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소양강 처녀

설리숲 2014. 9. 22. 23:36

 춘천은 속된말로 나의 나와바리다.

 오랫동안 떠나 있었더니 시가지랑 골목 등이 하도 많이 변해 있어 길찾기가 어려워졌다.

 내 생애 최종 정착지를 이곳으로 잠정 결정한 상태다.

 

 

 호반의 도시다. 그 옛날 조촐하게 흐르던 작은 하천이던 강이 의암댐 춘천댐 소양강댐 등이 생기면서 거대한 호수가 되어 춘천을 물의 도시로 만들었다.

 어릴 적엔 의문이었다. 호반의 도시라니. 당시 <호반케익>이라는 제과브랜드가 제법 유명했었는데 춘천이 호반케익의 그 호반의 도시라니 우스꽝스러웠다. ‘호반’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을 때다.

 어느 때 노래방이란 게 생겨나고 가히 폭발적인 선풍을 일으키며 세상을 휩쓸 때 소양강처녀 남행열차 칠갑산이 노래방 인기순위곡이라는 조사결과를 접하고는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었다.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소도시 춘천이 당장 크게 유명해지고 있는 것 같은 뿌듯함.

 사실 이 노래는 당시엔 지금의 유명세만큼 히트곡은 아니었다. 집에 있던 이미자 음반에 수록되어 있어 늘 듣고는 있었지만 원곡이 이미자가 아닌 김태희라는 것도 아주 오랜 뒤에 알게 되었다.

결국은 이 노래를 국민가요로 만들어준 건 노래방인 셈이다. 오직 이 곡 하나뿐이었던 김태희도 역시 뒤늦게 그 이름을 각인시키게 되었다.

 

 

 

 

 

 

 

 참 아름다운 노래인데 가사는 영 젬병이다.

 작사가인 반야월 선생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별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그저 그런 유행가 가사다. 노래를 탄생시킨 실제 인물이 있고 그 일화가 회자되고 있거니와 그런 가슴 절절한 사연을 담은 노래가사 치고는 너무 유치하고 가볍다는 생각이다.

 -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로 스산함을 표현하려는 의도인 것 같으나 두견새는 생뚱맞다. 두견이는 뻐꾸기와 더불어 봄에 우는 여름철새다.

 -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  

소양강을 노래하는데 저 먼 남쪽지방에나 있는 동백꽃을 갖다 붙일 건 뭐람. 설마 생강나무를 지칭한 그 동백꽃으로 표현한 건 아닐 테고.

 

 

 

 

 

 

 소양강처녀상이다.

 이왕 만들 거면 예술가의 자문을 받거나 할 것이지 너무 무성의하지 않은가.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예술성은 보이지 않는다.

 열여덟 딸기 같은 소녀가 아니라 완전 성숙한 여성이다. 아니 아줌마다. 치맛자락은 들어 올려 마치 남자를 유혹하는 형상 아닌가. 손에 들고 있는 게 뭔가 했더니 노래 가사에 나오는 그 갈대다. 이건 과잉 충실이다.

 

 지방 소도시와 대도시의 차이란 것을 느낀다. 조잡하고 무성의하고 졸속적인 것들. 마음에 안 들어도 누구하나 항의하지 않는 소시민적인 정서와 문화들. 그리고 권위적인 행정들.

어쨌거나 그래도 호반의 도시 춘천은 참말 아름답다. 사계절 내내 그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도시, 나의 나와바리 춘천이다.

 

 

 

   가수 김태희가 모 닭갈비집에서 팬사인회를 가졌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비에 서서 포즈를.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 김태희 노래 : 소양강 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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