포니아, 푸른 조명의 요코하마, 마추피추 또 어디어디 노래 속에 나오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는데,
그런데 정작 내 나라 내 땅은 갈 수가 없다. 한 많은 대동강, 눈물 젖은 두만강, 바람 찬 흥남부두, 화물차 떠나는 신고산.
이럴 때 요원한 통일이 가슴에 절실해지곤 한다.
정작은 김소월이 살았던 정주 영변에 가서 실버들 늘어진 강변에 앉아 이 글을 써야 하지만 그곳이 어딘지조차 가늠 못하겠다. 이승과 저승 사이의 그 강물보다 어둡고 깊은 차안의 세계와도 같다.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가 있는 나주 남평을 다녀오다. 김소월과는 일말의 관계도 없는 곳에 시인의 노래비가 있는 것이다.
소월의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를 만든 작곡가는 안성현이다. 이곳 남평 출신이다. 지자체마다 앞 다투어 지역인물을 부각시키는 게 시대의 흐름이라 아마 이곳도 찾아낸 것이 안성현이리라.
안성현은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다. 극작가 안막의 부인은 그 유명한 무용가 최승희다. 가시버시가 우리 문화사에서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아야 함에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안막의 조카가 바로 안성현이다. 다들 월북한 인사들이다. 반공국가에서 당연 이러한 빨갱이 집안의 이야기를 내놓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안성현의 음악도 우리에게 알려진 것이 단 한 곡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야 누나야> 노래도 실은 안성현의 곡이 아니라 김광수 작곡의 노래다. 근래 묻혀 있던 안성현의 원곡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건 다행이다.
김소월 시 안성현 곡 성화진 노래 : 엄마야 누나야
누리에 눈이 내렸다. 강원도에 살면서 가을이 끝나기도 전에 세상에 눈 소식을 제일 먼저 타전하곤 했는데 올해는 어쩐 일인지 여태 강원도의 눈을 보지 못했다. 호남지방은 연일 폭설이라고 외쳐대는데.
강원도에서 보지 못한 눈을 이날 아침 남평에서 보았다.
노래비는 지석천변에 있다. 지석천(砥石川)은 이곳에서 드들강이라 부른다. ‘드들’이란 이름의 처녀를 제물로 바친 전설에서 받아온 이름이다. 영산강의 지류다.
소월의 시가 주는 아늑하고 정다운 느낌의 강변은 아니다. 물론 반짝이는 금모래와 뒷문 밖의 갈잎의 노래도 없다. 그 어느 것에서도 <엄마야 누나야> 노래의 느낌이 없다. 단지 이곳이 안성현의 고향이요 그래서 그를 기념하여 노래비를 세웠다는 것만이 유일한 끈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통일이 되면 나는 제일 먼저 소월이 살았던 그 강변으로 가고 싶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그 강변 개여울에 앉아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물론 반짝이는 금모래도 갈잎의 노래도 있을 테지.
드들강의 그날 아침 풍경은 대신 눈이 녹으며 피어나는 전형적인 시골의 정경이었다. 고즈넉하고 아련한 우리 고향의 마음.
영하 10도를 밑도는 맹추위가 여러 날 이어지고 있었지만 역시 남도라 북에서 온 길손에겐 푸근한 날씨였다. 햇살이 퍼지면서 눈은 금방 녹기 시작했다. 정오를 지나면서는 등에 땀도 났다. 참 살기 좋은 지방이다. 이런 델 두고 춥고 허구헌 날 눈구덩이에 빠져 있는 척박한 강원도 땅에 사는 의미가 모호해진다.
인근 남평역은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의 모티프가 된 역이다. 사평역은 가공의 역이지만 그 실제 모델은 남평역이라는 것이 최근 밝혀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엄마야 누나야'는 김광수의 작곡이다.
노래 : 정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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