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작은 혀를 냈다. 키스, 왜 사람들은 두 얼굴로 그렇게 하는가? (J. 조이스 / 젊은 예술가의 초상)
입술은 얇은 막으로 되어 있으니 남녀가 사랑을 나눌 때 여느 신체부위 말고 입술로 교감한다 했다. 말하자면 내부로부터 가장 가까운 입술을 통해 상대를 갈구하는 것이다.
첫 키스의 황홀을 기억하는가. 그녀 친구의 자취집 앞에서 친구는 먼저 들여보내고 어두운 골목 담벼락에 기대선 그녀에게 살포시 다가가 몸을 포개고 생애 첫 키스를 나눴었다. 설렘은 없고 그저 두근거림과 묘한 감촉만으로도 정신없었던 난생 처음 그 느낌.
나만 그런가. 다른 남자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이른바 딥키스라든가 프렌치키스 따위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입술을 맞대고 아주 부드럽게 비비거나 살짝 고개를 틀어 그녀 입술과 내 입술이 90도 정도 되게 밀착하여 입술을 오물거리는 게 좋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에 있는 그 포즈다.
여자들은 왜 감미로움에서 만족하지 못할까. 그녀들의 공통점은 혀를 쓴다는 것이다. 내 입술을 비집고 길게 혀를 들이미는 것이다. 가장 얇은 막인 입술보다 더 가까이 접촉하는 걸 원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들의 그런 습성을 타박할 건 못된다. 키스는 대개는 낮이 아니라 어둠이 있는 밤에 하기 마련이라 보통은 저녁밥을 먹은 후가 되겠다. 어금니에 음식찌꺼기들이 그대로 달라붙어 있는데 그녀들의 혀는 영락없이 입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면서 앞니 어금니까지 죄다 훑고 마는 것이다. 나 역시 당신만큼이나 적극적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똑같이 혀를 내밀어 대응해주긴 한다만 내 어금니의 음식물을 핥을 때는 정말이지 부끄럽고 민망해 죽겠는 거다.
그날밤 나는 두 여자와 키스를 했다.
하나는 글을 쓰는 여자다. 나이가 그만큼이나 되면서 그녀는 뒤늦게 성에 대한 호기심이 늘어가는 것 같다. 포르노에서 나올 법한 것들을 말하면서 사춘기 아이처럼 궁금해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설에 쓰고 싶다고 한다. 그렇지만 여태 그녀의 소설에서 성에 대한 짤막한 글귀를 읽어본 적이 없다. 아마 그녀는 정신적으로는 이제야 뒤늦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그녀가 그날밤 화장실 앞에서 내게 달려들어 키스를 했다. 술이 취하긴 했다만 술이 시켜서 그랬던 건 분명히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 사십이 넘었고 남편에 아이까지 있는 그녀지만 여전히 성장중에 있고 그래서 섹스와 키스 따위 리비도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았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나와 우리는 다시한번 입술을 나눴다. 첨보다 길고 깊은 키스였다. 죄의식 같은 건 없었다. 그녀는 천진스럽고 장난스러웠고, 외간남자와 뽀뽀를 하는데 너무나도 주저함이 없었으니까. 마치 딸아이가 아빠한테 달려들어 뽀뽀를 해대는 그런 모양새였으니까.
그리고 잠시 후에 나는 다른 여자와 키스를 했다. 예전에 아주 짧게 연애 비슷한 것을 했던 여자였다. 그녀도 어연간히 술을 먹어 정신이 흐트러져 있었다. 그건 술이 시킨 게 맞다. 역시 키스라기보다는 장난이라 할만 했다. 그냥 잊고 잘 지내자 응? 다 그런거지머. 뭘 잊자는 건지 몰라도 그렇게 흥얼거리면서 술냄새 고약한 입술을 내 얼굴에다 마구 찍어댔다. 이마에도 눈에도 볼에도 코에도 귀에도 또 입술에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저녁에 서로 다른 여자와 키스를 나눈 건 이상한 경험이었다. 설렘도 없고 감미로움도 없는 그저 치기어린 장난들이었음에도 나는 그날밤의 일이 오래도록 기억날 것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나는 애인과 헤어졌다.
늦봄의 나른한 일상처럼 심상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고 마는 에피소드였다. 특별히 욕망도 없고 설렘도 없었으며 또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도 없었다. 하루를 살면서 배도 안 고픈데 습관으로 꼬박 세 끼를 챙겨 먹듯이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일과 이상은 아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은 저 뒤편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날들이 아무 의미없이 다가오고 또 가겠지.
첫 키스의 신비와 황홀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다 그런거지머.
손 위에 하는 것은 존경의 키스, 이마 위에 하는 것은 우정의 키스, 뺨 위에 하는 것은 호의의 키스, 입술에 하는 것은 사랑의 키스, 감겨진 눈시울에 하는 것은 원망의 키스, 팔목에 하는 것은 욕망의 키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광기의 키스다.(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