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의 방

깊어 가는 가을 (下)

설리숲 2015. 10. 14. 10:37

 

 따그르르르 가까운 곳에서 딱따구리가 오묘한 소리를 냈다. 정혜 스님의 목탁소리와도 같았다. 한번도 정혜 스님의 독경소리는 듣지 못했으나 목탁을 치는 소리는 두어 번 들었다. 뚜드락 뚜드락 딱 자냥하게 그 소리는 금강문을 넘고 일주문을 지나 안개 자욱한 숲으로 사라졌다. 목탁은 불변()이요, 목탁채는 움직임()이다. 또한 해와 달이요, 밝음과 어두움이다. 이 체와 용을 일체화시키는 목탁은 속이 비었다. 여기서 나오는 소리는 공(空音)이다. 삿됨과 허망함이 없는 진실로 공한 소리가 울려 나올 때 중생은 업장을 녹이고 미혹을 깨우쳐 청량과 해탈의 길에 이른다.

 숲속이 설렁해졌다. 딱따구리는 연신 따그르르 장천 높이 공한 소리를 울렸다. 가만히 그것에 정심(正心)하며 영묵은 눈을 감았다.

 

 ‘옛날부터 지어 나온 모든 악업은 시작 없는 탐진치(貪瞋癡)로 비롯되어 삼과(三過)를 지었으니 나는 이제 이 모든 것을 참회하련다.’

 

 바람이 삽삽했다. 눈을 감은 채 딱따구리소리를 듣고 있는 영묵의 뺨에 여자의 머리칼이 스치더니 어깻죽지에 사부자기 머리를 기대 왔다. 그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향수냄새가 났다. , 원희야. 나무대륜보살.

 

 거기서부터는 덤부렁듬쑥한 흙길이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한없이 반복되었다. 숲은 깊어 여우볕 한 줄기 들어오지 못하게 으늑했다. 접첨접첨 주름진 산등을 몇이나 넘었을까. 그 새에도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쳐 지나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험로. 지벅거리는 다리를 끌고 어느 재빼기에 이르자 바로 앞에 오세암이 나타났다.

 눈이라도 내리면 세상과의 길이 단절된다는 곳. 이토록 깊은 산중에도 인총은 많아 암자 뜨락과 뜰층계 곳곳에 청신녀들로 왁시글댔다. 석간수 한 바가지를 들이켜고 관음탱화를 들여다보려다가 기단과 뜰층계 위의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가기 민주스러워 그만뒀다. 대신 뜰층계 밑에 서서 삼배를 하고 돌아섰다. 옛날 폭설이 내려 혼자 암자에 갇힌 아이에게 그림에서 나와 젖을 먹여 봄을 맞게 해 주었다는 인자하신 관음보살님. 그 아이가 장님인 제 누이를 눈뜨게 하고 죽었다나 어쨌다나. 돌아 나오면서 영묵은 맘속으로 간절히 뇌었다. 나무관세음보살 아름다운 저 여인에게도 자비를 주소서. 나무아미타불.

 

 “단 한 달만 이런 곳에서 살아봤으면……

 오세암에서 한 마장 내려온 곳에 쏠이 흐르고 있었다. 그 언저리에 수득수득 드러난 굴참나무 뿌리에 걸터앉아 삼나무 메숲진 맞바래기를 보면서 정용순이 초연하게 말했다. 바람꽃인지 뽀얀 기운이 서린 것이 더없이 신비롭고 원초적이었다. 색바람에 흩날리는 그녀의 남삼한 머리카락은 더 야성의 싱싱함을 뿜어내고 있는 듯했다. 그걸 스스로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여전히 먼산바라기를 한 채 푸른기가 도는 입술을 종깃거렸다.

 “우리한테 이렇게 극단적인 두 세계가 있다는 게 새삼스러워요. 보통 문명과 비문명으로 구분하는데요, 꼭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엄정하게 생각하면 소위 문명이라는 게 인간사에 있어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과학을 앞세워 지식과 이성을 맹신하고, 목적지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앞으로 앞으로…… 불나방처럼 달려들다 보니 본래 인간의 틀에서 벗나가 해괴한 꼴이 돼 버린 셈이에요. 그네들이 누리는 문화라는 것도 한번 쓰고는 그냥 버려지고 마는 일회용이구요.”

 벌쭉이 웃으며 그녀가 뒷동을 달았다.

 “이건 여기까지 오면서 내내 생각해 낸 거예요, 흥흥

 웅숭깊은 계곡엔 인적도 끊긴 듯 곡수소리만 연연히 들렸다.

 “어제 그 산장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아주 잠깐 황홀한 순간이 있었어요. 참 죽기 좋은 곳이구나, 이런 멋진 데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면, 하구요.”

 “……

 “, 대승령으로 가신댔죠? 저두 따라가면 안될까요?”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이 있는 건가. 혹시 나한테? 느릅나무 숲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기대온 것이 못내 무지근하니 개운치 못하던 터였다. 어떤 말로 거절할까 하고 있는데 네 속을 다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이 그녀가 웃었다.

 “혹시 그 쪽으로 가면 자살하기 더 좋은 데가 있나 하구요, 낄낄낄.”

 그녀가 마구발방 웃어댔다. 그것에 놀랐는지 가까운 덤불에서 깃이 빨간 새가 포르릉 날아올랐다. 양진인가. 양진이가 벌써 왔나. 하긴 설악은 겨울이 빨리 오니까 새들도 그렇긴 하겠다고 영묵은 생각했다. 또다시 배낭을 짊어졌다. 소녀풍이 솔솔 부는 게 어째 날씨가 불안해 보였다. 어제저녁 구름이 북쪽으로 몰려가더니 비가 오려나.

