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방

언니의 방

설리숲 2013. 8. 31. 16:16

 

 

  어제 새집으로 이사했다. 남편은 혼자 조용히 책을 볼 수 있는 작은 서재 갖기를 소원했는데 비로소 한풀이를 하게 되었다. 아침에 서재에 들어간 그는 종일 밖에 나오지 않는다. 내가 간식을 갖고 들어가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그는 거늑한 얼굴을 하고 말한다.

 "어때, 나두 이렇게 폼잡고 있으니까 무슨 대학교수 같지?"

 아이같이 천진한 그를 보면서 나는 말할 수 없이 감동을 받는다.

 "대학교수 좋아하네. 얼굴은 산적같이 생겨 가지구."

 그를 놀려 주면서 아련하게 오래된 기억 저편의 얼굴 하나를 떠올린다.


           *      *      *

 

 

 그예 건넌방에 사람이 들었다. 다섯 살짜리 계집애를 단 젊은 부부였다. 남편은 안 보이고 어이딸만 리어카에다 가재도구를 끌고 들어왔다. 전날 비가 내리더니 아침나절엔 희끗희끗 진눈깨비가 질퍽하게 마당을 적신 몹시 쌀쌀한 날이었다.

 "다른 건 몰라두 방은 절절 끓으니까 애 고뿔은 안들 거유. 내가 밑불을 붙여 놨는데 어디 꺼지지나 않았나?"

 그러면서 어머니는 빛이 들지 않아 어두침침한 부엌으로 들어갔다. 건넌방의 그것은 말이 부엌이지 원래는 흙 부뚜막에 달랑 쇠죽가마만 걸려 있고 벽도 없는 한데였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 가마솥은 쇠죽을 쑤느라고 저녁이면 노상 픽픽 김을 내뿜었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농사일을 작파하고 부엌 뒷방으로 들어앉는 바람에 소도 팔아 버리고, 없던 살림은 더 째졌다.

 전에는 큰오빠네가 그 방에 살았었다. 그런데 올케가 베갯머리송사라도 했는지 서울 가서 살겠다고 판판 떠나 버린 바람에 가용이라도 쓸 겸 마침가락으로 그 빈 방을 세를 놓게 된 것이다.

 우선 가마솥을 떼어 내고, 진흙 부뚜막을 헌 다음 이발소 옆 미장이 김씨 아저씨를 막걸리 한 사발로 불러다가 시멘트로 다시 부뚜막을 지었다. 그리고 연탄 화덕을 들여 놓고, 블록 벽돌로 벽을 쌓아 허술하게나마 한데를 가렸다.


 "벌겋게 붙었구먼."

 어머니가 어웅한 부엌 안에서 애기 엄마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들은 체도 않고 질척한 마당에 서서 집안팎을 휘둘러보고 있다가 "집이 겁나게 낡았네." 하며 키가 낮은 집이라 머리 위까지 쳐져 내린 서까래 하나를 잡아 흔들었다. 전부터 달창난 서까래 하나가 있어 저게 언제 부서질까 조마조마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걸 잡은 것이다. 우직, 하더니 달창날 대로 나서 가늘게 간진 데가 부러졌다.

 으매! 애기 엄마의 새된 비명이 있었고, 뒤이어 보꾹에 다래다래 흔뎅이던 검은 그을음과 철매가 호로로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얼른 처마에서 마당으로 비켜섰지만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상아색 스웨터는 검은 그을음이 구저분하게 내려앉은 후였다.

 나는 잘코사니 했다. 어쩐지 첫인상부터 얄미워 보였다. 갸름한 얼굴이 꼭 족제비 같은데다가 무슨 놈의 크림을 밀가루처럼 뒤발질을 해서 염한 시체 회칠한 얼굴 한가지였고, 머리는 파리가 미끄러지게 빤빤히 빗어 넘겨 핀을 꽂은 꼴새가 영 정나미가 떨어졌다. 게다가 추운 날임에도 그 무슨 똥멋인지 허벅지가 다 나오게 덜름한, 그것도 하얀 치마를 입고 대문을 들어섰다. 그런 주제에 무슨 남의 집을 흠잡겠다고 메떨어지게 삐죽하기만 한 콧등에 잔뜩 주름을 잡고 서까래를 잡고 흔들더라니.

