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지상렬이 방송에서 개고기를 안 먹는 이유를 말했다.
“어릴 적 어른들이 개를 매달아 죽인 다음에 물이 펄펄 끓는 솥에다 집어넣었다. 근데 아직 숨이 붙어 있었는지 개가 솥에서 뛰어나와서는 정신이 없는 가운데도 주인을 보고는 다가와서 꼬리를 흔들더라. 그래서 개는 잡아먹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보신탕 먹는 걸 반대하려는 취지의 말인지는 모르나 직접 체험한 일이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가 분명하다.
매달아 죽인 개는 일단 불에 그슬려 털을 제거한 후에 각 부위별로 각을 떠서 요리를 하지 통째로 솥에 넣어 삶진 않는다. 게다가 털이 수북한 개를 그냥 삶는다니.
먹는 게 주리던 시절이었다. 기껏 누구 생일날이라야 고등어 따위 생선이나 먹었다. 육고기야 명절이나 동네 잔칫집 또는 초상집 등 경조사가 있을 때 정도 먹었을까. 귀한 손님이 오면 집안 팎을 헤집고 다니며 모이를 찾던 암탉 한 마리 잡아 대접하며 그때 고기를 먹었다.
사람들은 늘 고기가 구뻤다. 오래도록 고기를 못 먹으면 육징이 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개를 잡았다. 개야 집집마다 있었으니 뉘집 개를 하나 잡으면 마을 어른들이 그날 막걸리와 함께 포식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러나 달랐다. 개는 아이들과 가장 친한 짐승이었다. 들고 날 때 좋아서 꼬리를 치고 어디든 졸랑졸랑 따라다니던 친구 같은 존재였다.
개를 잡는 광경을 한번이라도 본 아이라면 그 처참함에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짐승들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서운 징조를 미리 감지한다고 한다. 주인이 평소처럼 다가오지만 개는 그 주인의 몸에서 공포의 낌새를 느끼고는 비실비실 피한다. 주인은 먹이로 유혹한다. 불안하면서도 개는 설마 하는 기분으로 먹이의 유혹에 넘어가 너무 일찍 운명을 맞이하기도 한다. 보통은 먹이의 유혹에도 그냥 피하기만 한다. 그렇다고 멀리 달아날 용기는 없다. 이때껏 따르고 충성했던 주인이라 감히 멀리 도망간다는 건 배신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그렇지만 고기가 먹고픈 주인은 그런 충성심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 없다. 그의 손엔 올가미가 들려 있다. 개는 점점 무서워진다. 이리저리 피해 본다. 주인만 있는 게 아니다. 이웃 사람 서넛이 같이 포위해 온다. 개는 극도로 공포에 질린다. 신음소리를 흘린다. 제정신을 잃는다.
개가 잔뜩 투그리고 사람을 노려본다. 최후의 발악인 듯 으르렁댄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이제 없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 같이 험악하고 긴장된 순간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결국 개는 올가미에 목을 조인 채 질질 끌린다. 극도의 공포에 신음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 입에서 허연 침이 흐른다. 간혹 제정신을 잃은 개에게 물려 화를 당하는 일도 있었다.
목을 옭아맨 채 대추나무에 달아올린다. 개가 고통스럽게 발버둥친다. 누군가 다가선다. 몽둥이를 들었다. 그리고 처참한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그렇게 무서운 소리는 들어보질 못했다. 개의 비명소리. 둔탁한 매질소리. 투투툭 똥을 갈긴다. 어른들은 똥을 싸야 제대로 죽는 거고 또 그래야 맛있다고 했다.
삶의 마지막 본능으로 버둥대던 개는 차츰 늘어지다가 움직임이 멎는다. 죽은 게 확실하기 전에는 끈을 풀지 않는다. 혹시 화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축 늘어진 채 움직임이 멎은 개를 몇 번 더 두들겨패서 최종 확인한다.
나는 결코 개고기를 안 먹을 것이다. 그 처참한 광경에 어린 나는 충격을 받는다. 보통 개 잡는 걸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보고 만 것이다.
이미 한쪽엔 황덕불이 타고 있다. 개를 불에 그슬린다. 털이 탄다. 역겨운 노린내. 맨들맨들 알몸만 남는다. 온 동네에 노린내 풍기며 그슬린 개를 물가로 가져간다. 거기에 이미 예리하게 벼린 칼과 솥이 준비돼 있다.
부위별로 각을 뜨고 내장을 꺼내고. 내장은 땅에 파묻는다.
그리고 현장에서 솥에다 삶든지 솥을 집으로 가져와서 삶는다. 거기부턴 여자들의 몫이다. 갖은 양념에 정성에 정말 온 동네 사람들이 침이 나도록 맛있는 냄새가 풍긴다.
그날 저녁은 고기파티다.
난 결코 고기를 안 먹으리라 다짐하던 꼬마는 그러나 먹음직스런 고기에 그냥 굴복한다. 참말 맛있다.
지지리도 못 살던 그때였다. 고기를 못 먹으면 육징이 나서 병이 난다.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게 없다.
요즘의 시골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개뿐이 아니라 모든 짐승고기들이 다 저렇듯 처참한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올라오는 것이다.
어느 건 먹어도 되고 어느 건 안 된다는 주장은 억지다. 반대하려면 모든 육고기를 다 반대해야 되는 것 아닌가.
어렸을 때 이후로 나 역시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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