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강촌(江村)

설리숲 2014. 11. 2. 23:33

 

 꼭 스무 해 동안 강촌역을 다녔습니다.

 새벽 첫차를 타고 와 가정리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거기 역사에서 주인을 기다리던 이름들이

 늘 무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거기 바구니 하나 매달고 싶습니다.

 강빛을 닮은 초록색을 더하여 눈부시지 않은 자리에 두고 싶습니다.

 

 

               신성수, <강촌역, 거기 바구니 하나 매달고 싶다>중에서

 

 

 

 

 

 

 

 고교 2학년 때 반 아이 하나가 학교를 대표하여 몇 박의 서독 연수여행을 다녀왔다. 그 유명한 로렐라이 언덕에도 가 보았는데 정말 실망했다고 한다. 솔직히 우리 강촌이 훨씬 더 멋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다. 노래 때문에 유명해지기는 했으나 높은 기대치에 당연히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이따금 버스나 기차를 타고 서울을 갈 때 차창 밖으로 펼쳐진 강촌의 풍광은 그때 내 눈에도 참 아름다웠다. 수려한 산맥들 사이에 푸른 강.

 그때 나는 별 볼일 없는 로렐라이도 노래가 있는데 이 아름다운 강촌도 그에 걸맞는 노래가 하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이젠 그 때의 고즈넉하고 한적한 강촌이 아니다. 대학생들의 MT나 연인들의 필수 에이트코스로 각광받으면서 수많은 인총이 넘실댔다. 당연 장사치들도 몰려들고 펜션이니 카페니 술집 등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여느 곳과 별다르지 않는 유원지로 전락해 버렸다. 고풍스런 출렁다리도 없고 강촌 역도 폐쇄되었다. 강촌역에 내리면 바로 발아래 푸른 강물을 굽어보며 탄성을 질렀던 옛 추억들이 사라졌다. 강 위로 찻길이 놓이고 게다가 자전거 다니라는 길도 또 만들었다. 지금도 강물 위 허공에는 커다란 다리를 놓느라 어수선하고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그 아름다운 풍광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 때문에 이젠 그 풍경이 없어져 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뜬금없이 나훈아 노래비가 서 있다.

 60~70년대, 너도나도 반봇짐 싸들고 서울로 서울로 내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한 시골 젊은이들은 대개 서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공장이든 어디든 농사 때려치고 도시민으로 사는 것을 소원했다. 그러면서 서울은 급작스레 비대해지고 그들은 그렇게 삭막한 그곳에서 발버둥쳤다. 그러면서 늘 고향의 푸른 잔디를 그리워하고 늙으신 부모를 생각했다. 마음은 늘 고향에 가 있으나 고달픈 몸은 여전히 하루 열다섯 시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중가요는 시대상을 반영한다. 그런 세태 속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노래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 노래들의 가사를 살펴보면 다분히 이상적(理想的)이다. 농사의 고됨과 시골생활의 척박함은 배제하고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고된 시골생활이 삭막한 도시생활보다는 그래도 나을 것이라는 자기위안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결국 도시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심정이 반영되어 있는 것.

 

 그중에서도 나훈아는 유독 고향과 시골에 대한 노래가 많다. 설이나 추석 때만 되면 그 노래들이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오곤 한다.

 

 <강촌에 살고 싶네>

 그런 패러다임 속에서 나온 또하나의 귀향 노래다. 여기서 말하는 강촌(江村)은 일반명사다. 특별히 어디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 춘천 강촌에 생뚱맞게 그 노래비가 서 있는 것이다. 그럴듯하게 노래의 배경에 대해 설명은 해 놓았지만서두 억지로 만들어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각 지방마다 무엇 하나 빌미만 있으면 어떻게든 프랜차이즈로 만들려고 하는 게 요즘의 트렌드다. 남원인가는 흥부와 놀부 이야기 배경이 자기네 고장이라며 동상도 세우고 홍보도 하고 있다. 양평은 황순원의 <소나기>로 우려먹는 중이다.

 

  가사를 보면 춘천의 강촌과는 별 연관은 없고 그저 평범한 강마을을 표현했을 뿐이다. 노랫말이 참 좋다.

 날이 새면 물새들이 시름없이 날으는

 꽃 피고 새가 우는 논밭에 묻혀서

 씨 뿌려 가꾸면서 땀을 흘리며

 냇가에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조용히 살고파라 강촌에 살고 싶네

 

 해가 지면 뻐꾹새가 구슬프게 우는 밤

 희미한 등불 밑에 모여 앉아서

 다정한 친구들과 정을 나누고

 흙냄새 마시며 내일 위해 일하며

 조용히 살고파라 강촌에 살고 싶네

 

 

       김설강 작사 김학송 작곡 나훈아 노래 : 강촌에 살고 싶네

       

 

 

 

 

 

   작사가 김설강이 노랫말을 지었다는 옛 춘강옥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어쨌든 별 볼일 없는 로렐라이도 노래가 있는데 더 아름다운 강촌에 노래가 있으니 괜찮은 건가.       

 

 

 

 

 

 

 그래도 강가에는 군데군데 모래톱이 있다. 개미귀신 집이다. 이 녀석은 계절이 지나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어린 시절 참 많이도 보고 자랐다. 그때 우리들은 이놈 이름을 모르고 뻐꾸기라 불렀다. 이게 나중에 커서 뻐꾸기 된다는 황당한 믿음을 가지고들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모습을 본지가 40년이 넘었다. 황폐화되어 가는 강촌 강변에 이게 있다니, 신선한 충격이다.

 

강촌, 가을이 깊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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