 

 정용순이 강동면의 그 마을에 들어갔을 때 마을 사람들은 과수원에서 사과나무를 가지치기 하고 있었다. 봄이라곤 하지만 바람이 매섭게 찼다. 도망 나온 여자를 깝살리지 않고 다습게 맞아 주었다. 거기서 다스한 봄을 맞았다. 단양에 살았던 어릴 적 이후 그렇게 마음이 거늑하고 여유로운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특히 은재라는 그 듬쑥한 남자는 오며가며 들여다봐 주며 혹시 모를 불편이라도 없질 않나 안부를 묻곤 했다.

 그와 반쪽짜리나마 인연이 된 것은 물론 용순 자신의 그를 향한 마음이 컸지만, 순전히 이웃들의 용춤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 남자가 어찌나 준이 연이에게 오사바사하게 구는지 아이들은 눈만 뜨면 그이에게로 달려가 목에 매달려 성가시게 하거나, 종일 그가 일하는 사과밭에서 살다시피 하며 매초롬해진 것이 제 아비를 대할 때와 팔결 달랐다. 아이들이 귀찮게 지분거려도 그는 또바기 만수받이를 해주어 어미 눈으로 보면 버릇이 나빠질까 우려될 정도였다.

 

 홀앗이가 보기 안돼 가끔은 지레김치라도 담가 주려고 그의 집에서 굼닐다가 아예 밥까지 해 안쳐 주기도 하고, 사실은 사과밭에 가 노는 아이들에게 먹일 간식을 싸 들고 가서는 그와 함께 앉아서 먹는 꼴이 영락없는 부부요 애들 아버지였다.

 그러루하여 이웃 사람들이 뭇따래기마냥 갈마들어 용춤을 추여대니 그럴 때 사람들 마음은 여자가 남편 있는 처지라는 것도 생각 못하고 오로지 노총각 은재만을 염두에 둔 처사였다. 더구나 아이가 둘이나 달린 여자라. 마을 사람들이나 은재나 도틀어 잠시 잠깐 명현증(暝眩症)에 걸린 게 아닌가 싶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용순 자신은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단지 이것이 내 운명이고 인연이려니 합리화하여 자위할 뿐이었다. 그래도 서울의 남편은 늘 가슴에 크게 자리했다. 그리움이나 죄책감 따위는 물론 아니었다. 이제 남편과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서 아직 월남장수와 법적으로 묶여 있고, 남편의 태도로 보아 간대로 해결될 성 싶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이 은재에게 몹시 미안했다. 또 금지옥엽같은 준이 연이가 뜻하지 않은 덤받이 신세로 남의 입방아에 양념으로 오르내리는 게 무엇보다도 안타까웠다.

 어쨌든 그와 몸을 섞고 떳떳치 못하나마 부부가 되었다. 새 남편은 애오라지 두 덤받이를 친애하려고 하였다. 그것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이따금 서울에 전화를 넣어 월남장수를 중정떠 보았다. 남편은 이미 그녀에게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혼은 요원해 보였다.

 

 같은 마을에 부인은 딴 데 두고 어린 딸아이와 함께 일년 전에 들어와 사는 조 씨 성을 가진 남자가 있었다. 남편 은재와 연배라 너나들이하며 지내는 처지였다. 어느 때부턴지 모르게 그 조가 눈에 암암했다. 그녀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는 애초 그녀에게 무신경했다. 그런고로 이쪽에서 더욱 그가 구뻤다.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아차 기겁하고 놀라 근신하려 했으나 감빨리는 심정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중에 서울을 다녀왔다. 무지근하게 마냥 질질 끌 수만은 없어 남편을 만나 확실히 매기단할 요량으로 두 아이들을 데리고였다. 남편은 오랜만에 본 아이들조차 반겨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평상심을 잃지 않으려고 부러 냉정하게 이러저러하니 더 이상은 못 기다리겠다, 분명하게 답을 달라 하며 되알지게 삐대었다. 물론 지금 있는 곳과 처신은 일절 비추지 않았고 아이들에게도 단단히 당조짐해 놓은 상태였다. 옹골차게 벋서는 태도가 먹혔는지 월남장수는 약간 무르춤해지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는 내락으로 끝막음을 했다.

 그리고 이틀 뒤에는 이혼을 할 터이니 일단은 가 있어라, 준이는 내가 데리고 있을 테니 연이만 데리고 가라, 한 달 후에 다시 와라, 그 때 깨끗이 마무리 짓자 하는 답을 드디어 얻어냈다.

 연이 하나만 데리고 내려왔다. 안강읍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조를 만났다. 그의 차를 얻어 타고 마을로 들어오는데 철은 봄의 한가운데라 밭두둑 길가 여기저기 툭툭 복사꽃이 터지고 있었다.

 난숙한 춘정 때문인지 아니면 서울에서의 일이 깨끗하게 끝난 거늑함 때문인지. 아니면 평시 마음에 들어오던 조 때문인지, 아마 그 세 가지가 다 얽혔을 것이다. 그녀는 문득 아지랑이 머슬거리는 들판을 걷고 싶었다. 차를 내려 아직 갈지 않은 밭을 걸었다. 풀들이 모도록 돋아 난달은 새파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했다

 연이의 손을 잡고 한 옆엔 조가 갈서서 걸었다. 누가 보면 이 또한 영락없는 부부요 그 딸이었다. 용순은 조가 바싹 붙어 걷고 있어 몹시 달치고 흐뭇했다. 그렇다고 그를 어떻게 해볼 염은 없었다. 그저 그가 가까운 이웃에 있다는 것이 함실함실 거나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탕한 여자라는 걸 전혀 돌아보지 못했다.

