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메뚜기의 열정적인 사랑

설리숲 2010. 1. 6. 23:23

 누이가 수상한 음식을 두 접시 내놓는다.

 메뚜기. 볶은 메뚜기다. 지난 가을 논에 가서 직접 잡아다가 냉동실에 넣어두었단다. 요즘 세상에도 메뚜기가 있나. 약 안치는 농가도 있나 보네.

 우와, 이 엄동설한에 메뚜기라. 참 세상 좋아졌지. 이 계절에 딸기 먹는 거 하나도 이상할 거 없지만, 엄동설한에 딸기가 먹고 싶다는 어머니를 위해 효자가 눈 덮인 산속을 헤매고 다녔다는 전설을 들은지 엊그젠데 세상 참 좋아졌다.

 

고소한 냄새가 유혹하는 그것을 집어 먹으며 다들 메뚜기에 대한 추억에 젖는다.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저마다 그 시절 떠올리며 그리워하기도 할 것이다.

 잠자리 매미 잡던 추억, 가재 개구리 잡던 추억, 버들치 미꾸라지 잡던 추억들.

 꼬마에게 잠자리는 만만하지가 않았다. 워낙 빠른 놈이라 가까이 접근하는 기척만으로도 호로록 날아가 버린다. 그 빠른 놈을 나보다 큰 형이나 누나들은 어찌 그리 잘 잡는지. 나도 저만큼 크면 잘 잡을 수 있게 되는 건지.

 그런 꼬마도 양 손가락 사이가 다 차도록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아침에 잡거나 안개 잔뜩 낀 날 잡는 것이다. 아침에 잠자리는 손으로 건드려도 날아가지 못하게 둔하다. 어린 소견에 놈들이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잔뜩 이슬을 맞아서 몸이 무거워 그렇다. 역시 안개 자욱한 날에도 온몸이 함빡 젖어 있어 잘 날지 못하는 것이다.

 메뚜기도 그렇다. 아침 일찍이거나 안개 낀 날엔 제법 풍성하게 잡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메뚜기는 잠자리보다도 훨씬 빨라 한 마리 잡으려면 세 번을 쫓아가야 한다. 아마 그런 놀이들이 시골아이들을 건강하게 했을 것이다. 벼이삭이 패고 배동이 오를 무렵이면 메뚜기도 누렇게 이져 간다. 논배미마다 아이들이 눈을 휘뚝거리며 메뚜기를 쫓는다. 진로소주 빈병에다 하나 가득 채워 돌아오는 길은 저절로 휘파람이 난다. 소주병이 아니면 강아지풀 홰기를 뽑아 메뚜기 목덜미를 주렁주렁 꿰었는데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놈들의 절박한 몸짓들이 은근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뭐든지 마찬가지지만 메뚜기도 암놈이 환영 받는다. 덩치도 클 뿐만 아니라 알을 가졌기 때문에 웬만하면 수놈보다는 암놈을 위주로 잡는다. 흔하게 보는 게 쌍둥이다. 한 번에 두 마리를 잡으니 쌍 붙은 놈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애들은 어미와 새끼라고 알지. 그럴 것이 밑엣놈은 덩치가 크고 업힌 놈은 작으니 당연 어미가 새끼를 업은 거지. 어른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그렇게 알았으니까.

 한데 오묘한 현상이 하나 있다.

 여름이라도 아침 공기는 제법 서늘해서 종아리에 함초롬히 이슬을 적시고 메뚜기를 잡다 보면 손발이 냉랭하기 일쑤다. 메뚜기도 차갑다. 그런데 쌍 붙은 것을 잡으면 그놈들은 몸이 따뜻하다.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미물이라도 사랑을 나눌 땐 뜨겁게 열정을 발산하는 것이다.

 어른이 된 나중에 돌아보면 죄책감이 든다. 그 얼마나 몹쓸 짓을 했던가. 그걸 먹겠다고 눈을 희번득이며 뛰어다닌 건 그나마 아무렇지 않은데 열정적 사랑을 나누고, 자식을 낳기 위한 성스러운 행위를 하며 한껏 무르익은 암수에게까지 저지른 행위는 참말 못돼먹은 짓이었다. 아 막말로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그걸 하며 한껏 고조되고 있는데 누가 와서 방해라도 하면 그 얼마나 분노하겠는가 말이지.

 

 가책은 가책이고 이 엄동설한에 맛보는 메뚜기는 맛을 떠나 그 시절의 풍족한 세계로 되돌아가 잠시나마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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