 어머니는 자못 불안한 눈으로 애기 엄마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녀가 가탈을 부려 혹시라도 그냥 되돌아 나갈까 보아 조마조마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 여자는 상아색 스웨터를 벗더니 역시 콧등을 찡그리며 거뭇하게 앉은 그을음을 후후 불어댔다. 그리고는 계집애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줌마! 연탄 몇 장만 빌려 주셔요."

 비로소 어머니가 안도하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애옥 언니가 퇴근해 와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것이 더 관심이 갔고 또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애옥 언니는 그 방에 병적일 정도로 집착했다.


  애옥 언니는 열일곱 살이었다. 국민학교 사 학년이었던 나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중에 내가 여고생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애옥 언니의 방에 대한 그 집착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그 시기에 언니는 자기 혼자만의 공간을 열망한 것이었다.

 큰오빠네가 서울로 가겠다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언니는 그 방을 제가 쓰겠다고 나섰다. 누구도 거기에 별 말을 달지 않았다. 그리고 오빠네가 떠나던 날 언니는 그 방에 자기 소지품을 날라다 놓으면서 줄곧 콧노래를 흥얼거렸었다. 그러나 언니의 행복은 그 하루로 끝났다.

 언니는 여중 삼 학년이었다. 이튿날 언니가 학교엘 간 뒤에 그 방의 언니 물건은 죄다 안방으로 다시 돌려졌고, 대신 아버지가 방을 차지해 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자식들이 보기에 그리 곰살가워 보이지 못했다. 아버지는 집에서는 늘상 뚱해 있었다. 그렇다고 특별히 뭐가 못마땅해서 그런 건 아니고, 단지 아내와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는 법에 서툴렀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어머니도 무뚝뚝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들에게는 그래도 애틋하게 정을 주었으나 정작 남편인 아버지를 대하는 데에는 지존한 존재로서의 경외심인지, 아니면 자식들 눈이 민망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살갑지 못한 것인지 우리 눈에는 아무튼 그래 보였다.

 나는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 데리고 들어온 딸이었다. 그래도 불순한 씨라고 구박이나 토심을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식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해 주었고, 외탁을 해서 그런지 두루춘풍 아무와도 잘 어울리는 너울가지가 있던 나는 그 집에서 원래부터 살아 왔던 것처럼 어렵지 않게 어울러 들었다. 다만 별쭝맞고 표독한 애옥 언니가 매몰스러운 눈길을 쏘아 대서 그것만 견뎌 내면 되었다.


 원래는 초가집이었던 것을 그것도 유행이라고 동네서들 한집 한집 잇짚이엉을 걷어 내고 슬레이트를 얹어 나가자 그 집도 보기 좋게 슬레이트를 얹긴 얹었지만, 동퇴서비할 것 같은 누추한 집채에 얹은 회색 슬레이트는 어울리지 않는 꼬락서니였다.

 내가 그 집에 들어갔을 때는 다섯 식구가 안방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조카를 끼운 큰오빠 내외만 건넌방에서 살았고, 아버지, 어머니, 큰언니, 작은언니, 게다가 작은오빠까지 모두 한방에서 생활했던 것이다. 장방이라고는 해도 가로로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벽에 닿을 정도이고, 기럭지라야 다섯 식구가 겨우 돌아누울 정도의 답답한 방이었다. 거기에 나까지 들어가 틈새를 비집었으니, 작은오빠가 두어 달 뒤 군대 나갔으니 망정이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는 독립하길 소망했다. 즉 당신도 자기 공간을 갖고 싶어 한 것이다. 그걸로 보아 어머니와의 애정이 그리 탐탁하게 보이지 않은 것이 우리가 잘못 본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는 부엌에 잇대어 달개집을 짓기 시작했다. 생래 농사꾼이라 별 손재주가 없으면서도 아버지는 목공소를 돌아다니며 켜고 남은 죽데기를 모아다가 방을 만들어 나갔다. 허술하게나마 골격이 갖춰지고 진흙으로 사벽질을 할 때쯤에는 제법 그럴 듯한 방이 되고 있었다. 그 어름에 큰오빠네가 서울로 가게 되었다. 그러자 아버지가 냉큼 그 방을 차지한 것이다. 물론 부엌 뒷방을 완성하면 그리로 옮긴다는 생각이었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애옥 언니는 온 집안을 휘질러 놓았다. 앙칼진 소리로 왜장치고, 어머니를 욱대기며 징징대더니 그예는 아버지가 갖다 놓은 건넌방 물건들을 죄다 마루에다 내놓았다. 그리고는 제 물건을 도로 갖다 놓기 시작했다.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다.

