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절대 농사 안 짓는다고 젊은이들이 보따리 싸서 도시로 내빼곤 했다. 내 큰형도 스물다섯 장가들 때까지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돕긴 했지만 마음속은 늘 촌구석을 뜨리라 집심하였다. 큰형도 작은형도 이후로 모두 농사에서 멀리 떨어져 농군은 아버지가 마지막이 된 셈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농사라고 평생을 들어 왔다. 지금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때는 막장의 광부를 보고는 농사는 일도 아니라는 생각을 잠시 한 적 있었으나 광부는 힘들어도 그만한 돈을 버니까 괜찮다고 다시 돌아섰다.
대농도 아니고 평생 손바닥만 한 밭뙈기에 엎드려 기어 봤자 열 식구가 넘는 식솔을 건사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나마 남의 소작이나 하는 경우라면 정말 입에 풀칠하기 어려웠고 똥구멍이 찢어지는 가난을 면해 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곤 하는 게 우리 보통의 농군들었다.
말이 좋아 귀농이고 전원생활이지 도시인이 보는 시골과 촌놈의 시골은 그 근본부터 달랐다. 그러니 웬만한 젊은 사람들이 촌구석에 묻혀 평생을 지내는 걸 죽기보다 싫어했다.
노래 <칠갑산>이 나오고 크게 유행할 때 그 노랫말의 진실함에 가슴이 울컥했었다. 한여름 뙤약볕에 앉아 김을 매는 고난을 아는가. 가난은 숙명이고 그래서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의 질박한 삶을 아는가. 고된 노동도 숙명이어서 평생을 그렇게 땀으로 옷을 적시고 살았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었다.
딸년이나마 좋은데 시집보내는 게 바람이었지만 가난한 부모는 그마저도 할 수 없어 가슴이 미어지는 혼처로 보내고 만다. 딸은 자신의 불행보다는 혼자 남은 어머니가 불쌍해 고갯마루를 넘으며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울음을 운다.
칠갑산, 그리고
칠갑산이 있는 청양에는 여전히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이 논밭을 일구고 산다. 그래도 예전의 그들처럼 척박하지는 않아서 좋다.
노래 덕분에 칠갑산과 그 주변은 관광지화 되어 있어 예전의 풍광은 퇴색하고 점점 세련된 명소로 변하고 있다. 칠갑산은 크지도 않고 산세도 그럭저럭 뛰어나지도 않은 평범한 산이다. 노래가 아니었으면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을.
조운파 작사 작곡 주병선 노래 : 칠갑산
칠갑산 노래비
매운고추의 대명사 청양고추는 이곳 청양의 브랜드가 아니다. 경북 청송과 영양 두 지역의 농민단체들이 품종을 개발해서 청송의 ‘청’과 영양의 ‘양’을 붙여 청양고추라는 상품으로 내놓았는데 충남 청양에서 반발했다. 맵기만 하고 맛도 없는 걸 왜 하필이면 우리 지역 이름을 붙여서 이미지 망가뜨리느냐고 당장 바꾸라고 요구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고추가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청송 영양 사람들은 환호했지만 결국 이름 때문에 그 실익이 충남 청양으로 넘어가게 되는 비운을 맞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청양고추가 충남 청양 브랜드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다.
지금 청양 어딜 가도 고추의 고장이라는 걸 확실하게 부각시켜 놓은 걸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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