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길위에서 만난 우리, 구례 - 셋째 날

설리숲 2011. 10. 3. 15:30

 

 수한마을의 아침.

 이번 기간 동안 늘 새벽 일찍 눈이 떠져 가장 먼저 일어났다. 일어나서는 마을을 돌아본다. 연일 짙은 안개가 아침을 맞는다. 전날 탑동보다는 마을이 풍요로워 보인다. 호수가 많이 밀집해 있다. 마을 앞 들판도 넓고 넉넉하다.

 

 

 

 

 지리산 문화제 셋째 날.

 이 지역 모임인 <만인보> 회원들이 합류한다. 식구가 늘어 제법 북적거린다. 오늘의 문화제 장소인 오미마을로 향한다. 멀리 구례읍 전경을 보며 걷는다.

 깔축없이 가을이다. 황금들녘이다. 호남지방은 모든 것이 풍부해 보인다. 지리산과 섬진강을 가진 이들이 부럽다.

 

 

 밭을 지나고 숲을 지나고 대나무 울타리를 지난다. 지리산 둘레길은 이 다양함이 좋다.

 

 

 

 

 

 

 

 오늘의 도착지는 오미마을이다. 유명한 운조루가 있는 곳이다. 기실 이번 지리산문화제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셈이다. 토요일인데다 유명 관광지라 탐방객도 많은 이곳이 문화제 본공연의 무대다. 여느 날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일정을 마친다. 마을은 이미 사람들로 부산해져 있었다.

 숙소로 배정된 아름다운 한옥에 든다. 마치 조선의 귀족이 된듯 하다. 정갈하고 운치있는 한옥들이다. 평소엔 웬만해선 숙박하기 어려운 조건을 지닌 집들이다. 문화제에 참가하길 정말 잘했다.

 

 

 

 

 

 모든 음악은 현장에서 듣는 게 가장 아름답다. 나는 오카리나를 분다. 내가 연주할 때 제법 듣기 좋은 소리라 생각했는데 누군가가 저장해 놓은 동영상을 보면 정말 허접하기 짝이 없다.

 운조루에서 판소리의 세계에 심취했다. 여간해선 음반을 통하지 않고는 정통 판소리를 접할 기회가 없다. 박정선 명창의 춘향가 한 대목 공연이 있었다. 예술이란 참말로 위대한 것이고 그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위대하다. 관객들을 쥐락펴락하는 그 틀거지와 해학, 그 자신감과 여유는 음악을 듣기도 전에 관객을 사로잡는다. 아, 이게 명장이고 프로구나.

 박 명창 자신도 이렇게 멋진 운조루에서 공연 한번 해보는 것이 평소 소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만큼 소리도 정성이 가득했고 그 아름다움과 기품은 서양음악에 훨씬 앞서 있다. 이 감동.

 

 

 

              운조루에서의 진주 교방춤.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한 진귀한 공연이었다.

 

             무아지경에 빠지게 한 박정선 명창의 소리. 아 이런게 진짜 음악이구나.

 

 

 본 공연의 막이 오른다.

 한영애의 퍼포먼스로 시작한다. 이런 류의 퍼포먼스는 솔직히 아름답기보다는 섬뜩하다. 어떤 신이 강림해 있는 것 같은 두려움과 내 몸에도 접신되어 들어올 것 같은 공포가 생긴다. 공연자의 표정이 꼭 그렇다. 정말로 접신된 것 같은 무아지경의 얼굴.

 관객이 많아 풍성하니 좋다. 밤늦도록 공연이 이어진다. 아, 이곳은 온통 예술의 천지구나. 아니다 세상은 오직 음악과 춤으로만 꾸려지는 이상향인 것 같은 환상.

앵콜 또 앵콜. 그리고 춤 또 춤.

 

 

 

 

 역시나 막걸리 뒤풀이. 오늘 유난히 판이 크다. 나는 자신 없어 또 먼저 들어와 눕는다. 앞으로의 모든 나날들이 요즘 같은 고차원적이고 영험스런 시간들로 이어졌으면.

 제6회 지리산 문화제의 피날레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