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길위에서 만난 우리, 구례 - 둘째 날

설리숲 2011. 10. 3. 10:47

 

 일교차가 심하다. 쌀쌀한 아침 기온에 잔뜩 움츠러들더니 숲길을 오르고 햇살이 퍼지자 땀이 흐른다. 아직은 가을이 깊지 않아 숲은 여름의 초록과 가을의 갈색이 공존한다.

 

 

 

 

 

 

 

        우리를 취재해 간 YTN의 영상을 보느라 몰려든다. 스마트폰이 참 좋은 물건이다. 때로는 문명의 이기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생각을 한다.

 

 

          오늘은  광주MBC에서 취재를 나왔다.

 

 둘레길을 벗어나 구례읍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구례장날. 거리에서 안날 밤의 마당극 공연이 다시 열렸다. 장터에서 사내 하나를 만나 평상에 앉아 잠시 담소를 나눈다. 다리를 절룩거린다. 어디서 거나하게 취해서는 연신 빙글거리며 웃는다. 기분 좋게 취한 것 같다. 장애인이라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는 게 제일 속상하다고. 장에서 1박2일 촬영이 있었나 보다. 강호동이 없는 1박2일이 뭐가 재밌겠냐며 그래도 이승기를 보려고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다나. 그와 헤어져 발길을 돌린다. 내 목에 걸린 카메라를 보고는 지저분한 건 찍지 말고 멋진 것만 찍어서 널리 알려달라고 한다.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몹시 비척거린다. 술에 취한 건지 다리가 불편해선지 잘 모르겠다. 해맑은 표정을 지닌 사내다. 외로운 걸까. 처음 보는 이방인을 붙잡아 앉혀놓고 말을 거는 저 너울가지는.

 

 

 

 

 

 

 

 

 오후의 도보는 서시천을 낀 들판이다. 숲의 호젓함은 없지만 너른 황금들녘의 풍경이 아름답다. 곳곳에서 모인 일행들이 어제의 서먹함을 완전히 벗고 이미 하나가 돼 있다. 더불어 오래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이 하룻밤을 잔다는 게 사람들끼리의 친밀감을 높이는 것 같다.

 

 오늘의 도착지는 수한마을.

 일정이 늦어져 목적지를 목전에 두고도 차를 타고 이동한다. 마을에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역시 어제처럼 마을은 흥성거리고 있었다.

 

 지리산 가수 고명숙의 공연이 있었다.

 어느 해 봄날. 벚꽃도 다 지고 새파란 찻잎이 모도록 피어오르는 봄밤에 화개 민가를 급습해서 잠을 자고 있던 그녀를 깨운 일이 있었다. 꺼려하는 걸 강제로 용춤을 추워서 노래를 시켰었다. 역시 전문가라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안으로 들거가 복장을 갖추고 나온다. 남들에게 노래를 할 때는 평상복차림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게 철칙이란다. 역시 프로다. 혹 사진을 찍을지도 모니까 모자도 써야겠다며 두건을 쓴다. 그날밤 우리는 귀한 노래를 여러 번 청해서 들었다. 그 황홀하고 아름답던 봄밤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고명숙은 내게 그런 인연이 있다.

 

 

 

 

 

 

 

 공연에 이어 다시 어울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흥이 많다 하지만 특히 전라도 사람들은 그렇다. 이곳은 예술의 땅이다. 판소리의 고장이다. 음악과 미술 문학이 샘처럼 솟아나오고 그 풍토 속에서 삶의 멋을 즐기는 풍요의 고장이다.

 막걸리에 취해 음악에 취해 마당은 흥분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역시 밤늦도록 뒤풀이가 있었지만 오늘은 내가 견디질 못해 먼저 들어와 눕는다.

 문화제에 참가하길 잘 했다. 아주 행복하고 흥분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