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에 남도를 여행하다 보면 여기저기 파랗게 펼쳐진 보리밭 풍경이 아름답다. 전형적인 우리 전원풍경이다.
어릴 때 산골 고향마을에는 대부분 보리나 밀 농사를 지어서 요긴한 식량으로 삼았기 때문에 보리에 대한 편린들이 많다. 대부분은 부정적인 편린이었다. 배곯아 궁핍한 때 허구헌 날 시커먼 개떡 반대기로 허기를 채웠고 그것마저 없는 보릿고개는 참으로 신산한 날들이었다.
이른 봄 물 오른 버들가지로 피리를 불던 아이들은 5월이 되면 보릿대를 꺾어 피리를 불었다.
아이들은 자연에 있는 모든 것들이 놀잇감이었다. 밀이 누렇게 익으면 모개를 꺾었다. 이것은 속이 빈 대롱이어서 비눗방울놀이로 최적이었다.
채 익지도 않은 보리를 따 질겅질겅 씹으면 천연 껌이 되었다. 산천으로 뛰어다니며 놀다 보면 등에 보리 까끄라기가 잔뜩 들어가 따끔거리던 기억들.
마당에 누렇게 익은 밀과 보리를 펼쳐놓고 타작을 하던 풍경들. 파란 하늘에 날아오르던 먼지들이 눈앞에 암암하다. 비로소 저승 같은 춘궁기가 끝나고 소쩍새소리와 함께 계절은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보리와 밀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60~70년대 정부는 백성들에게 혼분식을 장려했다. 쌀과 식량이 부족한 때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턴가 시골 들판에 보리 밀이 사라져 버렸다. 그것들은 대부분 수입으로 충당했고 지금은 남부지방의 극히 적은 농가들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도 작물로서가 아닌 벼농사를 짓기 위한 사전 땅심높이기의 방법으로 말이다. 지난날 가난의 상징이었던 보리 밀이 이젠 쌀보다 더 귀하고 비싼 몸이 되었다. 그렇게 싫고 물리게 먹던 보리밥을 이젠 음식점에 부러 찾아가서 비싼 값으로 사먹는 세태다.
어쨌거나 보리밭이 있는 풍경은 아름답다. 전형적인 농촌의 목가풍이다. 내 어릴 때도 그랬고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그렇다. 보리가 누렇게 익을 무렵의 그 냄새는 또한 이 세상 무엇보다도 더 좋다. 그리움이요 벅찬 설렘이다.
그 어느 것도 돌아올 줄은 모르고 사라져만 간다.
보리피리
한하운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故鄕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靑山
어린 때 그리워
필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人間事 그리워
필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放浪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필 - ㄹ 닐니리
보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보통 가난에 대한 기억인데 한하운의 시는 아무래도 문둥병이 그 모티프가 된다.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불우한 삶. 그의 시는 늘 가슴을 저민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보리피리 시비가 있다. 碑는 서있지 않고 바닥에 누워 있다. 시인의 불우한 인생을 상징하는 것 같아 이 또한 비창하다.
한하운 시, 조념 곡, 엄정행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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