 

 한달 후 그녀는 이혼했다. 우여곡절 끝에 준이는 전남편이 맡고 연이는 용순이 데리고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그들 일가는 마을을 떠나야만 했다. 그녀의 평시 행실이 이웃들의 눈에 났었다. 어렴풋이 남편 은재도 그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냥 그대로 아내를 믿고 눈감으려 했지만 삼이웃의 눈총은 견딜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옴살인 조가 먼저 마을을 뜬 것이 몹시 짠했다. 은재가 그곳을 떠나자고 했다. 그리고는 어디 살 곳을 알아본다며 혼자 외출을 했다. 남편이 없는 사이 그녀에게 쏟아지는 이웃들의 토심은 대단했다. 심지어 어떤 아주머니는 저 낯을 보면 색기가 자르르 흐른다고, 은재가 불쌍타고, 그래도 사내가 내대지 않고 감싸안을라카니 우리라고 별수 있겠냐고 대놓고 용순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나마 다정한 말마디 해 주는 건 경숙 씨였다.

 “내 보기에 준이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애. 그런데 사람의 끼라는 건 누구도 제어 못한다고 봐 나는. 어차피 준이 엄마가 처음 들어올 때 여기서는 오래 살 여자가 아닌 줄을 짐작은 했어. 그렇다고 이제 갓 결합한 사람들에게 헤어지라고는 못하니 어쩌겠어. 두 사람 사랑하니까 어디 가든 잘 살 거야. 되도록이면 외진 곳에 가서 오롯이 살았으면 좋겠는데.”

 은재와 함께 가솔이 찾아간 곳은 그야말로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까 싶은 도린곁이었다. 풍기읍에서 깊숙이 들어가 금계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거기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 비탈진 곳에 옴팡 풀막 하나가 자리 잡았는데 워낙 푸서리라 언뜻 눈에 띄지도 않았다. 비로봉이 이맛전에 보이는 소백산 자락이었다.

 거기서 남편 은재는 한 마장 더 올라가 달밭골이라는 곳에 묵정밭을 빌어 철늦은 농사를 시작했다. 용순은 비로암 밑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작은 매점을 차렸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코스를 통해 소백산을 오르는 등산객은 그리 많지 않아 그녀의 매점을 들려간 사람들은 거의가 안정이 있거나 아주 친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은 외진 산길에서 혼자 매점을 지키고 있는 곱상한 여자를 묘한 호기심을 갖고 보기도 하고 아예 도시 선술집의 주인 아낙네에게 하듯 음담 짙은 농지거리도 마다하지 않는 축도 있었다. 처음엔 불쾌하기도 하여 그저 사무적으로 대해 그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도린곁의 고적은 그녀를 따분하게 했다. 그렇게 되자 자연히 손님들의 농도 가붓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아주 가까워진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쪽에서 는실난실 굴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욱 몸달게 하기도 했다.

 

 그러한 터수에 남편과의 불화가 생겨나더니 틈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졌다. 남편은 육장 술을 입에 댔다. 남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음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멀리하고 시골에 묻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 안강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많은 소중한 것을 얻었고 또 가꾸며 살았다. 뜻하지 않게 가지기를 만나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새 인생을 꾸미려 하였다. 그런 남편이었으니 그녀는 자신의 죄 많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와중에 오래 자신에게 공을 들이며 지싯거리던 한 사내와 정을 나눴다.

 어쩔 수 없었다. 젊은 날 월남장수가 베갯머리에서 하던 말이 쟁명하게 떠올랐다.

 

 “나가 자넬 첨 봤을 적에 콱 끌어당기더먼. 열한 살 밖에 안된 고 어린 것이 참 성숙하게 뵈고 남자를 끌어댕기드란 말이시. 그때버텀 자넬 내 각시로다가 찍어부렀제. 자넨 시방도 그런 여자여. 눈에 늘 물이 척척하니 사내들 옴싹 못하게 헌단 말시.”

 

 또 끼 있는 여자라던 경숙 씨도 생각났다.

 

 “어디를 가더라도 눈 막고 귀 막고 살어, 연이를 생각해서. 그저 죽은 듯이 엎어져 살라구.”

 떠나오던 날 아직 어둠도 가시지 않은 골목에 지켜 섰다가 용순의 손을 붙들고 속살거리듯 말했었다.

 

  결국 파국이 왔다. 어느 날 편지 한 장을 놓고 은재가 마을을 떠났다. 내가 당신을 사랑했고 또 일생을 통해 그 짧은 나날이 그 중 행복했었다. 당신을 탓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럴 자격도 자기에겐 없다. 선택은 자신 스스로 한 것이니 그것도 다 자기가 껴안을 것이다. 다만 당신의 앞날에 대해서 전혀 대비를 못해주고 떠나게 된 것이 그저 미안할 뿐이다. 또 자기는 한번도 연이를 남의 새끼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으며 당신만큼 그 애를 사랑했다. 야속하겠지만 연이는 자기가 거두겠다. 자기도 아버지니까 평생 그 아이를 보살피겠다 그런 내용의 편지가 도톰한 돈봉투와 함께 놓여 있었다.