 "이년이 뭔 지랄이야!"

 아버지가 냅다 달려들어 언니 손에 들려 있던 박스를 잡아채 땅바닥에 팽개쳤다. 박스가 열리면서 화장품 병들이 흩어졌다. 언니 눈에 불이 일었다. 흩어져 있는 화장품 병 중의 하나를 집더니 그대로 징두리를 겨누어 집어던졌다. 병이 깨져 튀며 화한 화장품 냄새가 풍겼다. 분이 뻗쳐오른 언니는 이번엔 마루에 내놓았던 아버지 물건 중에서 담뱃대를 집어들어 마당에다 홱 패대기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가장 아끼는 것이었다. 설대가 보기 좋게 동강나면서 대통이 튀어 아버지 발부리 앞에 떨어졌다.

 철썩! 아버지 두툼한 손이 언니의 뺨에 묵지근하게 떨어졌다. 금새 아늠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곧이어 코피가 흘러 나왔다. 그래도 언니는 되알지게 버티고 서서 아버지를 흘기고 있는 것을 어머니가 공중 내달아 안방으로 끌고 들어가 버려 사단은 거기서 끝이 났다.


  건넌방을 차지한 아버지는 자리틀을 들여놓고 기직을 짰다. 밤이 이슥할 때까지 달그락달그락 고드랫돌 부딪는 소리가 안방으로 넘어왔다. 애옥 언니는 잠도 못 자게 시끄럽게 군다고, 당장 저놈의 걸 내다 버렸으면 좋겠다고 암상궂게 포달을 부렸다.

 그래도 부엌 뒷방이 다 되면 아버지가 그리로 옮겨갈 것이므로 자기 딴엔 진득이 성질을 죽이고 있었다. 

 그랬는데 부엌 뒷방이 다 되어 가는 판국에 건넌방을 세놓는다는 말을 들었다. 애옥 언니는 눈을 허옇게 뜨고 펄펄 뛰었다. 어머니에게 대들어 악장을 쳐 대고 제분을 못 이겨 눈물까지 쏟아 내면서 짐승처럼 엉엉댔다.

 며칠을 언니는 애원도 하고, 욱대기기도 하며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어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언니는 그 사글세는 자기가 공장에 취직해서 줄 테니 제발 세는 놓지 말아 달라는 타협까지 하게 되었다.

 집의 셈평이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는지라 언니는 중학교를 졸업하는 대로 바로 공장에 들어갈 작심을 진작부터 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도 어머니의 마음이 요지부동인 것을 안 언니는 입을 사려물고 중얼거렸다.

 "누구든지 들어오기만 해 봐라, 내가 그날로 쫓아 버릴 테니."

 언니는 겨울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봉제공장에 취직했다.


  그리고 애기 엄마네가 그 방을 차고 들어앉은 것이었다. 나는 내심 언니의 반응이 궁금해서 흥분한 가슴으로 언니를 기다렸다. 언니가 퇴근해서 돌아왔다. 그렇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언니는 심상했다. 건넌방 툇마루 밑에 낯선 신발들이 있는 걸 힐끗 일별하고는 그만이었다. 나는 무언가 허전하고 한편으로는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그만 맥이 빠져 나는 완전히 그것을 마음속에서 없애 버렸다.


