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액막이

설리숲 2014. 8. 16. 14:40

 

 다래끼가 나면 눈썹 몇 올을 뽑아 작은 돌무더기를 만들어 그 안에 넣어 놓았다. 지나가는 누군가에게 밟히거나 걷어차여 돌무더기가 무너지면 그 사람에게로 다래끼가 옮아갔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청정지역이어서 요즘 시점으로 보면 다들 건강하게 살았어야 하지만 그러나 시골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위생관념이 미약하고 가난하니 먹는 것도 추레했다. 허구한 날 눈에는 다래끼가 나고 입귀에는 진버짐이 일었다. 어른들은 아가리가 커지느라 입귀가 재지는 거라고 했지만 어린소견에도 곧이들리지는 않았다. 머리에는 부스럼과 다대가 앉았고 엉덩이에는 종기가 났다. 때로는 옴이 올라 열꽃이 피기도 하고 겨울에는 고뿔을 달고 살아 소매는 훔친 콧물이 허옇게 말라붙어 있곤 했다.

 

 아이들은 재미 삼아 돌무더기를 만들어 눈썹을 뽑곤 했다. 누가 걸리나 숨어서 지켜보곤 하지만 보고 있을 땐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고 다 잊어먹고 난 다음에야 무너진 돌무더기를 보곤 했다.

 손가락에는 또 사마귀도 잘 돋았다. 오이를 바르고 그 오이를 땅에 묻으면 사마귀가 없어진다고 했다. 다래끼도 그렇고 사마귀도 그렇고 이런 민간처방이 효과를 보지는 않았다는 기억이다. 아마 아이들끼리의 속설이었을 것이다. 

 

 시골에서는 이러한 속설과 속신이 깊게 퍼져 있었다. 문지방에 앉지 마라 엄마가 죽는다. 방에 거꾸로 눕지 마라 솥단지가 구멍이 난다. 밥그릇을 박박 긁으면 역시 솥이 구멍 난다고 했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소가 되었다. 또 나무에 열린 과일을 보고 손가락질을 하면 과일이 다 떨어진다.

 엄마가 여러 날 출타해서 집에 없으면 아이는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다. 그럴 때 아이에게 머리를 긁어보라고 한다. 앞쪽을 긁으면 엄마가 빨리 오고 뒤쪽으로 갈수록 엄마는 늦게 온다며 아이를 놀려대곤 했다.

 정월보름날에는 오꼬시나 땅콩을 먹었고 내 더위 사가라고 사위스런 말을 했다. 꼬맹이는 늘 언니들에게 당하곤 했다.

 

 귀신은 늘 무서운 물건이었다. 뒷간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헛기침을 하거나 인기척을 냈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들어가면 안에 있던 귀신이 놀라서 그 사람에게 덮친다고 했다. 실제로 인근의 누가 죽었는데 뒷간에서 귀신이 달려들어 변을 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다.

 고양이가 죽은 사람을 넘으면 시체가 벌떡 일어난다는 머리카락이 쭈뼛해지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산골의 밤은 고요하기 그지없어 작은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도 다 들렸다. 이따금 그 소리가 끊겼다 들렸다 할 때가 있는데 엄마는 죽은 애기귀신이 나와 물을 손으로 막았다 텄다 하면서 장난치는 거라고 했다. 아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리하여 아이들은 점점 밤이 무서워진다. 낮에도 뒷간은 무서워 마당에다 똥을 누었고 밤에는 요강에다 누었다.

 섣달그믐에는 눈썹이 세어진다고 자지 말라고 했고 신발을 엎어놓거나 아니면 방안에 들여놓았다. ‘앙괭이’라 부르는 귀신이 와서는 신발을 신고 가는데 그러면 그 사람이 동티를 입는다고 했다.

 

 밥그릇이 깨지면 불길한 징조라 여겨 엄마들은 설거지할 때도 조심스럽게 다뤘다. 그러나 보통 놋그릇이나 은그릇을 쓰던 시절이라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는 성인이 돼서 한번 경험한 적이 있다. 여자를 만나고 결혼이야기도 오가던 즈음에 어느 날 아침에 밥을 먹고 상을 물리다가 내 밥그릇이 쩍하고 금이 갔다. 특별한 원인도 없었다. 그냥 뭐 낡아서 깨질 때가 되었겠지. 그러나 엄마는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재수 없게 아침부터!

 그 때문이었을까. 애인과의 관계가 꼬이며 서름해지더니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그릇이 깨어져서 그랬을까. 헤어질 때가 되어서 자연스레 멀어졌을까. 결과론이지만 그때 결혼 못 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연애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남남이 되어 보니 이것저것 눈에 보였다. 그 여자랑 사는 광경을 그려보니 그리 적당한 배우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어른이 돼도 귀신은 무섭다. 있지도 않은 귀신은 안 무서운데 놀이공원 따위 공포체험장은 무섭다. 정말로 튀어나오니까. 공포영화도 무섭다. 눈에 보이니까.

 난 여적지 한번도 징크스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 징크스라는 게 결국은 마음에 달린 것이다. 스스로 그것에 얽매여 불안과 구속을 키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늘한 숲 > 유년의 대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유 없는 집착  (0) 2014.08.23
떡 치기  (0) 2014.08.21
화로  (0) 2014.01.04
국수틀  (0) 2014.01.02
개떡에 개는 안 들었다  (0) 2014.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