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설리숲 2014. 4. 9. 12:40

 

 

 

 

 

 

 

 말 그대로 ‘대궐 같은’ 으리으리한 궁궐들을 둘러보면 우선은 기가 죽고, 그 다음엔 빼어난 건축미에 감탄하고, 그리고......

 이런 호화롭고 창연한 건물들을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피와 땀을 짜냈을까 하는 회가 들곤 한다.

 

 그 많은 돌과 나무 그것도 평범한 것이 아닌 팔도를 뒤져 좋은 재료로만 구해다 지었을 테니 도편수 이하 인부들은 또 얼마나 고되었을까.

 

 내 사는 정선 아우라지는 뗏목이 출발하던 곳이었다. 강원도의 각 심심유곡에서 베어낸 나무들을 뗏목에 실어 한양으로 긴 여행을 했다. 굽이굽이 강을 따라 백성들의 만 가지 애환도 따라 흘렀다. 그것이 문학이 되고 음악이 되고 역사가 되었다.

 

 

 

 

 

 

 

 근래 한 대목장의 비리가 불거지며 비난을 받고 있다. 자타공인 우리나라 최고의 도편수이자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던 대목장의 비리를 대하며 끝없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몹시 자괴하게 된다.

 경복궁도 권력자의 욕심이 나은 건축물이라 하면 지나친 부정관념일까. 흥선대원군은 국력을 다 쏟아 이 궁궐을 중건했다. 선말 가난한 나라의 경제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데까지 떨어져 백성들의 삶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그 결과물이 경복궁 ‘대저택’이다. 왕의 거처니 궁궐이지 엄밀히는 한 가문의 저택이다. 전제국가에서는 ‘짐이 곧 국가’였다.

 

 

 

 

 

 

 

 

 어쨌거나 서울의 고궁들은 예술적인 걸작품이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보물들이다. 노동과 착취와 피를 먹고 이루긴 했지만 그건 아픔으로 묻어두고 이 뛰어난 예술품들을 창조해 낸 이름 모를 기술자들의 노고를 존경한다.

 

 

 

 경복궁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크고 많은 집채들에 다 사람이 거처했을진대 겨울의 난방을 어떻게 감당했을까를 또 생각했다. 그 많은 땔감 또한 징발했을 테니 도성 인근의 백성들의 생활고충은 얼마나 자심했을까.

 

 

 궁궐은 정치와 모사와 아픔과 환희와 역사를 간직한 유산이다. 시간을 넘어 후세인들은 문전성시 이곳을 드나들지만 그 역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경복궁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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