 

   며칠이 지났다. 밤에 오줌이 마려워 밖으로 나왔다. 건넌방은 아직 불이 켜져 있어 불빛이 마당에 희미하게 깔렸다. 온몸에 한기를 느끼며 대문 옆 아름드리 밤나무 밑에 아랫도리를 까고 앉으려는데 문득 인기척이 들렸다. 머리가 쭈뼛해지도록 수꿀했다. 그만 요의도 잊고 얼른 마당을 가로질러 뛰는데 건넌방 옆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희끄무레한 게 얼핏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만 엄마야, 하고 방으로 뛰어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뛰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때 부엌 뒷방의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건넌방의 그 여자는 - 계집아이 이름이 정아였다 - 하는 짓이 정말 잔미웠다. 장독대로 돌아가서는 마치 제 것인 양 눈치도 보지 않고 느긋하게 장을 퍼 가는가 하면 그러다가 우리 식구 중의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새살스럽게 웃으면서 "아이구! 이 집 장이 맛이 있어서 우리 정아가 을마나 잘 먹는지, 호호호" 오히려 이쪽이 무안할 정도로 능갈맞았다. 처음에 꾸어 간 연탄은 갚을 생각도 않고 오히려 우리 연탄을 슬그머니 한두 장씩 들고 가기도 했다. 또한 어찌나 야지랑스러운지 우리 방에 페바손연고가 있는 것을 언제 보아 놓고는, 정아가 엎어져 손바닥을 깠다면서 새살거리는 말이 "우리도 약이 있기는 있는데 페바손연고가 잘 듣더라구요. 혹시 페바손연고 좀 있나요?" 하고 연고를 가져가기도 했다.


 한데 이런 것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이어서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애옥 언니에 의하면 그 무렴하고 음충한 짓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그간 생각이 떠난 줄로 알았던 애옥 언니는 사실은 뱀눈을 뜨고 절치부심 그 여자의 비리를 낱낱이 감시하는 데 온 신경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고자질을 해댔다. 어머니는 정아 엄마의 그같은 행실에 동감은 했지만 더 두고 보자는 말로 얼버무렸다. 사실 어머니의 성격으로서는 그 여자에게 나가라는 말은 쉽게 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진동항아리의 돈이 없어진 일이 생겼다. 그때만 해도 옛 풍습이 곳곳에 남아 있던 때라 집안의 안녕을 위한 기원으로 작은 단지에 돈이나 쌀을 넣어 신주처럼 모셔 두는 집이 더러 있었다. 어머니도 뒤꼍 터앝 한 귀퉁이에 동방구리 하나를 묻어 놓고 어디서 푼돈이라도 생기면 거기에다 넣어 두곤 했다.

 그런데 그 동방구리에 누군가가 손을 댄 것이다. 아버지의 생일이 가까워 고깃근이라도 사려고 열었다가 알게 되었다. 어머니는 가슴을 치며 분통해 했다. 정아 엄마 짓이라는 건 불을 보듯 했다.


 그제서 어머니는 당장 내보내려고 독하게 도슬러 먹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정아 엄마는 집안에 없었다. 어머니는 분한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그 여자는 저녁이 다 돼서야 돌아왔다. 그러나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방을 비우라는 말을 하려고 어머니가 에둘러서 이야기를 하려는데 정아 엄마가 먼저 발등걸이로 앞질러 말했다.

 "아주머니! 이 집 딸 말예요. 애옥이라 그러든가? 글쎄 저기 뒷밭에다 파묻은 항아리에서 돈을 꺼내드라구요. 벌써 한 열흘 됐을걸요."

  정아 엄마를 다미씌워 쫓아 내보내려던 애옥 언니의 음모는 그렇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언니는 집요했다. 방을 갖기 위한 욕망은 점점 더 사람을 추저분하게 만들고 있었다.


 겨울이 끝나 가고 있었다. 부엌 뒷방에서는 노상 아버지의 기직 짜는 고드랫돌소리가 들렸다. 왕골을 구하기가 어렵게 되자 아버지는 잇짚으로 투박한 기직을 짰다. 왕골만은 값이 못해도 아버지가 짠 짚기직은 여기저기 휘뚜루 쓰일 만한 것이어서 만드는 족족 돈이 되어 애오라지 그래도 구차한 살림살이에는 보탬이 되었다.

 아버지는 밥 먹을 때 외는 안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방에선 고드랫돌소리가 끊이지 않았는데, 그 소리가 안 들릴 때는 동네 노인들이 마실 왔을 때였다. 당신이 안방에서 처자들과 한데 복닥거릴 때는 아버지 친구들이 마실 올 수가 없어서 아버지는 석반 후면 늘 밤마실을 다니곤 했는데, 이젠 마음 놓고 객꾼이 와서 노닥거리다 가는 것이 일상사였다.

