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침에 문득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있다. 하루 종일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신기한 현상이다.
음악은 아름답다. 그러나 모두 아름답지는 않다.
뭐 시끄러운 재즈나 끈적한 소울 따위 장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계기로 인해 그 음악에 대한 부정적인 감성이 내 안에 들어오게 되어 오랫동안 혹은 평생을 그 음악을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가령,
나는 쟝 프라소와 모리스 (Jean Francois Maurice)의 모나코(Monaco)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아름다운 명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을 것이다.
머리털 나고 맨 처음 보게 된 포르노 비디오. 한국판 허접한 영상이었는데 그 전부터 누가 얼마나들 돌려 보았는지 화질도 영 젬병인 그 영상에 백그운드로 흘러나온 음악이 '모나코'였다.
이후로 모나코 음악이 들릴 때마다 떠오르는 추저분한 영상이 (그렇다. 가슴 설레며 처음 접한 그 포르노 비디오는 참말 좋은? 영상이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난잡하거나 한 것도 아닌 지극히 어설픈 영상인데도 말이다) 떠올라 영 좋지가 않아 그 음악마저 추저분하게 느껴지곤 한다.
어릴 적 후평동에 살 때, 아침이던가 새벽이던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시청 청소차가 동네를 돌았다. 그때 스피커로 크게 내보내던 음악은 바다르체프스카(Tekla Badarczewska) 작곡의 <소녀의 기도>였다.
찢어질듯이 시끄러운 소리에 내 단잠을 깨우는 미운 그것. 소녀의 기도는 최고로 아름다운 곡이라 인정하지만 내게 <소녀의 기도>는 아름답지 못한 청소차의 이미지로 여전히 남아 있다.
작곡가는 모르고 누나는 내게 소녀의 기도라는 제목을 가르쳐 주었다. 가을운동회 때 누나네 학년에서 매스게임을 할 때 소녀의 기도가 나왔다. 나는 청소차가 떠올랐다.
그 후로도 매번 그랬고
평생을
나는 <소녀의 기도>의 아름다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폴란드 출신의 피아니스트인 바다르체프스카는 우리가 아는 클래식 작곡가 중 유일하게 여성이다. 33곡의 소품곡을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해지는 건 <소녀의 기도> 하나뿐이다. 그것도 어느 편잡장이 우연하게 발견했다고 하는데 자칫 바다르체프스카라는 이름조차도 알지 못 한 채 영원히 사장될 뻔 하였다.
이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혹자는 고금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이 최고의 명곡을 즐기지 못하는 최고의 불행아다.
아 그놈의 청소차.
인생 어느 때 예기치 못한 계기로 인해 그것이 그의 터닝포인트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든 그런 경우는 다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건 청소차만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곡은 참말 아름다운 음악이다. 에효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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