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겐 세상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불행한 남자였다. 성적인 정체성이 이지러져 있었다. 그는 양성애자였다.
록 그룹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는 세상에 알려진 대로 양성애자였다. 가끔 그런 사례를 들을 때 우리는 ‘수륙양용’이라며 웃었고 어쩌다 돌연변이처럼 생겨나는 희귀한 경우로 치부하여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최고의 록 그룹, 그것도 가장 최고봉에 있는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의 커밍아웃은 충격이었다.
그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 메리 오스틴은 그렇게 프레디를 떠났고 프레디는 이후로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한다. 그의 남자 편력은 꽤 여럿이었다. 그 남자들은 다들 에이즈로 사망하였다. 20세기 페스트라고 명명한 에이즈는 공포 그 자체였다. 지금은 누꿈해졌지만 여전히 그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은 모르고 있는 무서운 병이다. 당시 낭설 중의 하나는 항문의 상처로 인한 세균의 번식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동성애자들에게서 발병률이 높은 까닭에 나온 추측이다. 그러나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프레디와 그의 남자들은 에이즈로 사망하였다.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감염은 그가 죽기 바로 전날 세상에 알려졌다. 1991년 11월 24일. 오늘이 그의 주기 23주년 되는 날이다. 그 안날 그는 자신이 에이즈 환자임을 커밍아웃했고 바로 다음 날 세상을 떴다. 연이틀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던 대사건이었다. 에이즈 공포가 가장 절정에 이르렀던 때였다.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은 양성애자라 많은 남자를 만났지만 메리에게서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다고 술회했다. 그에게 있어 인생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메리 오스틴이었다. 그러나 메리는 그를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 그래도 그에 대한 사랑은 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프레디는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을 세상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오직 옛 연인 메리에게만 알렸다.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지만 메리는 프레디에게 가 죽을 때까지 함께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위안을 주었다고 한다.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면 추잡한 불륜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어 별의별 시추에이션이 다 있는 것이니 그 시선을 조금만 무뎌지게 누그러뜨리면 그들의 절박한 심정과 안타까운 관계를 또 이해 못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명곡 <Love Of My Life>는 메리와 사랑하면서 그녀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한다. 단순히 ‘My Love’가 아니고 ‘내 인생의 사랑’이라고 재목을 지은 것으로 보아 메리에 대한 그의 애착과 진심이 어떤가를 짐작하겠다.
이 노래는 프레디 머큐리가 작곡했지만 곡을 완성하기까지 편곡, 악기편성 등 전반적인 제작은 영원한 동료 브라이언 메이가 완성하였다. 클래시컬한 피아노 연주를 기본으로 특이하게 하프연주를 넣은 기발한 발상에다 네 명의 멤버가 하모니를 이루며 코러스를 넣은 점 등 브라이언 메이의 뛰어난 음악적 감각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이제껏 러브송 넘버로 가장 사랑을 받고 많이 불리는 노래 중의 하나이다.
Queen : Love Of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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