 마실꾼이 둘러 모였을 때 나는 건넌방의 정아 엄마가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는 걸 곧잘 볼 수 있었다. 그럴 때 그 여자는 금방 부쳐 김이 모락거리는 적 접시를 소주병과 함께 쟁반에다 받쳐 들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는 싫었지만 먹는 것에는 츱츱해서 군침을 삼키며 마루에서 보곤 했는데 한번은 그런 나를 본 아버지가 불렀다.

 "월순아! 이리 들어온."

 그래서 그 방엘 들어가 아버지가 주는 대로 염치없이 지범지범 걸터먹었다.

 그 방에서 아버지는 좌상이었다. 내 보기에는 아버지가 가장 나이가 애젊어 보이는 데도 상석인 아랫목에 거늑하게 등을 비기고 앉아서는 점잖게 고달을 떨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 옆에는 정아 엄마가 안주인인 양 새살거리며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아버지 역시 첩에게 하듯 무람없이 그 여자의 시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흔연한 얼굴을 하고 여보란듯이 좌중을 휘휘거리는 것이었다.

 어린 눈에도 그런 분위기가 몹시 마뜩치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치신없이 접시 바닥을 본 후에야 그 방을 나왔다. 그런 정아 엄마를 시식잖게 흘겨보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었다.

 부엌 뒷방에 마실꾼이 올 때마다 어머니는 구두덜거렸다.

 "저놈의 예펜네 또 신났겠구먼."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요의를 느껴 밖으로 나왔다. 낮에 내린 잣눈으로 바깥이 훤했다. 버릇처럼 문간 옆 밤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는데 맞바라기로 아버지의 방이 보였다. 불은 켜져 있고, 고드랫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목소리가 낮게 띄엄띄엄 들렸다. 늘 그 방에서 나는 고드랫돌소리가 인이 박힌 까닭에 그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귀설었지만, 그보다도 생전 어머니가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도 못했고 전혀 상상 밖의 일이어서 나는 정신이 어리뜩했다.

 강한 호기심으로 사푼사푼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눈 밟는 소리가 너무 커서 가슴이 옥죄었다.

 "내보냅시다."

 어머니의 낮은 음성. 그러나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괜찮아. 근데 그게 무슨 남우세유? 그것두 또 괜찮아. 애들 보기 챙피하지 않우?"

 그래도 아버지의 대답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한기가 파고들어 어깨가 으등그러졌다. 

 한동안 침묵이 있은 후 아버지의 음성이 나왔다.

 "글쎄, 내보내고 말고는 자네가 알아서 하는데……. 근데 난 당최 무신 얘긴지 원. 거 무신 쓰잘데기 없는 얘기를 듣구 와 가지고선 이 밤중에 말이야."

 그러면서 성이 났는지 방바닥을 탁 치는 소리가 났다. 사이를 두고 잔뜩 골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애옥이 이놈의 지지배가 갈수록 염병지랄이네. 아 그년이 애비허구 무신 웬수졌다구 뜨듯한 밥 처먹고 그따우 주뎅이질이야! 아가리를 찢어놀라. 참 내! 또 그걸 듣구 쪼르르 달려온 사람도 그렇구. 에미나 애년이나, 에이!"

 "그렇게 역정만 내지 말아. 걔가 없는 말 지어냈을라구. 걔 말이 아니드라두 그 예펜네 행실 땜에 안되겠수. 동네서들 얼마나 쑤근대는데."

 "글쎄, 쑤근대라 그래. 나는 그런 적두 없구 그럴 생각두 없는 사람이니깐. 정 찜찜하믄 내보내야지 뭐, 내보내라구."

 내가 방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애옥 언니의 이불이 슬쩍 움직이는 걸 보았다. 아마 부엌 뒷방의 일이 궁금해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내가 문을 열자 급히 자는 체 하는 것이 분명했다.

 자리에 누워서 나는 언젠가 밤에 오줌이 마려워 나갔다가 건넌방 옆 어둠 속에서 느껴지던 인기척과 뒤란 쪽으로 사라지던 희끄무레한 것, 그리고 잠시 뒤에 부엌 뒷방의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던 것을 생각해 냈다.

