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국수틀

설리숲 2014. 1. 2. 00:31

 집안에 잔치가 있거나 초상이 나면 많은 음식이 필요하다. 내 유년 때는 큰형과 큰누나 두 번의 잔치가 있었다. 대사에는 모든 것을 다 풍족하게 준비했지만 알알은 역시 국수였다. 시집장가 가는 걸 국수 먹는다는 관용어로 널리 쓰고 있으니.

 

 평시에는 반죽을 해서 밀대로 밀어 칼로 썬 국수를 먹었는데 오늘날의 칼국수다. 때로는 소면을 사다 먹었다.

잔치처럼 국수가 많이 필요할 때는 틀로 뽑아냈다. 국수틀은 집집이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을에 한 집 있어서 다들 빌려다 쓴 건지 아니면 다른 먼데서 가져왔는지는 모르겠다. 두 번의 잔치 말고도 여러 번 우리 집에서는 틀로 국수를 뽑아내는 정경을 보았었다. 틀 밑에 가마솥이나 큰 그릇에 물을 채워 받쳐 놓고 반죽을 확에다 넣어 장정들이 다리를 누르면 면발이 쏟아지면서 바로 물에 떨어진다.

 

그 흥성한 분위기의 정경이 참 좋았다. 남자들은 국수틀에 둘러서서 잡담에다 소리도 지르고 으어으어 농담들도 건네면서 국수를 뽑고 아낙들은 부엌과 뒤란 딴솥으로 부지런히 오가면서 국수를 삶아대고 마루에서는 벌써 국수 한 그릇씩을 비우고 있었다.

 연기 자욱한 집안의 그 설레고 정겨운 풍경이 그립다.

 

 

 

 지난 가을 오대산 월정사에 갔을 때 차일 친 길거리 음식점에서 직접 국수틀로 뽑아내는 것을 보았다. 유년 이후 실로 오랜 만에 보는 국수틀이었다. 저 국수틀 하나만으로 수많은 사연과 추억 에피소드 인생이야기들이 내 안으로 모여들어 가득 찬다. 보는 것만으로도 저절로 국수가 입에 당긴다.

 

 

'서늘한 숲 > 유년의 대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액막이  (0) 2014.08.16
화로  (0) 2014.01.04
개떡에 개는 안 들었다  (0) 2014.01.01
  (0) 2013.12.31
조반 먹었나  (0) 2013.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