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떨어진다. 계절은 또 가을 속으로 들어간다.
은행나뭇길이다.
언제부턴가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부쩍 많아졌다. 한여름의 무성한 녹음도 좋고 조락의 계절 내려덮이는 노란 잎은 더욱 좋다. 심신이 지친 도시인들에게 가을 은행잎은 센티멘털한 낭만과 혹은 슬픈 감성을 준다.
그런데 나는 도시마다 천편일률적인 수종이 못마땅하다. 각자의 개성과 지역적인 특성을 살린 가로수였으면 좋겠다. 가령 영동에 가면 감나무가 가로수다. 제주도의 후박나무라든가 종려나무가 참 근사하다. 부산의 동백나무도 그렇고 서산의 해당화도 그 도시만의 특색을 살려서 좋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고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고...
나는 뭐니뭐니해도 플라타너스가 제일 좋다.
회색의 건물과 포도, 매연과 먼지를 뒤집어쓴 사람들에게 심리적 물리적 안정을 주기 위한 게 가로수다. 그렇게 보면 플라타너스만큼 그 욕구를 충족할 만한 나무가 있을까. 그 넓은 잎사귀가 드리우는 그늘 밑을 걸어 여름의 낭만을 맘껏 즐긴다.
날씬한 날씬한 아가씨들이 정답게 정답게 손을 잡고서...
어렸을 적 내 나름의 이상형이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에 하늘색 플레어치마를 입은 목덜미가 뽀얀 여자. 남상한 검은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포플러 나무 아래 서서 웃고 있는 여자. 바람이 건듯 불어 상큼한 분냄새를 내게 보내는 여자. 그런 여자. 환상을 꿈꿨다.
포플러 나무 아래 나만의 추억에 젖네...
이상하게도 우리말이 있는데도 영어로 말하면 더 세련된 것처럼 느껴지는 말들이 있다. 버짐나무보다는 플라타너스가, 미루나무보다는 포플러가 왠지 더 근사한 것 같다. 그런 게 우리 일상에는 참 많긴 하다. 미장원보다는 뷰티숍이라 해야 더 장사가 잘된다나.
재작년 대전엘 간 적 있다. 11월 늦가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길 위에 수북히 쌓인 플라타너스 잎들이 얼마나 근사하던지 아직도 그 잔영이 남아 있는듯하다. 그날은 몹시도 우울하고 심란한 날이었다.
나는 지금 은행나뭇길을 걷고 있다. 아직은 파란 잎이다. 저 파란 잎이 다 떨어지고 나면 겨울이다. 입김이 허옇게 내뿜어지는 서늘한 저녁이면 바싹 마른 잎들은 발밑에 바스라지고 거리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무성한 잎을 달고 그늘을 지웠던 가로수 그 밑에는 포장마차가 두어 집 뽀얀 김을 올리면서 추위에 으등그러진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가난한 서민들은 다가오는 겨울이 을씨년스럽고 불안하지만, 포장마차에서 쓰게 마시는 소주 한잔에 삶의 고단함을 씻는다. 그들이 비척대고 돌아가는 어둔 하늘에는 앙상한 가로수 나뭇가지 사이로 푸른 별들이 박혀 있다.
나는 지금 은행나뭇길을 걷는다. 아직은 파란 잎이지만 곧 노오란 잎들이 거리를 덮을 것이다.
인간은 참 못된 종자다.
세상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 휘휘 늘어진 수양버들이 길가에 주욱 늘어서 있으면 멋지고 아름답지만 기실 버드나무는 물에 살아야 한다. 거기가 제자리다. 단지 인간의 이기를 위해 척박하고 삭막한 시멘트 위에 서 있는 그것들을 생각하면 나는 맘이 안 좋다.
어디 나무뿐이랴.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인간의 편리에 의해 질서를 잃고 뒤죽박죽 혼란스럽다. 자연의 질서는 한번 깨지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그걸 잘 알고 있는 게 또한 인간이건만.
나는 지금 은행나무 아래를 걷고 있다.
어둡다.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