 어머니가 들어와 누운 뒤 고드랫돌소리가 들려 왔다. 어머니와 애옥 언니와 나는 밤이 깊도록 헛잠으로 뒤척였다.

 주도면밀하게도 애옥 언니는 그간 아버지의 동태까지도 치밀하게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애옥 언니의 말대로 아버지와 정아 엄마가 불순했다는 건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처음 정아네가 들어오고 나서 아버지가 그 방을 기웃댄 건 사실이었다.


  그 무렵을 전후해서 언니의 나에 대한 태도가 급변했다. 전에는 나를 보는 눈빛이 차가웠다. 어쩌다 그 찬 기운이 잠시 사라질 때가 있긴 해도 역시 서름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불안할 정도로 언니는 사근사근하게 다가왔다.

 처음엔 내 쪽에서 서름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때 나는 다른 계집아이들이 대부분 신고 있었던 공주 그림이 그려져 있는 빨간 운동화가 몹시 갖고 싶었다. 그런데 언니가 그것을 사 주었다. 대번에 나는 언니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내가 애옥 언니의 똘마니로서 처음 한 일은 정아 엄마와 친해지는 것이었다. 그거라면 자신 있었다. 나는 누구하고도 쉽게 친해지는 새퉁이 아이였다. 그 여자 정아 엄마가 미운 것은 여전했으나 애옥 언니의 따뜻한 눈빛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언니가 내게 한 것과 똑같이 정아 엄마에게 다가갔다.

 나는 쉽게 정아 엄마의 귀여움을 받았다. 하루의 반 이상은 건넌방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마지막 문 하나는 굳게 닫아 놓고 행여 열리지 않게 하느라고 내 나름으로는 다잡고 있었다.


 "월순아!"

 날이 며칠이나 지나갔을까. 애옥 언니가 한껏 다정하게 나를 불렀다. 공장에 나가는 길이었다.

 언니를 따라 병문까지 나갔다. 골목 어귀에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거기서 호빵을 사서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언니가 물었다.

 "너 정아 엄마 밉지?"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언니의 의도가 파악이 안되었던 것이다.

 "괜찮아, 말해봐."

 그 불편한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에라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입가에 미소가 올랐다.

 그날 나는 어머니의 금반지를 훔쳐 냈다. 그것은 장롱 맨 밑 서랍 속에 올이 풀려 너설한 누런 광목 쪼가리에 싸여 있었다. 나는 그게 어떤 반지인지는 몰랐다. 어머니가 제일 아끼는 거라는 건 눈치로 알았다. 그걸 들고 나는 건넌방으로 갔다. 어이딸이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겨울 외풍이 센 방이라 큰오빠네도 방에서는 주로 이불 속에 들어가 있곤 했었다. 여느 때 같으면 스스럼없이 이불 속으로 두 발을 디밀고 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쭈뼛하게 서서 주머니의 반지만 만지작거렸다. 정아 엄마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나서야 나는 입술을 종깃거렸다.

 "저…… 아줌마, 이거."

 주머니에서 금반지를 꺼내 내밀었다. 정아 엄마는 여전히 누운 채로 심상했다.

 "우리 아부지가요, 이거 아줌마 주라구……"

 나는 능청스럽게 거짓 연기를 해 나갔다. 비로소 정아 엄마가 일어나 앉았다.

 "그게 뭐니?"

 그 여자로선 정말 황당하고 생뚱한 일이었다.

 "아부지가 주라고 그랬어요."

 아버지가 열흘 전에 한 달 기약으로 산판 일 떠났다는 건 그 여자도 알고 있었다. 던지듯이 반지를 주고 나오자 찬 공기에 등허리의 진땀이 식어 오싹 추웠다.


 

  "당장 나가!"

 어머니 역시 여자였다. 애옥 언니가 금반지 얘기를 초들자 어머니는 부리나케 장롱 서랍을 열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는 무서웠다. 내가 엄청난 짓을 한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건넌방으로 갔다. 그리고 뒤이어 벼락같은 노성이 터졌다.

 "반지 내놔!"

 마치 짐승 울부짖는 듯한 기괴한 소리였다. 음전한 어머니한테서 나올 소리가 아니었다.

