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변혁의 바람

설리숲 2013. 7. 18. 23:02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세계는 가장 역동적인 시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이어 동유럽이 차례로 자유체제로 변화하며 해빙의 가속도를 붙였고 뒤이어 20세기 전 세계를 지배했던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었다. 삽시간이었다. 굳건하게만 보였던 냉전체제는 너무도 허무하게 스러졌다. 그 소용돌이에 미처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은 한동안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가 소비에트의 해체를 촉발시켰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소련의 고르비가 주창한 페레스트로이카는 전 세계인을 충격에 빠트리며 새로운 세상으로의 재편을 위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 첫 번째의 포탄을 맞은 게 베를린장벽의 붕괴였으며 정작 고르비의 소련은 몇 년 뒤에 베를린으로부터의 역풍을 맞고 해체되었다. 순서가 그렇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록밴드 하나를 보게 된다. 전갈이란 이름의 Scorpions.

1965년에 결성되어 많은 멤버가 교체되는 부침을 거듭하면서 헤비메탈의 불모지였던 서독을 상징하는 강렬한 그룹이 되었다.

 1988년 소련은 모스크바에서 대규모의 음악페스티벌을 열면서 이례적으로 서방의 아티스트들을 대거 초청하였다. 소련과 서방은 물과 기름 같은 것이어서 교류가 철저하게 단절된 채로 한 세기를 지내 왔었다. 그러므로 1988년의 이 사건은 이미 냉전체제의 종식을 미리 감지한 그야말로 해빙의 한 기운이었다. 여기에 초청받아 공연을 했던 스콜피언스는 이듬해에 다시 한 번 모스크바를 방문해 공연을 하게 된다. 그때 모스크바의 강가를 걷다가 목하 소용돌이 치는 세계를 체감하면서 만든 노래가 <변혁의 바람 (Wind Of Change)>이었다. 그들의 조국 독일의 바람이 그곳 소련에게도 불어오길 간절히 소망했다 한다.

 

 Wind Of Change는 시류를 타고 전 세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퍼져 나갔고 그들의 바람대로 소련은 해체되었다. 꼭 스콜피언스 때문은 아니겠지만 록의 생명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변화시키며 좀더 진취적인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식을 고취하는 힘이 록에는 있다.

장벽붕괴 10주년 기념공연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이 노래를 공연하는 동영상을 보면 참으로 감동적이다. 음악은 인간의 영혼을 깨우는 가장 아름다운 도구라는 걸 새삼 느낀다.

 

 

 스콜피언스는 2010년 마지막 음반을 끝으로 영원한 전설로 돌아갔다. 그들이 변혁의 소용돌이의 한 축을 담당했던 위대한 밴드였음을 재삼 돌아보며 마음 한 구석은 자꾸만 답답해진다.

 

 공산주의는 분명 아름다운 이데올로기였다. 출발 당시에는 그랬다. 피폐한 인류를 치유해 줄 유일한 빛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향을 꿈꿨다. 그것의 맹점을 감추기 위해 종국엔 인민들의 피를 필요로 하는 왜곡된 길을 걸어왔다. 전 인류를 지배하며 한 세기를 풍미하던, 영원할 것 같았던 그 강력한 이데아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누가 상상했으랴.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은 자유의 물결을 타고 이합집산을 하며 제 각각의 길을 찾았고, 소련이 무너짐으로써 망령의 냉전체제도 막을 내렸다. 강력한 반공국가인 한국은 역시 강력한 공산주의인 중공(中共)과 1994년 수교를 맺었다. 중공이 비로소 中國이 되었다. 소련이 사라진 공산주의는 중국이 포스트 대권국이 되었다.

 세상은 이리도 요동치며 움직이는데 적대관계의 사람들과도 손을 잡는 세상이 됐는데, 하물며 가깝지 않은 이민족 중국과도 친구를 맺는 세상인데 같은 민족인 남북한은 원수도 아니면서 여전히 치기어린 장난을 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답답하고 울분이 솟는 것이다.

 이 노래 처음과 끝에 나오는 휘파람소리는 그 작은 분노를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Scorpions : Wind Of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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