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전뉴스의 신화를 만들어 낸 방송국이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오로지 전두환의 똥구멍만 핥아 주던 그들.
전두환 정권의 무지막지한 철권 아래 TBC를 강제 인수하여 통합한 KBS는 그야말로 거대한 언론왕국이었다. 무소불위 무서울 게 없었다. 쿠데타군부와 땡전뉴스의 방송이 휘두르는 칼은 참말 무지막지하게 한 시대를 난도질하고 있었다.
이 로고가 땡전뉴스와 나팔수의 상징이다
한국방송사에서 가장 비열한 역사를 창조했던 그 방송국이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빛나는 역사도 만들어냈다.
1983년 6월, 어떤 의도였는지 몰라도 사변 때 흩어진 이산가족을 찾아준다는 단발성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방송한 것이다. 아 그것은 우리 역사의 가장 아프고 어두운 상처이기도 했다. 90분짜리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장장 138일간의 가장 긴 프로그램의 기록을 쓰게 된다. 전국에서 몰려든 이산가족의 인파로 여의도 방송국 일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눈물, 오열, 안타까움, 초조, 만남, 환희... 인간 내면에 있는 모든 감정을 토해내는 아주 긴 드라마의 여정이었다.
건물은 물론 계단 길바닥 전봇대 분수대까지 빼곡하게 붙인 무수한 벽보들. 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행여 그이를 만날까 배회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연일 TV화면에 나왔다. 각본도 없이 그저 하루 종일 다르지 않은 지루한 장면만 연출되는데도 방송은 숱한 화제와 높은 시청률로 오랜 시간을 이끌어 갔다.
절박한 표정이 나를 슬프게 한다. 저 사람은 가족을 찾았을까. 그랬기를...
이산가족이 없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얼마나 안타깝고 아프던지 많이 눈물을 흘렸었다. 여전히 그때의 오랜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주체 없이 눈물이 나온다. 인간이 참으로 나약함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아무리 과학과 눈부신 문명을 만들어서 모든 생물 위에 폭군처럼 군림하는 그들이지만 혈육에 대한 가이없는 감정엔 그토록 무기력하게 쓰러지는 것이다.
그때 행운처럼 등장하여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이 가수 설운도다.
당시 KBS에서 신인가수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요즘의 슈퍼스타K와 비슷한 포맷의 그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그는,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가수로서의 이렇다 할 늧이 없다가 바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의 테마곡으로 만든 노래를 불러 새로운 인생으로 들어섰다.
박건호 작사 남국인 작곡 설운도 노래 :잃어버린 30년
그리고 다시 30년이 흘렀다.
이제는 만나려야 만날 수가 없다. 평생 품은 한을 그들은 고스란히 품은 채 이미 세상을 떠났다.
아 가족을 만드는 건 무거운 업장을 쌓는 것이다. 그 업을 풀려면 얼마나 많은 겁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지.
그리고 다시 30년이 흐른 지금 애절한 벽보가 붙었던 자리에는 아이돌을 동경하는 낙서들로 차 있다
과거를 참회하고 나서 모든 걸 용서받은 줄 착각하지만 KBS는 여전히 공정성에서 균형을 잡지 않고 있다.
심각한 사안인 국정원 부정선거와 이를 규탄하여 오래도록 외치고 있는 촛불시위의 목소리를 한 번 짤막한 단신으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무시로 시청료를 들먹이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역사는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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