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회상

설리숲 2008. 2. 18. 01:07

 

  막내라 늦게까지 젖을 먹는 혜택을 누렸다. 말이 네 살이지 그때까지 젖이 나왔을까는 의문이다. 어쨌든 나는 네 살까지 엄마 젖을 물었고 빈 젖은 아니었건 걸로 기억이 된다.

 네 살 때 젖을 떼기 위해 그게 뭔지는 모르나 모모 쓴 약초 액을 엄마 젖에 발랐다. 네 살이면 맹문이 빤하니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뗀다는 게 어린 소견에도 무척이나 서운했다. 그러면서도 그게 써 봐야 얼마나 쓰랴. 뱃심에 무턱대고 젖을 빨았는데 과연 입안에 가득 퍼지는 쓴맛 때문에 그냥 빽빽대고 울어댔다. 이웃집 아저씨가 와서 “이노옴! 다 커서 장개 가게 된 녀석이 아직도 엄마젖을 먹니, 이놈~” 하며 나를 어루꾀던 일.

 그러니까 나의 최초의 기억은 네 살적이고 네 살적의 기억은 그게 유일하다.


 그러므로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들은 다섯 살 때부터의 이야기다. 일곱 살 까지 평촌에서 살다가 여덟 살 되던 해 1월에 춘천시내로 이사를 나왔으니 기껏해야 3년 동안의 추억들이다.

 그런데도 나의 온 평생보다 그 유년 3년의 추억들이 훨씬 많고 할 이야기도 많다.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기억들은 순서가 없다. 다섯 살 때였는지 여섯 살 때였는지 혹은 일곱 살 때였는지 알 수가 없다. 또 어린 시절이라 기억되지 않는 것들도 많다.

 일례로 열일곱에 시집왔던 큰형수가 요즘 물동이를 깼던 이야기를 한다. 본디 형수와 시동생의 띠앗머리라는 게 여느 관계보다도 무척 구순한 사이다. 게다가 아직 젖 뗀지 얼마 안되는 아기였으니 무람없는 사이였을 것이다. 같이 놀기도 하고 치근덕거리며 장난도 쳤을 것이다. 물을 길어 이고 가던 형수를 곯려주려고 돌팔매질을 하다가 그만 이고 있던 물동이를 오삭 깨뜨렸다고 한다. 물론 흠뻑 물을 뒤집어썼겠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화다. 그러니 누가 그때의 일을 이야기 해주지 않고, 오로지 나 혼자의 회상만으로 끄집어내는 편린들은 필시 그 반도 안될 것이다.


 나의 생을 거의 차지하고 있는 게 유년시절 삼년이다. 7년 전에 그 유년의 편린들을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글로 썼었다. 책 한 권은 좋이 될 성 싶은 분량이었다. 소설을 쓰기로 작정하고 낱말 공부에 전념하면서 새로 익힌 우리말을 잊어먹지 않으려고 일부러 작문을 했고, 그래서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쓰곤 했던 것이다.

 그랬는데 그만 어느 날 죄다 홀라당 날아가 버렸다. 컴퓨터라는 게 일면 편리하고 좋지만 또 그만한 약점이 있어 별 거 아닌 오류가 나면 가차없이 모든 자료를 없애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얼마나 허무하고 아깝던지.

 너무 아까워 첨부터 다시 쓰려고도 했었지만 허탈감이 참으로 오래 갔다. 맘성으론 늘 쓴다쓴다 하면서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한 채 지금까지 뭉그적거렸다.

 이제는 글이 날아갈 염려는 없겠다. 바로바로 이곳에 올려놓으니 ‘다음(daum)’이라는 회사가 망하지 않는 보관이야 길래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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