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충북선 삼탄역

설리숲 2011. 9. 2. 12:34

 

 

 

 여전히 빛은 강렬하다.

 절정의 여름보다도 오히려 더 뜨거운 나날이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유치하다. 숱하게 비가 내리는 날들을 불평하면서도 그래도 바캉스를 즐기겠다고 떼를 지어 산천을 메우더니. 그 정념들은 시나브로 사그라지고 정작 요즘의 무더운 철엔 피서지들은 쓸쓸하게 텅 비어 있다. 누구 말마따나 올해는 추석 연휴에도 해변에서 피서를 즐길 수 있게 생겼다.

 

 삼탄.

 세여울.

 여울이 셋이 모인다는 그곳에 역 하나 쓸쓸하게 있다.

 삼탄역은 간이역은 아니다. 상하행 왕복 하루 여섯 편의 기차가 정거하는 외진 역이다. 타고 내리는 사람도 없다. 인근 마을엔 주민도 없고 사람이라야 한철 관광객을 상대하기 위한 업소 몇이 있을 뿐이다. 청풍호 주변 공사를 위한 덤프트럭들만이 진종일 먼지를 날리면서 질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삼탄역엔 버젓이 직원들이 상근한다. 그들마저도 없다면 정말 깊은 산속 폐가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 뻔질나게 드나드는 화물열차의 쇳소리와 바닥을 알 수 없는 시퍼런 여울소리만이 이곳 풍경의 전부다. 그 다리 난 간에 서면 세상은 그저 침묵의 공간이다. 처음부터 잊힌 곳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찾는 이들이 없진 않아 나 같은 나그네들의 발자국이 오솔길에 길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삼탄역에서 제천 쪽으로 한 정거장 더 가면 영화 <박하사탕>의 촬영지로 유명한 공전역이다. 영화인은 가장 좋은 장면을 위해 그곳을 찾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예술가도 아니면서 그저 유명세로만 찾아든다. 오늘도 그곳 철로에서는 “나 돌아갈래!” 고래고래 지르면서 두 팔을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그런 것이다. 비틀즈가 앨범재킷을 찍었던 횡단보도는 영국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람들은 배만 타면 뱃머리에 서서 타이타닉을 연출하고, 들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는 “뱀이가 물믄 마이 아파” 눈을 까뒤집고 미친년 행세를 한다. 애비로드의 횡단보도처럼 공전역의 철로도 어쩌면 중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지도 모르겠다.

 

 

 

 

 

 

 

 

             역사 마당 끝에 서서 파란 여울물을 굽어 본다.

 

 

 9월의 첫날이다. 태양은 이글거린다.

 9월의 첫날엔 라디오에서 많이 나오는 노래가 있다. 9월이 오는 소리.

 그래 어쨌건 9월이다. 대지의 열기는 조금씩 식어갈 것이고 철로변의 무성한 풀들도 머지않아 퇴색할 것이다. 천일국은 이미 꽃잎이 떨어져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는 중이다.

 패티김이 아닌 어느 여가수의 재즈풍의 <9월이 오는 소리>가 나온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늦여름 철로변의 풍경에 제격인 창법이 아주 좋다. 원곡보다 진하게 느낌이 전해진다.

 마지막 노랫말이 삼탄의 여울물처럼 가슴에 흘러든다.

 

 

 

  사랑을 할 때면 그 누구라도 쓸쓸한 거리에서 만나고 싶은가

 

 

 

 

 

 

 

 

        삼탄 역장

 

 

  산이 산들을 업고 겹겹이 누운

  깊은 산골 삼탄역 빈 대합실

  다람쥐 한 놈 기웃거리고 있다

  역 앞은 푸른 계곡

  여울 소리만이 가득할 뿐

  가끔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거대한 공룡의 유령처럼

  산허리를 뚫고 지나갈 뿐

  이 산골에 내리는 사람은 없어

  역장은 늘 역사에 없다.

  열대여섯 되는 동자놈 하나

  여울에 그물을 던져

  제 팔목만한 치리를 끌어올리기에

  그가 어디 있는가고 물었더니

  감자밭에 없으면

  고사리를 꺾으러 산에 갔으리라 한다.

  여울엔 푸른 오동꽃이 떨어져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 임보 -

 

 

 

 

 

 

       말로 : 9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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