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설리숲 2013. 12. 15. 01:00

 

 

 동지섣달 추위가 살을 에는 산골에는 물 쓰는 것도 어렵고 또 귀찮기도 했다. 집안에 우물이 있는 것도 아니니 겨울 아닌 다른 철에도 꼭 개울에 가서 물을 길어 와야 해서 풍족하게 쓰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래도 다른 철이라면 두멍을 큰 걸 두거나 아니면 여러 개 두어서 많이 길어다 부어 놓으면 그나마 낫지만 겨울에야 좀만 지나면 얼어 버리니 물도 못 쓸뿐더러 옹기 두멍이 깨져 버리니 미리 길어다 놓을 수가 없었다.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동이를 이고 개울에 나가야 했다.

 물론 물긷기는 여자들의 일이었다. 원래는 어머니가 하던 걸 새로 시집 온 형수가 그 일을 했다. 누나들 중의 하나가 이따금씩 하는 일도 있었으나 가물에콩나듯이었고 밥과 빨래 등 모든 허드렛일을 하는 며느리의 오롯한 임무였다.

 웬만하면 남자들이 좀 거들어주면 좋으련만 더구나 새각시 에롭은 것 생각해서라도 큰형이라도 그랬으면 좋으련만 시세가 워낙 고루한 시세여서 그런 건 당연 여자들의 일이라고 인식되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그래도 남자가 물을 길어오는 때도 있었는데 집안의 무슨 행사가 있어 물이 많이 필요하거나 가마솥에 메주를 쑤거나 엿을 골 때, 두부를 만들거나 도토리로 묵을 쑤거나 할 때였다. 물지게 양팔에다 초롱을 매달고 낑낑대며 대문을 들어서는 아버지는 무척이나 힘들어했고 초롱에서는 물이 넘쳐흐르곤 했었다.

 

 겨울에는 별로 할 일도 없건만 일어나긴 매일반이어서 며느리는 날마다 새벽 일찍 일어나 조반을 해야 했다. 밤잔물이 꽁꽁 얼 정도로 맹렬한 추위는 온몸을 에도 며느리라는 죄로 일찍 나가 우선 동이를 이고 개울가로 나갔다. 흐르는 물이라도 워낙 추운 밤을 지났으니 언제나 얼음이 얼어 있곤 해서 가져온 손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 담았다.

 그리고는 아궁이에 불을 살라 넣고 쌀을 일었다. 그 추운 새벽에 맨손으로 쌀을 씻으면 손이 떨어져 나갔다. 아궁이 불에다 잠깐씩 손을 쬐어가며 살을 일었는데 그 당시 쌀은 또 돌 등 이물질이 많아 그것도 한참 걸렸다. 그리고 그 추운 부엌에서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였다. 참으로 어렵고 냉정한 시대였다. 그리 오래 전도 아니고 40~50년 전의 일이었다.

 

 겨울의 물 사정이 이러했으니 사람들은 별로 씻지를 않았다. 아침에 겨우 고양이처럼 낯을 씻는 것 말고는 하루 종일 손도 씻질 않았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 시겟박에 받은 물에다 그 많은 그릇 숟가락 등속을 씻었다. 부옇게 된 자숫물에 설렁설렁 한 번 닦으면 그만이다. 깨끗한 물에 헹구는 건 아예 엄두에 없었다. 설거지 한 자숫물은 지금이라면 역겨울 만큼 더러웠지만 그때는 일상이었다.

 목욕은 아예 생각도 안 했고 발도 이따금 한 번 씻었다. 추운 철이라 잠을 잘 때도 양말을 신었으니 양말 한 번 벗는 것도 흔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양말을 벗으면 그야말로 까마귀가 사촌하자 덤비게 생겼다. 때가 쪼록쪼록 딱지를 얽었다. 애나 어른이나 같았다. 발숫물은 여물 끓인 물이었다. 저녁에 가마솥에 불을 때 쇠죽을 끓이면서 그 뜨거운 물을 떠서 발을 씻었다. 중요한 일이라 대충 씻을 수는 없었다. 대야에 발을 담그고 오랜 시간을 불렸다. 그렇지 않으면 때가 죄 안 빠진다고 어머니한테 지청구를 들었다. 아이는 그게 싫었지만 그렇게 한번 발을 불리고 나면 또 한동안은 안 씻어도 되니까 그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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