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태준의 가곡 <동무생각>에 나오는 청라언덕이 어디인가가 한번쯤은 궁금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계속 이야기가 있어 왔다. 충남 보령에 청라면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일 수도 있다는 설까지.
박태준은 1986년에 작고하였는데 생존 시에는 구구 억측만 있었지 정확한 결론은 없었다. 이후 선생이 작고한 이후로 갑자기 부상한 게 대구 동산동이었다.
계성학교에 다니던 박태준이 이웃 신명학교 여학생을 좋아했는데 말은 못 하고 짝사랑으로 평생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지우인 이은상이 그 사연을 듣고 가사를 지어 주어서 탄생한 노래라고. 청라가 靑蘿, 즉 ‘푸른 담쟁이’라는 설명이다. 지금 이곳에 가면 담쟁이덩굴이 많이 있다. 게다가 노랫말에 백합꽃이 나오는데 신명학교 교화가 백합이라는 사실까지 덧붙여 확실하게 끝맺음하고 있다.
그런데 난 좀 신뢰성이 없어 보인다. 고인은 생존 시 이것에 대해 한마디도 안 했다. 관계없는 사람들만 왈가왈부했을 뿐. 그리고 작고하자마자 만들어 낸 이야기인 것 같은 의혹이다. 죽은자는 말이 없으니 이것저것 필요한 소스를 가져다가 그럴듯하게 완성한 스토리 아닐까.
그보다는 작사가 이은상의 고향인 제비산이라는 설이 더 그럴듯하다. 이은상이 생존 시에 직접 이 산을 언급했다고 한다. 현재 마산문학관이 있는 이곳은 쑥이 많다고 한다. 청라의 라(蘿)가 담쟁이도 되지만 쑥이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더구나 가사 2절은 백사장의 조수와 흰 새를 노래하고 있으니 대구 동산언덕과는 전혀 관계없는 바다의 노래이고 이은상의 고향인 마산이 맞는 것 같다.
어쨌든 대구가 아니라는 명확한 근거도 내겐 없고 고인들은 말이 없으니 대구시가 발 빠르게 착수하여 얻은 문화프랜차이즈 청라언덕은 이대로 굳어질 것이다.
대구 계산동 동산동 일대는 근대역사 유물들이 산재해 있다. 청라언덕이 된 동산병원 내 언덕에는 구시대 선교사들의 가옥과 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과나무도 있고, 100년 역사를 지닌 대구제일교회, 또 계산성당이 우람하게 서있다. 이곳은 항일운동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서상돈 이상화고택도 있고 3‧1계단이 이곳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대구 학생과 종교인들이 오르내리며 만세를 불렀던 3‧1계단은 90계단으로 부산의 40계단과 더불어 대구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근대골목투어의 여행지로 한창 부상하고 있다. 지하철 1호선 중앙역이나 2호선 신남역에서 내려 약령시장을 포함한 의미 있고 실속 있는 여행을 즐긴다. 과연 담쟁이들이 많다.
이은상 시 박태준 작곡 백남옥 노래 : 동무 생각
‘동무’는 참 친근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인데 이젠 그 말을 쓰지 않는다. 북한 정권이 수립되고 모든 인민은 평등하다는 의미로 동무라는 말을 쓰면서 어느 때부터 이남에서는 이 말을 금기시하게 되었다. 대신 ‘친구’가 널리 쓰이고 있다. 똥동무 어깨동무 말동무 등 동무라는 말이 참 좋았는데... 따라서 <동무생각>이었던 노래 제목도 어느 때부터 <사우(思友)>라고 바뀌기도 했다. 뜻은 같지만 어감은 전혀 다른 해괴한 이 현상이란.
‘인민’도 그렇다. 우리 어렸을 때는 이 말을 일상으로 썼다. 당시 부르던 건전가요에도 인민이란 낱말이 많이 들어있다. 물론 지금은 가사가 바뀌었지만. 이후로 인민이란 말은 아예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졌다. 아마 내가 이 단어를 쓴다면 다들 불순한 시선으로 쳐다볼 것이고 어쩌면 국정원에서 나올지도 모르겠다. 대신 우리는 ‘국민’을 쓴다. 이북은 인민학교가 되었고 이남은 국민학교가 되었다. 인민과 국민은 그 어감이나 뉘앙스도 차이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