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달이 뜨는 영암 아리랑

설리숲 2013. 10. 28. 00:24

 

 어느 해 겨울밤, 문득 잠이 깨어 잠시 두서없는 생각을 하다 홀연히 생각난 게 월출산이었다. 곧바로 일어나 행장을 차려 영암으로 내려갔었다. 싸늘한 대기 속에 육중하게 막아서던 새벽 월출산. 그 능선 뒤에서 달이 아니라 부연 동살이 퍼지고 있었다. 그날 무단결근이었다. 늘 그런 식이다. 뜬금없이 머리에 들어와 박히는 어떤 곳이 있다. 참말 뜬금없고 대책 없는 놈이다. 불현듯 가고 싶으면 그대로 배낭을 멘다. 배낭은 전에 다녀온 그대로 손대지 않은 상태다. 단지 양말 한 켤레와 속옷 하나만 더 넣으면 된다. 이젠 그런 직장마저 놓은 지 오래다. 나는 내가 가진 이 자유를 사랑한다. 생각나면 바로 일어나 떠날 수 있는.

 

 월출산은 왠지 친근하지가 않다. 영암.

 靈巖. <영이 실린 바위>는 곧 월출산을 일컫는 이름일 게다. 그 생김새나 느낌이 짜장 여험하고 신령스런 산이다. 몹시 추웠던 그 겨울날 아침에도 산은 그렇게 나를 맞았었다. 밤중에 깨어 불현듯 생각나서 달려간 게 아니라면 선뜻 오를 엄두를 내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허위허위 험한 바위산을 올라 천황봉에 오르니 온 천하가 발 아래다. 운이 좋았다. 꼭대기서 맑은 날씨를 맞는 기회가 여간해선 없다 한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등정에서 최고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그 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여전히 월출산은 친근하지가 않다. 뻔질나게 그 아래를 지나다니면서 올려다보는 산은 언제나 영이 가득 서린 신비의 세계다. 산이 나를 오지 말라는 것 같다. 아 저 험준한 바위산.

도갑사를 지나 호젓하게 산책 삼아 등산로를 걷자니 일단의 패거리들이 나를 앞질러 힁허케 올라간다. 완벽한 등산복차림이다. 나는 반바지에 샌들을 신었다. 달랑 카메라만 들었다.

 가파른 바위산을 오르는 그들은 딴 세상 사람들인 것 같다. 선계에서 내려와 잠깐 놀다 가는 사람들인 것 같다. 그들과 나와의 거리만큼이나 월출산이 나를 거부하는 정도도 멀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산청에서 만난 정미 씨는 대뜸 왜 자기 언니네 모텔에 가지 않았느냐고 한다. 안가긴... 게서 이틀이나 잤는 걸. 아는 사람인 척 하기가 싫었던 거지. 숙박비를 깎아준다거나 하는 걸로 민폐 끼치기 싫었던 거지. 공연히 신경 쓰게 하는 게 내가 더 신경 쓰여서... 내 성정을 잘 아는 정미 씨라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만다.

 

 

              백암 작사 고봉산 작곡 하춘화 노래 : 영암 아리랑

 

              

 

 

 

 

 

 

 오늘 아침 춘천MBC <테마기행 길>에서 마침 영암과 월출산을 방영하기에 얼마나 반갑던지 예정된 여행을 한 시간이나 늦춰 출발했다. 월출산은 친근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정겹다. 촌티가 많이 묻어 있을수록 더 정겨운 법이다. 노래에 나오듯 월출산은 달이 뜨는 것이 아름다울 텐데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언제 그곳을 지나가게 되면 부러 보름날에 맞추어 가야겠다. 밤을 기다려 꼭 월출을 보고 싶다.

 

 어릴 때도 영암아리랑 노래를 들으면서 자못 신비한 곳일 거라는 막연한 느낌을 가졌었다.

 월출산 기슭에는 하춘화 노래비가 두 군데나 있다. 난립하면 그 의미나 희소가치도 떨어진다. 잘 관리해서 하나로 통일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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