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컵만 들고 다니는 걸 자주 본다. 주로 아가씨들이 그렇다. 저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하는 걸까 저 컵을 좋아하는 걸까. 때로는 물을 채워 넣고 다니기도 한다.
사람 행태가 다 제각각이어서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수 없으니 흉볼 거리도 안 되지마는.
유명 브랜드가 찍힌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는 것도 요즘의 한 트렌드요 일종의 허세라고 한다. 되도록 나를 예쁘게 포장하고 싶고 더 근사하게 보이고 싶은 게 인지사정이라. 마시고 난 빈 잔을 들고 걸으면 그것도 액세서리의 구실을 하기도 하겠다. 가방은 큰데 책은 꼭 손에 들고 다니면 지적인 매력을 풍길 거라는 기대심리랑 한가지다.
빈 컵을 버릴 데가 없어서 들고 다닌다고, 또 그냥 버리는 것 보단 물이라도 넣어 다니면 쓰레기도 줄이고 재활용하는 거 아니냐고 항변하면 뭐 할 말도 없네.
그렇대도 좀 꼬인 내 심사는 저 사람들의 모습을 허영으로 매도하고 만다. 명품 백이 그 상표가 잘 보이면 보일수록 그것을 든 사람의 엔돌핀은 최고조에 달할 것이다.
점심시간이면 한결 활기를 띠는 거리. 주위에 대기업 유명기업들이 밀집한 거리에도 넥타이들의 활보가 있다. 그들도 역시 많은 이들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신다.
왜 우아하게 앉아서 폼을 잡지 못하고 저렇듯 돌아다니며 마시는 걸까. 우리 어른들은 음식은 제자리에 앉아서 먹어야지 상놈들이나 돌아다니며 먹는다고 했는데. 그걸 보면 테이크아웃 커피점들은 참 나쁜 사람들이다. 제값 주고 먹는 손님을 안에서 먹게 하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다니. 넉넉하게 테이블을 준비하지 가게도 조그마하니 어디 서 있을 수도 없잖나 말이다. 또 그걸 멋으로 아는 게 요즘의 트렌드라 하니.
달콤한 시간은 짧아 넥타이들은 또 거대한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 목에 건 사원증을 여보란 듯 흔뎅이며 우쭐하니 보기엔 화려하고 여유도 넘쳐흐르지만 어쩔 수 없이 기업의 노예들인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살아남아야 한다. 경쟁을 하고 돈 많은 사주에게 충성하고 아부를 하며 젊음과 청춘을 바쳐야 하는 기계 같다는 생각을 한다. 하루에 한번 만끽하는 저 즐거움을 어찌 탓하랴. 따지고 보면 저들이 있기에 이 사회와 세상이 또 지탱하고 유지되는 것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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