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느루 먹으려고 아무리 아끼고 아꼈어도 해토머리 지나 밭둑에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고들빼기 달래들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면 식량은 거의 떨어져 간다.
보리와 밀은 아직 집게뼘이라 그게 다섯 살배기 아이만큼 자라 이삭이 패고 여물기를 또 기다려 베어 먹을 때까지는 그야말로 굶주림의 나날이다. 해마다 한뉘를 반복하는 그 보릿고개인 것이다.
강냉이죽도 먹고 시래기죽도 먹고 겨우내 윗목에서 얼녹은 감자나 고구마 따위를 삶아도 먹었다. 그나마도 보통은 썩어 있기 일쑤다.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보리누름에 가장 많이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내 유년 시절의 보릿고개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지 누구 굶어죽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파리해 긴 겨울을 난 사람들의 힘겨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런 보리누름에 개떡을 먹는 날이 많았다. 모르는 사람은 밀가루라도 반죽해서 뭘 해먹든지 하면 될 걸 설마 굶어죽기야 했겠냐지만 밀을 수확해야 밀가루도 있지 않는가.
세상에서 맛없는 음식은 하나도 없다. 그야말로 아사 직전까지 쫄쫄 굶어 입에 넣으면 참말 그렇다. 맛이 있네없네 퇴박하거나, 또는 맛난 것만 찾아다니며 먹는 자칭 미식가라는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배에 기름 낀 허영덩어리라 할 수 밖에 없다. 니들이 배고픔을 알아?
그렇거늘 개떡은 참말 맛이 없었다. 개떡은 보리나 밀을 도정하고 나온 겨를 반죽하여 만든 떡이다. 배가 무척 고파 뱃가죽과 등가죽이 사둔하자 하는데도 그 개떡만은 맛이 없었다. 오죽하면 개떡이라 그랬을까. 겨로 만들어서 겨떡인걸 개떡으로 발음이 전이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내 생각엔 가장 천하고 보잘것없는 것이라 그렇게 이름 붙였던 것 같다. 보릿겨로 만든 것이라 색깔도 시커먼 것이 구쁘지도 않다. 그래도 배에 뭐든 넣긴 해야 하니 꾸역꾸역 데시기는 것이다.
요즘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개떡이라고 파는 누르스름한 떡을 파는 걸 보곤 하는데 개떡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 시절 그런 맛난 개떡이 있었다면 ‘개떡’이라는 이름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통한 건 그래도 전 해에 수확한 보릿겨를 그때까지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라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상식으로 보관했을 것이다. 눈물 나는 한뉘였다.
아무리 굶어도 또 한 해는 살아야겠기에 봄에 뿌릴 벼 서껀 종자들은 고이 갈무리해 두어 전혀 손을 안 댔다.
소를 끌어 밭을 갈아 아버지와 어머니는 감자를 심고 또 고달픈 한 해를 시작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보릿고개를 넘기고 밀과 보리를 베고 나면 풍족하지는 못해도 이듬해 봄까지는 굶어죽을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