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이유 없는 집착

설리숲 2014. 8. 23. 00:41

 

 햇수로 24년 입은 옷을 드디어 버렸다. 낡아서가 아니라 하도 싫증나서다. 옛날 같지 않아 옷감이 워낙 질겨 도무지 해지지가 않는다. 시원하다. 섭섭함은 조금도 없다.

 24년은 그래도 약과다. 스무 살 때부터 입은 옷이 있다. 이건 싫증이 안 난다. 아직도 새 옷처럼 흠집 하나 없다. 입어 온 세월 보다 더 오래 입을 수도 있겠다. 참말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옷 장사 굶어죽겠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하나 있다.

 

 

 빨간 도꼬리에 집착했다. '도꼬리'라 하면 우리말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지만 요즘으로 치면 니트스웨터라 하면 얼추 맞을 것이다.

 빨간 그 도꼬리를 고집해서 어연간해서는 벗으려 하지 않았다. 때가 쪼록쪼록해서 빨아야 하는데 어르고 달래고 하다 결국은 매를 맞기 직전까지 가서 겨우 벗겼다. 빨아서 마르기 바쁘게 또 주워 입고는 또 한세상이었다. 겨울에는 늘상 코를 닦아서 소매는 축축했다가 마르고 다시 닦고 해서 언제나 뻣뻣했다. 한바탕 소동을 피우면서 또 한 번 벗어 빨고.

 그 도꼬리로만 매 겨울을 나곤 했다. 빨갛던 옷이 물이 날아 분홍색이 되고 점점 하얀색으로 바뀌어도 나는 그것을 고집했다. 그 옷이 해졌는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로부터 늘 지청구를 들었던 기억은 생생하다. 다른 식구들도 이런 나를 놀리고 야단치고 하던 기억들.

 내 위로는 누나들이고 형들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대추옷을 받아 입을 여건이 아니어서 나야 늘 새것을 입을 혜택이 있었는데도 그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그 잘나빠진 도꼬리만 집착했으니. 여북해야 새로 시집 온 형수까지도 하늘같은(?) 시동생을 흉보면서 진짜 고집불통이라 진절머리를 쳤다.

 내가 고집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질기둥이는 아닌데 아마 미운 일곱 살이라는 그 시기여서 그랬을 것이다.

 

 그 빨간 도꼬리는 어찌해서 버려졌는지 기억이 없다. 내 느낌에는 해지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엄마는 늘 해진 옷이 뭐가 좋으냐고 해댔던 걸로 미루어 내 기억이 틀릴 것이다.

 지금도 가끔 누나들이 그 이야기를 모집어 내어 웃곤 한다. 참말 어리고 유치한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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