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노래를찾아떠나는여행

대전발 0시 50분

설리숲 2013. 6. 21. 01:17


 어둠을 뚫고 달려온 기차가 대전역 플랫홈에 멈춰 서면 상처 난 귀에서 고름이 쏟아지는 모양새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구내에서는 가락국수를 팔았고 승객들은 짧은 시간에 한 그릇을 먹고 다시 기차를 타야 했다. 여간 동작이 빠르지 않고서는 그 혜택(?)을 누리기가 어려웠다.
 여행보다도 저처럼 가락국수 한 그릇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내 임의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가락국수가 사라진 뒤였다.

 

 밤을 도와 어디론가 가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연들을 가졌을까. 앉지도 못하고 후루룩 단숨에 국수를 들이켜야 할만큼 그들은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었을까.
 낮이 아닌 밤기차를 타는 사람들의 애환이 막연하게 애잔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전발 목포행 0시 50분 기차가 있었다.
 아주 잠깐 운행했었다고 한다. 물론 대전발이 아니고 서울발 목포행 야간열차였다. 대전에서 정차했다가 출발하는 시간이 0시 50분이었다. 한 일년 운행하고는 시간이 변경되었다. 그것을 캐치하여 대중음악인들이 만든 노래가 대전 부르스였다.
 그 이후로 대전에서 0시 50분에 출발하는 기차는 한번도 없었다.

 

 현재는 어떨까.
 서울역에서 밤 10시 50분발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그랬더니 대전역에 0시 45분에 도착했다. 1분을 쉬었다가 떠나니까 0시 46분에 출발하는 셈이다. 얼추 노래에 나오는 시각과 맞긴 하지만 목포행이 아니라 부산행 열차인 것이다.
지금은 호남 쪽으로 가는 기차는 대전 역이 아닌 서대전 역을 지나다닌다.

 

 

 

 

 

 지금은 출출한 뱃구레를 달래 줄 가락국수도 사라진 지 오래다. 노래 가사처럼 세상이 잠 들어 고요한 밤에 여전히 소리치며 기차는 달리지만 예전의 그 기차는 분명 아니다. 거개가 KTX라고 불리는 빠른 기차고 그 아랫것이 새마을호요 가장 낮은 것이 무궁화다. 말하자면 세상은 속도에 죽고 속도에 사는, 옛날 만화책에서 보던 그 어느 미래의 시간에 정말로 와 있는 것이다.
 기적소리가 슬플 리도 없고 떠나는 그님을 붙들고 눈물 흘리는 연심도 없다. 그저 세상은 무심하게 변하며 흐르고만 있다.

 

 

 

 

 대전역 플랫홈에 내려서 남보다 먼저 뛰어가 가락국수를 먹어 보고 싶었는데 그 쉬운 일을 영원히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못내 슬프다. 대신 역광장을 빠져 나와 지하도를 건너 C&U라고 써 붙인 24시간 편의점이 있어 1400원짜리 햄버거를 하나 사 먹었다.
 역광장을 나올 때 저쪽 음침한 불빛 아래 늙수그레한 여자가 하나 일어나더니 다가온다. 자고 가요. 니미럴... 세상은 변했어도 저 인간들 저 풍경은 여전히 독버섯처럼 살아 있구나였다.

 부슬부슬 빗방울이 내리고 있었다. 지리한 장마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최치수 작사 김부해 작곡 안정애 노래 : 대전부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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