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영원한 사랑, 길상사에서

설리숲 2014. 7. 29. 13:40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날인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곬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날이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곬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날이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길상사를 이야기하려면 백석과 법정 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그 한가운데 자리한 여인. 동시대 사람이라 지금은 화제만 있을 뿐이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그에 대한 평가는 황진이나 허난설헌 등 일세의 길상화 같은 인물들 이상의 조명을 받을지도 모른다.

 김영한. 기생일 때는 진향, 사업할 때는 김숙, 말년 불도로서 길상화. 여러 이름으로 한 세상을 살았던 여인. 그리고 또 하나의 애틋한 이름, 연인으로서의 ‘자야’.

   

 길상화(吉祥華)는 ‘참된 마음의 자리는 항상 길하고 상서롭게 빛난다’는 뜻이다. 보편적인 상식으로 알고 있기로는 길상화는 곧 인동꽃이라 하여 그 꽃말이 ‘사랑의 인연’이라고 사람들을 그녀의 길상화에 대한 인연을 사랑 쪽으로 연결하려 한다.

 

 그가 백석과 만나 함께 한 건 기껏 세 해 남짓이지만 그의 사랑은 죽을 때까지였다. 그에 대한 일화들은 많지만 다 그만두고 ‘수천억의 재산이 백석의 글 한 줄만도 못하다’는 명언 하나가 그녀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말인 것 같다.

 

 

 

 

 

 

 산청에서 동료의 스마트폰에서 우연히 노래 ‘길상사에서’를 듣고 몹시 가고 싶어졌다.

 8년 전에 처음 길상사를 갔었다. 사전 지식 없이 성북동 그 골목을 따라 올라갈 때 느끼던 위압감. 호사스럽고 육중한 대저택들은 위화감이라기보다는 낯선 외국여행에서의 생경한 풍경 같은 거였다. 나와는 관계없는 다른 세상 그것들. 이 세상은 참으로 다양한 군상들이 존재하는구나.

 여기가 길상사야. 나를 데려간 그녀가 걸음을 멈추며 손짓한다. 길상사? 절? 도저히 절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이런 곳에? 그것 또한 낯선 충격이었다. 무슨 비밀요정이라도 있었으면 좋을 그런 자리에 그 길상사가 있었다. 그렇단다. 그녀가 설명을 해준다. 옛날에 대원각이었다가 절로 바뀐 지 얼마 안됐다고. 그렇군.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거닐어 보고 싶은 곳이다. 절과 종교 따위 염두에 두지 않고 심신이 피로할 때 고요하고 소담한 풍경 속을 소요하다 보면 요즘 말로 힐링이 된다. 여느 절은 솔직히 누가 눈치 주는 사람 없건만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는데 길상사는 전혀 없다.

 길섶의 풀꽃 포기마다 한 여인의 일심의 사랑이 배어 있는듯하다. 삭막한 시대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 주는 곳이다.

 

 

 

    이렇게 앉아있는 이 오후에도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

    가만히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느껴지는

    무언가

    행복이 아니라도 괜찮아

 

 

 

                  시와 작사 작곡 노래 : 길상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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