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유년의 대뜰

만둣국이 있는 풍경

설리숲 2008. 2. 9. 23:51

 설을 지나고도 여자들은 맘 편히 쉬질 못했다. 설부터 한 달은 동네사람들이 집집마다 마실을 다녔다. 특정하게 어느 집을 정하고 가는 것도 아니고 차례로 순회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집이나 갔다. 혼자서 가는 경우는 없고 서넛이나 대여섯, 예닐곱이 같이들 다녔다.

 그럴 때 방문을 받는 집 주인은 만둣국을 끓여 대접했다. 설을 지낸 끝이라면 남은 녹두적이나 메밀무거리, 생선전 따위 설음식을 먹기도 했지만 이후에는 만만한 게 만둣국이었다.

 그러니 늘 만두를 준비해 두어야 했다. 언제라도 객이 오면 대접해야 하니 허구헌 날 만두를 빚었다. 반죽을 치대고 만두 빚는 거야 그리 큰 일거리도 아니다. 문제는 만두 속인데 이게 손이 많이 간다. 그렇다고 쉬이 쉬는 게 만두 속이라 미리 많이 만들어 놓을 수도 없는 것이다.


 만두피는 거의 밀가루로 하지만 그 당시 산골에서는 메밀가루였다. 이 메밀가루가 만두 빚기는 아주 쉬웠다. 밀가루반죽은 썰어서 홍두깨로 얇게 밀어야 만두피를 만들었지만 메밀가루반죽은 밀지 않아도 손으로 주물럭거려 쉽게 피를 만들어 빚었다. 대신 아주 잘 풀어졌다. 메밀로 빚은 만두를 넣고 끓이면 대개는 헤지고 터져서 국물과 범벅이 되기 일쑤다. 또한 밀가루 만두보다는 맛이 덜했다. 그렇지만 대접하는 사람도 얻어먹는 사람도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은 없다.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먹는 것 자체가 즐겁고 흥겨운 일이니까.

 아이들은 기다리고 있다가 남은 모태끝을 얻어 화로에다 구워먹곤 했다. 만두뿐이 아니라 칼국수를 만들어도 아이들은 모태끝을 구워먹는 걸 밝혔다. 별 맛도 없는 걸 뭘 그리 얻어먹으려 했는지. 기실 맛 보다는 그저 화로에 구워먹는 일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또 노릇하게 구워 놓으면 제법 구수하긴 했다. 좀 배려를 하는 어른은 일부러 크게 모태를 잘라주곤 했다.

 

  만두 추렴은 한 달간 계속됐다. 그러니 여자들은 만두 빚는데 이골이 났고, 또 그만큼 지겹기도 한 일이었다. 서로가 약속을 하고 안 다니면 다들 편했을 텐데도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다. 정월 한 달을 그렇게 지내다가 정확하게 이월 초하루가 되면 뚝 발길을 끊었다. 설 준비부터 시작하면 섣달부터 편하게 몸 뉘일 짬이 없던 셈이다.


 가래떡은 설밑에 뽑아다가 말랑거리는 걸 실컷 먹고는 딱딱해지면 물에다 담가 놓았다. 냉장고가 없으니 물이 얼면 그대로 차갑게 냉동고가 된다. 만둣국을 끓일 때마다 적당하게 꺼내서 썰어 넣었다. 설을 지내고도 한 달을 먹어야 했으니 가래떡도 엄청나게 많이 했던 셈이다.


 설날에 만둣국을 먹는 풍속은 강원도에만 있는 걸로 안다. 다른 지방에선 떡국을 먹는다고 한다. 글쎄다. 떡국도 그리 맛이 없는 건 아니나 맨숭맨숭하게 떡만 넣은 국은 좀 헛헛하고 모자란다. 그래도 겨울과 설에는 구수하고 타지근한 만두가 제격이 아닐까 한다. 이런 걸 지방색이라 하지. 어디를 가도 자신의 나고 자란 곳의 정서를 그리워하는 이해할 수 없는 수구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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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속이 말했다.

 - 피가 모자라~~ 피가 모자라~~

 

  내가 물었다

 - 무슨 피??

 

  만두 속이 말했다.

 - 만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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