 

 

 해가 한 뼘이나 서쪽으로 기울었다. 영시암에 도착했다. 백담계곡이었다. 거기서부터는 계곡물을 따라 평탄한 오솔길이었다. 작벼리와 숲길이 교대로 나타났다. 숲길은 전나무 밑으로 나 있었으며 그 청량한 향기가 몸 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했다.

 물은 바위와 나무뿌리를 지나고, 때로는 깊게 용두리를 파기도 하고, ()에 한참을 머물다가는 수면에 늘어진 단풍나무가지 끝을 스치고 흘러 내려갔다. 울긋불긋 너겁이 뜬 소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

 “아마 요 며칠이 제 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아요. 바람이 이렇게 깨끗하고, 이 물 저 나뭇잎 하나하나가 경이, 그 자체인걸요. 그 동안 사람들은 얼마나 몽매하게 살았는지요. 자기 한쪽 편에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다니요. 측은하기두 하구.”

 그녀가 두 손으로 물을 떠서 공중에 휙 뿌렸다. 어질어질 얄랑거리는 소에다 영묵이 돌을 던졌다. 돌이 바닥에 가라앉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곧 이어 보그르르 물옴이 수면으로 올라왔다.

 언젠가 청양의 효은사라는 절에서 예니레 지낸 적이 있었다. 아들 현준이와의 그날 밤의 사건이 있고 난 후 신윤수는 학교를 사직했다. 그리고 나서 영묵은 극심하게 병이 악화되어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얼마 안 있어 그의 우격다짐으로 퇴원을 하고는 현준이를 데리고 정혜 스님을 찾았다.

 누나에게 아이를 떠맡기고는 다시 가방을 걸머지고 길을 나섰다. 어느 곳에서 술을 흠씬 먹고 쓰러졌다가 잠을 깨보니 절집의 한 요사였다. 절 옆에 맑은 소가 하나 있었다. 영묵은 날마다 그 소에 가 앉아서 술을 마셨다. 술 한잔 마시고는 돌을 던져 넣었다. 하루 종일 그러다 보니 더 이상 던질 돌이 없었다. 이번엔 흙을 한 줌씩 던졌다. 맑은 소는 흉한 흙감탕물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폐병장이라 꺼리고 있던 참에 그것도 절집에서 술을 마시는가 하면 그런 요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절측에서 어찌어찌 알아내서 데려가라고 집에다 연락을 했나 보았다. 누군가 흔들어 깨워 눈을 뜨니 아내 원희였다.

 아내는 그를 가까운 용인의 한 요양원에 입원을 시켰다. 돌아서는 아내에게 그가 말했다.

 “면회 오지 말아. 그래야만 내가 편해. 이젠 어긋난 레일을 바로 맞춰야 해. 왜냐하면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 짐이 무거워. 조금이라도 날 생각한다면 짐 좀 벗게 해 줘.”

 그녀는 펑펑 눈물을 쏟으면서 돌아갔다. 아내는 아들 현준이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영묵은 요양원에 오래 있지 않고 나와 버렸다. 보호자 동의 없인 불가능한지라 밤을 타서 탈출을 한 것이었다. 다음날 경찰관의 손에 이끌려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달포 후 그는 스스로 자청하여 요양원으로 돌아가겠다고 아내에게 청했다. 아내는 수소문 끝에 이번에는 영월에 있는 기독교 계통의 요양원에다가 입원을 시켰다.

 

  백담사가 가까워지자 숲속 빈 터에 차가 두 대 서 있었다. 벌써 세속의 냄새가 풍겨 영묵은 눈가의 주름을 잡았다. 산벚나무, 귀룽나무, 산뽕나무가 줄지어 있는 오솔길을 걸어 백담산장에 도착했다. 일차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예정대로 하면 여기서 다시 방향을 바꿔 대승령 쪽으로 가야 했다. 그러나 젊은 여자와 무 자르듯 이별하여 발길을 돌리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이미 그녀에게도 연()의 끈이 이어져 있었다.

 산장 마당에는 학생인 듯한 남자들이 셋 둘러앉아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절이 코앞에 있는데 고기냄새를 풍기고 있어 좀 언짢은 기분이 들었으나 염치없게도 고기냄새를 맡은 뱃속이 요동을 쳤다.

 “랜턴은 뭐하시게요?”

 매점 안으로 들어가 랜턴을 찾으니 젊은 여자주인이 물었다.

 “장수대로 갈려구요.”

 “곧 해가 질 텐데요? 아까 보니 비가 올 거라 그러든데……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하늘이 흐려 있었다.

 “여기서 주무셔야죠, 오늘?”

 주문한 라면을 먹으며 물으니 정용순이 고개를 끄덕이며 영묵더러 진짜 장수대로 가려느냐고 물었다.

 “가야죠, 가기로 작정했으니까. 아직 어두워지려면 시간도 남았고……

 그는 앞에 앉아 있는 젊은 여자 정용순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젠 작별이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두터운 인연을 이었다. 이제 그것을 잘라내고 각각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여태 수없이 많은 인연을 그렇게 맺고 또 끊어 왔다. 여자에게서 이젠 그 음습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여자와 헤어진다는 것이 조금 서운한 기분이 들어 그는 혼자 고소했다. 어느새 이 여자에게 미련이 생겼나.