 "당장 나가, 이년아!"

 그리고는 퍽,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잠잠해졌다. 나는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비죽비죽 눈물이 나왔다. 소란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음날 정아 아빠가 왔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기색이 들어 종일을 기신 못하고 누워 있었다. 건넌방의 그 여자도 누워 있었다. 분이 충천한 어머니가 눈에 보이는 대로 구석배기의 소반을 들어 여자의 정수리를 겨냥하고 내리친 것이 빗나가 오른쪽 어깨를 맞는 바람에 그대로 픽 쓰러졌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정아 아빠가 왔다. 이사 올 때도 없었던 그가 처음으로 귀가를 한 것이었다. 그간 구구한 억측들이 있었다. 그 여자가 과부라는 말부터 사내가 딴살림을 차리고 있다는 얘기, 또는 감방에 들어가 있다는 둥. 그가 옴으로써 그런 갖가지 억측들은 말끔히 불식됐다.


 한바탕 폭풍이 일었던 집안은 다시 평온해졌다. 부엌 뒷방에서는 고드랫돌소리가 전보다 더 요란했고, 어머니도 깨성하였다. 다만 애옥 언니만이 눈의 독기를 풀지 않고 있었다.

 사실 애옥 언니는 정아 아빠가 돌아온 것을 내심 반기고 있었다. 이러루해서 내가 지금 끙끙대고 누워 있는 중이라고 정아 엄마가 제 서방에게 고해 바쳐 사내가 애성이가 나기를 바랐다. 그러면 사내가 눈에 쌍심지를 돋구고 안집으로 달려와 악다구니로 난리법석을 치고 나서 가솔을 끌고 나가거나, 아니면 제 처의 화냥기를 의심해 도지게 족대긴 끝에 또한 가솔을 끌고 방을 비우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아 엄마가 시시콜콜히 제게 불리한 일을 발설할 까닭이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아 아빠는 아무 하는 일 없이 달장근을 있었다. 그의 직업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미나리밭 언저리에 버들개지가 핀 지도 한참 지나 그는 집을 떠났다. 그 즈음 이미 나는 또 다른 지령을 애옥 언니에게서 받았고, 그것을 행동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터가 셌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그 집을 사고 들어왔을 때 이웃사람들이 쑤군대기를 그 집에서는 삼년에 한번씩 초상을 치른다는 거였다. 그래서 전주인(前主人)도 헐값에 넘기고 도망갔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듬해 나보다 세살 위였다는 막내아들이 구토 설사 끝에 죽었다. 전주인의 부친이 돌아가신지 꼭 삼년 째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한번, 우리 먼 친척 중의 한 사람이 여차한 사정으로 식구들을 데리고 우리 뒤란에서 천막을 치고 한 스무날 산 적이 있었다. 그때가 음력 동짓달이었는데 그 아내가 무슨 병으로 앓고 있다가 촉상이 들어 그만 세상을 떠났다. 그것 역시 막내 오빠가 죽은지 삼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가족은 도저히 그 집을 떠날 형편이 안되어 미루적거리다가 다시 삼년이 지나갔는데 어쩐 일인지 그 해를 무사히 넘기고 나서는 여태껏 흉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정아 엄마에게 그것을 이야기했다. 재작년에도 우리 집에 놀러 왔던 동네 아이가 변소에 빠져 죽었다는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꾸며 천연덕스럽게 조잘거렸고 올해가 그 삼년 째 되는 해라 무서워 죽겠다고 능청스럽게 언구럭을 부렸다. 물론 애옥 언니가 각색하여 준 이야기였다.

 내 이야기가 정아 엄마에게 먹혔는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다만 고기 한 점에 목숨까지도 저당 잡혀 충성하는 개처럼 나 역시 애옥 언니를 위해 내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에 영산이 올라 날뛰는 한 마리의 어리석은 주구에 다름 아니었다.

 또다른 지시를 받았다.

 어디서 났는지 언니는 내게 피마자를 주었다. 나는 정아를 구슬려 그것을 먹였다. 그 맛이 어찌나 고소한지 정아는 한 움큼이나 되는 것을 야금야금 다 먹었다. 아침나절에 아이가 얼굴이 노래지면서 식은땀을 흘리더니 배가 아프다고 찢어지게 울었다. 그리고는 설사를 하고 입으로는 연신 구토를 하며 게거품을 물었다. 정아 엄마는 사색이 되어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뛰었고, 다 늦은 저녁에 축 늘어진 아이를 업고 돌아왔다.

