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풀이 끝에 탁 풀어진 기분으로 의기투합해 그날 밤 경포대로 넷이서 내달려 갔었다. 늦은 가을이었다. 제법 추웠다. 평창을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희끗하게 눈이 보였다. 과연 겨울이 바투 다가왔으며 과연 강원도임을 인지하였다.
가긴 갔는데 막상 경포호수에 도착하고 보니 마땅히 할 것도 갈 곳도 없었다. 자정이 넘은 심야, 문을 연 곳이 없었다. 요즘에야 편의점이란 게 흔해 빠졌지만 불과 10년 전의 그때는 그랬다.
차에서 내리면서부터 냉기는 옷 속을 파고들어 몹시도 괴로웠지만 계획 없이 떠나온 탓에 다들 기분이 들떠서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어둔 밤하늘을 이고 펼쳐진 호숫가를 걸었다. 어귀에서 <사공의 노래>를 적은 조각품을 보고는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별이 총총한 허공으로 노랫소리가 날아올랐다.
새벽은 멀고 밤은 춥고, 다시 돌아가기엔 먼 길을 달려 온 게 아깝고, 어디 가서 따끈한 국물에 소주라도 한 잔 하면 좋겠는데 그것도 안 되고. 참 애매하고 허허롭고 그러면서도 허랑한 재미가 있는 묘한 밤이었다는 그런 기억이 있다.
어찌어찌 시간을 죽이다 보니 먼 바다에 동이 트고 우리는 바다로 향해 달려갔다.
아침이 온다는 게 그토록 반갑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시시각각 세상의 색깔이 변하면서 다가오는 아침의 감동. 수많은 아침을 맞고 보내지만 그날 새벽의 기억은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사람과 마찬가지로 바다도 봄이 되면 설레는 품이 역력하다. 잔잔하고 색깔이 엷어진다. 강릉 바다는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도다녀오지만 그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곤 한다. 산이 나날이 다른 것처럼 바다도 늘 같지는 않다. 물리적인 변화 뿐 아니라 사람의 감정에 따라 바다는 달리 느껴지는 것이다.
올봄은 질서 없이 왔다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준비 없이 한꺼번에 핀 꽃들은 예년보다 예쁘지가 않았다. 그나마도 속절없이 다 떨어지고 곧 여름이 오려 한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봄의 한가운데 서서 싸늘한 그 밤에 불렀던 사송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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