 

 그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영묵은 몹시 흥분이 되었다. 육감대로라면 녀석의 디데이임에 틀림없었다. 날이 저뭇해지자 그는 미리 대문 앞에서 녀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녀석이 나오리라는 확신은 있으면서도 언제 나올지도 알 수 없어 초조한 심정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녀석이 드디어 대문을 나왔다. 종이 쇼핑백을 들었다. 예상대로 학교로 향했다. 굳게 처깔한 교문을 지나쳐 지난 며칠을 영묵이 몸을 숨기고 기다리던 담장의 바로 그 자리로 갔다. 그리고 미리 갖다 놓았는지 길섶에서 벽돌 몇 장을 주워다 디딤돌을 놓고는 사부랑삽작 담을 뛰어넘었다.

 어둠이 깔린 운동장, 시커멓게 선 학교건물, 약간은 으스스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으스스한 것은 아들놈이었다. 컴컴한 운동장을 겁도 없이 자박자박 걸어가고 있는 아들이 영묵에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무서웠다. 교활하고 무서운 녀석. 저것이 내 아들인가 하니 영 정이 떨어져 그냥 되돌아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교사 뒤로 돌아갔다. 작은 건물이 있었는데 불이 켜져 있었다. 그것이 숙직실임을 짐작했다. 안에서 비쳐 나온 불빛이 마당에 훤했다. 녀석이 그 불빛 한가운데 멈추더니 쇼핑백 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건물 모퉁이에 숨어 있느라 좀 거리가 있어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무슨 길쭉한 막대기 같은 것이었다. 그걸 땅에다 놓고 녀석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잠시 후 발자국소리와 함께 녀석이 숙직실 건물로 다가가는데 손에 기름통이 들려 있었다. 영묵은 신음했다. 아니 저거! 석유였다. 교활한 녀석. 녀석은 용의주도하게 미리 석유까지 준비해 놓았던 것이다. 지체 없이 석유를 벽에다 부었다. 비릿하게 석윳내가 코를 찔렀다. 영묵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그대로 달려나갔다. 녀석은 벌써 그 막대기 같은 것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끝에 솜뭉치를 감은 용지였다. 교활한 녀석. 아들놈은 정말 영악하고 교활한 녀석이었다. 그대로 녀석을 낚아채어 옆구리에 끼고는 어둠 속을 달렸다.

 

 정용순은 부처님께 절이라도 하고 오겠다며 백담사로 내려갔다. 가면서 그녀는 영묵더러 잘 알지는 못해도 참 깨끗하고 고아한 분인 것 같다면서 언제까지 맑은 심성을 잃지 말아달라는 작별인사를 했다. 하전하게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매점으로 되들어가 장수대로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었다. 여주인이 눈이 동그래지며 말했다.

 “정말로 갈라 그러세요? 하늘이 저렇게 껌껌한데. 금방 쏟아지겠어요. 글쎄요 저두 잘 모르겠어요. 요 위로 올라가면 계곡이 나오지요? 거기 어디쯤에서 개울을 건너는 데가 있다 그러든데요.”

 그러나 길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도에는 백담산장 지척에서 개울을 건너 대승령 장수대로 가는 등산로가 갈라지는 길목이 있는 걸로 돼 있는데, 몇 번이나 그 근방을 오르내리며 찾아보아도 그런 길목 비슷한 지점이 없었다. 계곡물만 그저 무심히 흐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날이 저뭇해졌다. 맥이 빠져 지벅거리며 산장으로 내려오는데 그예 비꽃이 떨어졌다. 산장에 닿았을 적에는 제법 빗방울이 굵어졌다.

 “아무래도 안되겠지요 비가 와서? 한바탕 푸지게 쏟을 것 같은데.”

 여주인이 얼굴을 내밀고 웃었다.

 

 아내 원희는 자기를 사이에 두고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연인 신윤수가 갑자기 두절된 것에 당황하고 어쩔 줄을 모르다가 석 달이 지난 어느 날, 사라진 그로부터 장문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 그 동안의 일을 세밀하게 적고는 죽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 그러지도 못한다고 하고, 평생을 기중이 형(영묵)에게 참회하며 살겠다, 너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형에게 지심껏 봉사하며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적었다.

 비로소 그간의 전말을 알게 된 아내는 거의 까무러치듯이 쓰러져서 통곡했다. 그때 영묵은 병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그날 밤 사건이 있은 후 아이는 말이 더 줄었다. 외가에 있으면서 하루에 서너 마디가 고작이라는 것을 장모님께 들었다. 영묵은 병원에서 나오는 길로 아이를 데리고 정혜 스님을 찾았다.

 정혜 스님은 미간을 찌푸리며 몹시 아파했다.

 “누굴 탓하겠니. 그게 전생의 업인 걸. 그 지실을 이제라도 다 받아둬야지 그걸 피하려다 보면 내생에 또 그걸 짊어지고 나오는 게야.”

 현준이를 정혜 스님, 아니 누나에게 맡기고 나오면서 얼마나 눈물을 쏟았던가. 나무관세음보살.

 

 비수기라 산장은 호젓했다. 연인인 듯한 남녀가 한 쌍 테이블에 앉아 라면을 먹고 있고, 마흔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빗발이 굵어졌다. 계곡 너머 맞은바래기에 뽀얀 비안개가 서렸다. 고즈넉한 가을의 저녁 풍경이었다.