 목숨은 건졌으나 아이는 여러 날을 신열이 내리지 않은 채 비영비영했다. 먹지도 못하면서 물찌똥을 내갈기며 시난고난하는 것을 아버지가 어디서 양귀비씨를 얻어 와서는 가루를 내어 물에 타 아이의 입에 흘려 넣어 주었다. 그 효험인지 숨이 암암하던 아이가 불그레하기 핏기가 돌아왔다.

 나는 내가 저지른 일이 겁도 나고 가책도 느꼈으나, 나보다도 더 몸서리친 것은 어머니였다. 잊고 있었던 텃귀신의 악몽이 다시 살아났으니 어머니는 살매 들린 사람처럼 안색이 굳어졌다.

 기운이 없어 고개도 제대로 쳐들지 못하는 아이를 업고 정아 엄마는 집을 보러 다녔다. 그녀는 귀신의 장난이 틀림없다고 믿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다. 이 집에선 더 못살겠으니 어디 허름한 집이라도 하나 알아보자고 어머니가 그랬고, 아버지는 미친 소리 말라고 버럭 뼛성 오른 고함을 내질렀다. 그래도 어머니는 몰래 집을 보러 다니는 눈치였다.


 

  봄이 무르익었다. 정아네가 이사를 가는 날, 언니는 친구들과 등산을 간다고 아침 일찍 나가고 없었다. 정아는 제법 생기를 찾아 이사 간다는 설렘에 아침부터 재재거리며 돌아다녔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갈 때도 정아네는 어이딸만이 리어카를 끌고 대문을 나섰다. 부엌 뒷방에서는 고드랫돌소리가 들려 왔다.


  그 사나흘이 지난 후, 수업시간에 정옥 언니가 학교로 찾아왔다. 뜻밖이었다. 그 시간에 버스에서 오라이, 수더업! 목이 터지게 외쳐대고 있어야 할 큰언니가 학교엘 찾아오다니.

 "월순아"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으면서 정옥 언니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불렀다. 목덜미에 따가운 봄 햇볕이 내리쬐었다. 늘어지는 봄날 오후였다.

 "암말 말고 나 따라 가자. 내가 데려다 주께."

 암말 없이 나는 정옥 언니를 따라 전에 살던 외삼촌댁으로 다시 돌아갔다.

 몇 년 동안 나는 무슨 맹문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아 암말 않고 학교에만 다녔다.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이던 어느 때 외삼촌이 문득 생각난 것처럼 그 일을 말했다.

 정아네가 간 날 저녁, 애옥 언니는 한껏 신이 나서 건넌방을 들락거렸다. 다음 날은 공장에 결근하면서까지 그 방을 공들여 치장했다.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가슴 벅찬 첫 밤을 잤다, 그 방에서.

 이튿날 아버지가 청천벽력같은 말을 했다. 우리도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그동안 아버지는 식구들 몰래 집을 보러 다녔고, 실제로 정아네보다 우리 이사계획이 먼저 잡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속내는 여직까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애옥 언니가 눈에 파랗게 독기를 세웠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했다. 언니는 애소도 했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모질게 대들어 악지를 부렸다. 모일(某日)에 이사를 갈 것이라는 건 돌이킬 수 없었다.

 정옥 언니가 학교로 날 찾아왔던 날, 우리 집에 불이 났다. 버스안내양인 정옥 언니가 유부남 운전수와 배를 맞추고 달아났다는 소식과 부모님이 어느 탄광 가까운 곳으로 갔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그 후의 우리집 일은 삼촌도 모른다 하였다. 더구나 애옥 언니의 소식은 이적지 실낱같은 풍설 하나 얻어 듣지 못했다.

 

 

      *            *           *


  "우린 이 집에서 오래 살자구요. 그러니까 당신은 이 집에다 불을 지르거나 그러지 말아요."

 밑도 끝도 없는 나의 말에 남편은 멍하니 눈만 슴벅거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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