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에는 연화로 분한 배슬기가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휘파람을 부세요.
휘파람은 우리에게 가장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감성을 준다. 길거리에서 논두렁길에서 숲속 오솔길에서 벽돌담골목길에서……
맑고 투명한 그 소리를 들으면 이유 모르게 천진해지고 옛날 어느 때의 추억으로 날아가기도 한다.
그래, 추억들이 깃털처럼 나풀거리네.
그 중에 떠오르는 얼굴 하나. 키도 크고 잘생기고, 똑똑해서 학교에서는 늘 일등을 하는 형이 동네에 있었다. 더구나 심성도 워낙 고운 사람이었다. 잘생기고 너무 똑똑해서, 게다가 마음씨까지 착해서 가슴이 아팠던 사람. 귀머거리였다. 말을 못했다. 너무나도 아까운 사람이었다.
공부를 잘했는데 중학교를 나오고는 상급학교에 진학을 안했다. 아마 귀머거리여서 그 부모가 더 이상 만류했을 거라 짐작한다. 그 집의 다른 남매들은 다들 정상인데 어찌 그런 불운을 타고 났을까.
내 작은 누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공장엘 다녔다. 어느 날부터 귀머거리 그 형도 같은 공장엘 다니기 시작했다.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는 일이 빈번했다. 아침 출근시간이 되면 휘파람으로 내 누이를 불러내서 같이 출근을 했다. 키가 커서 그의 머리가 담장 위로 보이곤 했다. 말을 못하니 대신 휘파람을 불어서 불러냈다. 형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
우리 식구들은 때때로 누이를 놀렸다. 그 벙어리가 누이를 좋아한다고. 둘이 연애한다고. 장난인 걸 아는 누이는 같이 웃었다.
장난스레 놀리긴 했지만 아마 마음 한편에선 다들 귀머거리 형이 진짜로 우리 누이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귀머거리라는 약점만 아니면 모든 게 완벽한 청년이었으니 마음 착한 내 누이는 그게 안쓰러워 푸근하게 대해주고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형의 입장에서는 다른 이들이 외면하고 접근을 꺼리는데 익숙해 있다가 허물없이 친구해 주는 누이에게 인간적인 호감 말고도 이성적으로 마음이 갔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그러나 내 어린 추측일 뿐 그 이상은 알지 못한다. 그 형이 내 누이를 좋아하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왜냐면 그 착한 사람이 내 누이가 아니더라도 어느 아가씨를 좋아한다면 그 애틋한 감정이 너무나도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보아 마음으로만 사랑해야한다는 것은 정말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다.
동네 아이들은 다들 벙어리 형이라고 했다. 세월 지난 후에야 철없이 막돼먹은 호칭이었음을 반성한다.
왜 마음씨가 그리 착해 가지고 후에 불편한 감정을 갖게 했는지. 성질이라도 못됐으면 미안하거나 애틋한 마음이라도 없건마는.
연애감정이야 내가 알 길 없지만 내게 추억으로 남은 건 그 형의 휘파람소리였다 골목길을 다닐 때 멋들어지게 불어대는 휘파람소리는 동화처럼 아련한 정서를 감돌게 했다. <Ever Green>이나 스키터 데비이스, 패티 페이지의 노래들을 그때 그의 휘파람소리로 많이 들었었다. 그 맑고 투명한 소리가 아름답지 않고 왠지 모를 슬픔으로 전해져 오곤 했었다.
몇 해 뒤에 우리가 그 동네 뒤뚜루를 떠나 이사를 하고는 그 형의 소식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누이를 만나러 가게 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북한가수 전혜영의 <휘파람>이 남한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서프라이즈하게도 그 노래가 어린 시절 그 골목길과 휘파람소리에 대한 정서와 추억을 잘 표현했다. 분단은 되었어도 감성과 정서가 과연 한 나라 사람임을 절감한다.
이 글에 전혜영의 노래를 업로드하려 했는데 행여 종북좌빨이라고 국정원 사람들이 다녀가실지도 모르겠다는 해괴한 망상도 해 본다.
정미조의 노래도 그대의 향수를 불러오기에 부족하지 않다. 참 좋은 노래다. 아 그 골목길의 추억들. 착한 형.
이장희 작사 작곡 정미조 노래 : 휘파람을 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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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이 거의 다 된 노인네한테 물어 보았다.
남자는 몇 살 때까지 그게 가능한가요?
노인은 대답은 없고 묵묵히 밥술만 떠먹고 있었다.
선문답 같은 그 답은 즉,
밥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다.
⁂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 (2013 개봉작)>의 주인공은 이미 많이 늙은데다 대장암 말기여서 오늘낼 오늘낼 하는 반송장인데 간병인의 젊은 여체를 훑으면서 사내의 본능을 표출한다.
그렇군.
내년엔 나도 야관문 베어다가 술 한번 담가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