 혼자 자작하고 있는 그 남자와 대작을 하고 몇 순배 돌았을 때, 문을 열고 몇 사람이 뛰어들어왔다. 아까 삼겹살을 굽던 학생들이었다. 고즈넉한 실내가 갑자기 깨어났다. 비를 흠뻑 맞아 입술이 퍼렇게 질린 채 몸까지 떨고 있었다. 산속의 기온은 차다. 빼꼼히 내다보던 산장주인이 작은 전기스토브를 들고 나와 꽂아 놓았다. 학생들이 스토브를 껴안을 듯이 다가앉았다. 그들의 등에서 김이 올랐다. 영묵이 그들에게 소주를 돌렸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허발들린 듯 단숨에 잔들을 비워냈다. 영묵은 백담사로 내려간 정용순을 생각했다.

 뒤에 도착한 두 사람과 모두 어울려 술을 마시다가 먼저 들어와 자리에 누웠다. 눈꺼풀은 게슴츠레 무거워지건만 정신은 오히려 말똥말똥 살아났다. 빗소리는 줄기차게 숲과 계곡에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죽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의미 있는 건 아닌가. 그럼 죽는 건. 아내는 어디 있을까. 아이를 정혜 스님에게 맡기고 나와 그 길로 영묵은 영월의 요양원에 들어갔다. 자청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백담사로 간 정용순이 궁금했다. 침낭을 걷고 휴게실로 나왔다. 남자들이 카드에 열중해 있었다. 주인을 불러 우산을 찾으니 살 두 개가 부러져 쓰나마나 한 낡은 접이우산을 내 주었다. 우비 두 장을 사서 하나는 자신이 걸치고 하나는 옆구리에 꼈다. 살 부러진 우산을 받치고 밖으로 나왔다. 빗줄기가 달려들었다.

 백담계곡은 비와 어둠뿐이었다. 그 속을 한 줄기 희미한 전짓불에 의지하여 길을 열었다. 개울 건너편에 사찰 불빛이 보였다. 정용순에게 어떤 미련이라도 있는 걸까. 억수 작달비를 맞으며 이 밤길을 걷고 있는 것은 무슨 심사인가.

 다리를 건너자 육중한 문이 가로막고 섰다. 금강문이었다. 허나 문 안에 금강역사는 없다. 허공에 대고 삼배를 올렸다. 그 다음은 사천왕문. 역시 문 안에 사천왕이 없었다. 또 허공에 대고 삼배.

 절 안은 어둡고 적요했다. 법당 보꾹에 헌등이 하나 희미하게 달려 있을 뿐이었다. 정용순은 어디에 있을까. 스님들 거처하는 요사체에 있을 리는 없었다. 혹시 하며 법당 측문을 열었다. 향내가 풍겨 나왔다. 은은한 촛불이 실내를 비추고 있고 그 한가운데 정용순이 앉아 있었다.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언제부터 저리 앉아 있었을까.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녀의 시선은 어디에 있는 것도 아닌 그저 그윽함 그것이었다.

 영묵이 서푼 들어가 측문을 닫았다. 요란하던 빗소리가 멀어졌다. 분명 인기척과 빗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여자는 역시 미동하지 않았다. 영혼은 어디 두고 빈 몸만 남은 듯했다.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으나 그녀의 조용한 자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깜빡 졸았나 보다. 누군가의 손이 어깨를 흔들어 눈을 뜨니 정용순이 허리를 굽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웃지도 않고 정색하지도 않은 무표정의 단아한 얼굴이었다. 바로 그녀 뒤쪽에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미타불의 얼굴을 닮았다.

 “여기까지 왜 오신 거예요?”

 정용순은 목소리까지도 단아해져 있었다. 그가 대답을 않자 여자가 웃었다.

 “여기 앉아 있으니까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어요. 아까는 절 구경만 하구 갈라 그랬었는데 법당 안에 들어와 보니까 아주 경건해지고 푸근해지는 걸요. 스님들두 그냥 놔두던데요, 가라고 내쫓지 않구. 시간 가는 것도 모르구 마냥 앉아 있었네요. 비가 와서 결국 못 가셨군요, 대승령으로 가신다더니.”

 아주 낮은 음성이었지만 아주 또렷하고 자냥하게 들렸다.

 “가을비 치구 많이 옵니다. 준이 엄마가 걱정이 돼서요.”

 그래서 이렇게 왔다는 뜻으로 말을 해 놓고 영묵은 어쩐지 겸연쩍은 느낌이었다.

 “밤공기가 쌀쌀한데 추우시죠?”

 “춥긴요, 이렇게 아늑하고 푸근한데요. 여태껏 사찰에는 여러 번 놀러 다니긴 했어두 이렇게 법당 안에 들어와 보긴 처음이에요. 원래 절집들은 무섭잖아요. 울긋불긋 단청도 그렇고 사천왕상두 무시무시하구. 그런데 이 법당까지 들어와서 부처님과 마주하고 있다니요, 후후.”

 밖으로 나왔다. 영묵이 내민 우비를 걸치고 여자가 기단 아래로 내려서서는 극락보전을 향해 합장을 하고 머리를 숙였다. 영묵도 나란히 서서 삼배를 했다. 요사 쪽에서 시끄럽게 풍경이 울었다. 수그러질 기미 없이 비가 퍼붓는 오솔길을 걸어 산장으로 되돌아왔다.

 

 자박거리는 발소리에 영묵은 눈을 떴다.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어딘가를 잠시 가늠하다 산장의 찬 마룻바닥임을 인지하고 나서 버릇대로 시계를 보려고 팔을 구부렸으나 깜깜한 어둠 속이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또다시 인기척이 있었다. 몸을 일으켜 침낭에서 빠져 나왔다. 찬 냉기가 등골을 파고들었다.

 문을 열고 휴게실로 나오자 밝은 불빛 아래 여자 하나가 오두마니 서 있었다. 정용순이었다.

