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고독한 이방인이 들려 주는 빗방울소리

설리숲 2013. 7. 3. 01:23


 그는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화려한 파리의 사교계에서 예술인으로서의 관심과 선망을 받으며 명성을 쌓고 있었지만 결코 파리지엔이 되지 못하고 늘 고독하고 우울했다.
 예술인은 왜 불행하고 고독해야 할까. 그래야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건 아닐진대, 내가 좋아하는 슈베르트나 차이코프스키는 평생을 고독하고 우울하게 살았다. 쇼팽도 역시 그러하다. 조국 폴란드에서도 그랬고 대부분의 곡을 썼던 파리에서도, 사랑의 도피로 떠난 마요르카 섬에서도 그는 행복한 적이 없었다. 검질기게 따라 다니는 결핵과 타고난 슬픔과 더불어 연약한 심성들이 그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가장 위대한 음악들을 만들어 냈다.

 

 낯선 이방 파리에서의 고독한 생활도 어느 정도 극복되고 서서히 사교계의 중심으로 들어갈 무렵 친구의 여동생과 연애를 시작했지만 진절머리나는 그놈의 결핵 때문에 파혼을 당하고 더더욱 쓰린 아픔을 맞는다. 삶과는 별개로 그 와중에도 주옥같은 곡을 쏟아 냈으며 겉으로는 당대 가장 화려한 명사인 것처럼 보였다. 그때 또다른 천재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를 만나게 되는데 둘은 라이벌이면서도 가장 깊은 우정으로 평생 친구가 된다. 쇼팽과 리스트는 당대 음악계를 양분하는 걸출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다. 쇼팽과 마찬가지로 리스트도 헝가리 출신의 이방인이었다. 겉으로는 같은 처지의 명사였지만 생활은 정반대였다. 리스트는 완벽한 파리지엔이 되어 사교계를 주름잡았으며 빼어난 용모로 수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의 음악도 역시 그러해서 낭만적이고 세련됐다. 반면에 쇼팽은 늘 혼자 겉돌았다. 누구와도 어디에도 어울려 들지 못했다. 그의 가슴엔 늘 늦겨울의 마른 바람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된다. 리스트의 소개로 만난 여인은 작가 죠르주 상드다. 그녀는 쇼팽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고 이미 결혼한 경력으로 아이도 둘이나 되었다. 연약한 심성의 쇼팽에 비해 죠르주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여인이었다. 어머니같은 모성애로 쇼팽을 사랑했고 쇼팽 역시 푸근한 상대의 매력에 빠졌다.
 그러나 그들의 연애는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시선을 받았으며 말 많은 사교계에서는 연신 그들을 매도하기 시작했다. 둘은 결국 견디지 못 하고 스페인 지중해에 있는 마요르카 섬으로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그들만의 행복을 꿈꾸며 새로 시작한 생활은 그러나 역시 별다르지 않았다. 그곳 주민들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곱게 보지 않았다. 가난한 살림에 집은 비가 샜으며 고질적인 결핵은 점점 더 도졌다. 게다가 죠르주도 심한 류마티스를 앓고 있었다. 

 

 

                      

                           쇼팽의 유일한 실물사진                                죠르주 상드

 

 그러한 나날 중에 우울한 열정이 가득한 곡을 썼는데 그 유명한 <빗방울>이다. 물론 빗방울이란 부제를 붙인 것은 후세 사람들이다. 쇼팽은 24곡의 전주곡을 썼는데 빗방울은 그 열 다섯번째 곡이다. 죠르주가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쇼핑을 갔다가는 비가 내려 어렵게 돌아왔다. 집에 돌아왔는데 비가 내리는 창가에서 쇼팽이 이 스산한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예술은 꼭 불행한 환경에서 낳아야만 하는 건가.

 

 

 섬에서의 생활도 행복하지 못하여 둘은 결국 또다시 화려한 파리로 되돌아갔다. 몸은 지극히 쇠약해졌지만 음악은 그 원숙미가 절정에 다다라 수많은 주옥같은 곡을 양산해 냈다. 죠르주의  헌신적인 사랑이 변함없이 지속되었고 쇼팽에게는 생애 가장 화려하면서도 가장 치열하고 고통스런 나날이었다.
 상드는 영원히 그를 보듬고 사랑하려 했지만 연약한 쇼팽은 더이상 그녀의 사랑을 받을 용기와 기력이 없었다. 결국 허무한 이별을 맞게 되고 쇼팽의 병세는 빠르게 악화되어 갔다.
 그는 파리에 묻혔다. 죽어서도 조국엘 돌아가지 않았다.

 

 무엇이 그를 평생 이방인으로 살게 했을까. 그렇게 고통스럽고 외로웠으면서 가족이 있는 폴란드로 돌아갈 생각은 안 했을까. 예술가의 생애는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애절함이 있다. 김유정은 짧은 생애를 어찌 그리 불행하게 살다 갔는지.
 그들의 삶을 엿보면서 나의 현재를 돌아보기도 한다.

 

 

 


          상처

 

 덤불 속에 가시가 있음을 알지만
 그렇다고 꽃을 찾던 손을 거두지는 않겠다
 그 안의 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꽃의 향기조차 맡지 못하기에

 

 꽃을 꺾기 위해서 가시에 찔리듯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영혼의 상처도 감내하겠네

 

 상처 받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상처 받는 것이므로

                                                - 죠르주 상드 -

 

 

 

                쇼팽 전주곡 15번 <빗방울> O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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