 “웬일이십니까, 안 주무시고.”

 밝은 빛에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시계를 보았다. 다섯 시가 조금 안돼 있었다.

 “한밤중에 잠이 깼는데 통 잠이 안 와서요.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다가 하도 지리해서……. 비가 그쳤어요. 밤새도록 그렇게 쏟아지더니.”

 간밤에 자리에 누워서도 빗소리는 세찼다. 영묵 역시 쉬 잠이 들지 않았다. 이제 내일 새벽이면 정용순과도 헤어진다, 지금껏 늘 그래 왔듯이. 이제 그녀에게서 미련을 거두리라.

 영묵이 문을 열고 하늘을 보았다. 천지개벽을 하듯 내리 붓던 비가 깨끗하게 그쳐 구름 사이로 잔성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아주 가까이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군요, 별이 떴어요. 자연의 조화라니.”

 금새 잠기를 떨쳐내고 영묵이 영산이 오른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여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소지품을 한아름 안고 나왔다. 배낭을 꾸릴 셈이었다. 또 가야 하는 것이다. 나그네는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길 위에서 돋을볕을 받고 길 위에서 어둠을 맞는다. 그런 것이다. 나그네니까.

 여자가 우두커니 그가 짐을 꾸리는 것을 지켜보고 섰다.

 “가시는군요.”

 낮은 그 음성엔 아득한 슬픔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그가 여자를 찬찬히 보았다. 화장기 하나 없는 깨끗한 얼굴. 어제와는 또 다른 풀잎처럼 청초함이 있었다.

 “, 가야지요. 그게 내 일이니까요.”

 배낭을 다 꾸리고 나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여자는 말없이 그의 행동만 우두커니 지켜보고 섰다. 담배연기 너머로 그녀가 푹 고개를 수그리고 무슨 말을 할 듯 입술을 여짓거리는 것이 보였다. 침묵이 흘렀다. 그가 담배를 비벼 껐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그녀의 입에서 어렵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

 영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말을 해야겠는데 떠오르지 않았다.

 눈매에 애원이 서렸다. 영묵은 배낭을 멘 채 그녀의 눈을 가까이 내려다보았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날 겁니다. 좋은 인연이란 반드시 만난다고 하더군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예기치 않게 말이오. 불가에선 바람 같은 인연이라고도 합니다만,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그게 집착이 돼요. 그래서 괴로워하고 번민이 쌓이고. 저도 당신을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래요. 하지만 끈을 작위적으로 잇지는 맙시다. 억지로 끈을 이어 맺는 인연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움이라는 것도 사람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고통입니다. 지금 헤어지는 순간부터 당신을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당신도 그래야만 해요. 만날 거예요, 인연이라면. 그렇지 않다면 우린 인연이 아닌 거겠지요. 그러면 아파할 일도 없을 테고.”

 영묵이 손을 내밀었다. 한참을 그 손을 들여다보다가 그녀가 마주 손을 내밀었다. 차갑고 딱딱했다. 일부러 그녀의 눈은 보지 않았다. 손을 놓고 돌아설 때 흑, 한숨인지 슬픔인지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허무감.

 산장에다 무엇을 두고 오는가. 자꾸만 진한 슬픔이 따라오는 것 같아 영묵은 몇 번이고 뒤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애써 마음을 다잡고 앞만 보고 걸었다. 부옇게 동살이 잡히고 있었다.

 개울가에 도착했다. 그쯤 어디에서 대승령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했다. 어제는 못 찾았지만 오늘은 기필코 찾아야 했다.

 그러나 영묵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밤새 불어난 물은 개울 이쪽과 저쪽을 가없이 넓게 갈라놓고 있었다. 그는 망연하게 서서 거세게 소쿠라져 흐르는 물살을 바라보았다. 물은 하얀 포말을 뿜으며 거칠게 하류로 밀려 내려갔다. 바위들이 어울려 소를 이루고 있던 자위에도 화방수가 어지러이 휘돌다가는 역시 하류로 쓸려 내려갔다.

 차안과 피안. 건너편 기슭은 아득하게 멀었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듯 개울물이 수라(修羅)처럼 기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대청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도 벌창이 되어 그는 갈 곳을 잃어버린 듯 한참을 우두커니 섰다. 오후가 돼서 물이 빠진다면 혹 모를까 이제 열린 길은 용대리로 내려가는 길 밖에 없었다. 그새 사위는 밝아 있었다.

 영묵은 기스락 너럭바위에 앉았다. 상류에서 알싸한 바람이 내려왔다. 어디로 가나, 나그네는.

 엔굽이치는 물에 세수를 했다. 물 묻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꽤나 이지러진 달이 서남쪽으로 드티어 가고 있었다.

 문득 바지주머니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것을 꺼냈다. 종이쪽이었다.

 

  “아저씨, 큰일났어요. 여자가 물에 빠졌어요.”

 영묵이 진동한동 백담산장에 도착하자 산장 여주인이 안절부절못하며 마당에 바장이고 있다가 그를 보고는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 머리 속에서 지둥치듯 굉음이 울렸다. 어리친 몸을 가누기가 벅찼다.

 그 여자가. 준이 엄마 정용순이 물에 빠졌다! 자살이다!

 “우리 손님인 것 같은데, 여자손님은 두 분 밖에 없잖아요. 그럼 아저씨하고 같이 온……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 했다.

 결국 그런 것이었나.

 그렇게도 음습하게 냄새를 풍겨대더니 종래 맞이한 것이 결국 죽음이었던가.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습한 냄새가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나무 대세지보살.

 “자살입니까?”

 필요도 없는 말을 물었다.

 “모르겠어요. 자살이 아니라면 누가 다리에서 떨어지겠어요?”

 “다리요?”

 “저 밑에 절 다리요. 사람들이 다 그리로 갔어요.”

 속바람이 들어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절로 내려갔다.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어젯밤 법당에 경건하고 단아하게 앉아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수심교(修心橋)에 사람들이 숭숭대고 있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도 무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 서 있기도 하고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나 말이 없었다.

 “뭡니까?”

 영묵이 낯익은 산장 주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 여자분이 없어졌어요. 손님하고 온……

 산장 주인의 맥 풀린 대답이었다.

 “아침에 밖으로 나왔는데 그 아주머니가 이쪽으로 내려가시더라구요. 전 그냥 산책하러 가는 줄 알았는데…….”

 어젯밤 애인과 산장에 들었던 처녀가 자신의 죄인 양 굽죄여 떠듬거렸다.

 산장주인의 말에 의하면 절의 한 스님이 우연히 담 너머 다리 난간으로 여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크게 소리치면서 달려나왔지만 이미 여자는 몸을 던졌더란다. 다리께로 내달아 보니 여자가 물에 휩쓸려 꽤 멀리 갔다. 스님이 부리나케 안으로 들어가 구조대에 신고를 하고 산장으로 연락을 했다. 그리고는 몇 스님과 같이 개울을 따라 달렸다. 혹 바윗돌이나 나뭇가지에라도 걸릴지도 모를 일이어서 거기에 거는 한가닥 기대 외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물살이 세지 않아 중간에 바윗돌이라도 잡을라면 잡을 수도 있겠지만, 죽을라고 뛰어든 사람이니 뭐 틀린 것 같습니다.”

 산장 주인이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영묵은 다리 아래 거칠게 소쿠라져 흘러가는 개울물을 내려다보았다. 물살이 세지 않다고 산장 주인은 그랬지만 영묵이 보기에 물은 능히 사람을 쓸고 가기 충분했다. 그 위로 몸을 던지는 상상을 하자 선득 으등그러져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난간에 비겨 서서 천수경을 진언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사바하

 

 주머니에 손을 넣자 아까 읽고 급히 구겨 넣은 쪽지가 만져졌다. 정용순의 유서였다. 그녀는 어느 틈에 그것을 그의 주머니에 넣었을까.

 

 나는 떠납니다.

 사람으로 왔지만 결코 사람이지 못하고 먼저 인사드립니다.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결코 인간으로 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내 육신은 들판의 한 줌 흙이 되려고 합니다.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습니다. 다만 내 아이들.

 준이 연이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우리 인연이 너무도 짧구나. 제 한 몸 다스리지 못한 나는 너희들의 엄마 될 자격도 없는 여자다. 미안하다 정말.

 정말 미안하구나.

 부디부디

 -안녕.

 

 점심 때가 조금 지나 정용순의 시체가 구조대원들에 의해 건져 올려졌다. 수심교에서 오 리나 내려간 곳이었다. 사체는 처참하게 멍들고 찢어져 피투성이인 채로 담요에 덮여 길바닥에 놓여 있었다.

 멀찍이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영묵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다. 뭐가 그리 급해 서둘러 멀고 외로운 그 길을 떠났는가. 죽어야만 벗어지는 그 번뇌와 육신의 고통이란 무엇인가. 죽는다고 해서 홀가분하게 벗어지는 업장이 과연 있는지. 죽어 다시 난다면 결코 사람으로 나지 않겠다고 유서에 적었다. 사람의 한살이는 어찌 이다지도 모순과 고통 투성이더란 말이냐. 가엾고 덧없는 삶. 그리도 신산한 험로를 허위넘어서 인간이 종내 이르는 곳은 어디며 그 다음 육신은?

 

 제행무상 시생멸법 생멸멸이 적멸위락

 諸行無常 是生滅法 生滅滅已 寂滅爲樂

 영원한 것은 없어 나면 죽는 법

 삶과 죽음을 초월하면 곧 적멸에 이르나니.

 

 앰뷸런스가 빈 껍질만 남은 그 여자를 싣고 계곡을 내려갔다. 좋은 인연은 언제든 다시 만난다고 했거늘 이제는 죽어서야 그를 만나게 되는가. 영묵은 하얀 앰뷸런스가 저쪽 산모롱이를 돌아 사라지자 맞은바래기 위 하늘을 보았다.

 거기 검은 새 한 마리가 민천하늘로 날아올랐다. 독경소리가 들려왔다. 정혜 스님의 목소리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정혜 스님의 염불소리가 온 골짜구니 안에 은은히 넘치고 있었다.

 

  아약향도산 도산자최절 아약향화탕 화탕자고갈

  아약향지옥 지옥자소멸 아약향아귀 아귀자포만

  아약향수라 악심자조복 아약향축생 자득대지혜

 

 천천히 발길을 떼었다.

 성불하시이소.

 봉정암에서 헤어진 그 경상도 중년여자의 목소리가 귓전인 듯 명징하게 들렸다.

 

 선연하게 붉은 단풍이 산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래도 가을은 깊어 가고 있었다. .

 

 

 

 

'언니의 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련 곰탱이  (0) 2016.07.21
스카프  (0) 2015.11.16
깊어 가는 가을 (中)  (0) 2015.10.13
깊어 가는 가을 (上)  (0) 2015.10.13
외등  (0) 201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