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내원동의 밤

설리숲 2007. 9. 27. 13:31

 

 내원동 사람들. 그들은 자연인이다.

 주왕산 깊은 그곳. 그들은 산처럼 물처럼 살고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의 그것처럼.

 사치한 내 눈으로 보기엔 그랬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몹시 불편해하고 있었다.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하나 둘 이곳을 떠나 지금은 몇 집 남지 않았다.

 그래도 남은 사람들은 진달래 먹고 산나물 캐고 노루 꽁무니 쫓으며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자연인이다.

 몇 년 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만 해도 내게는 머나먼 문명 밖의 세상을 본 듯 신기한 체험이었다.

 욕심도 없고 부끄럼도 없이 그저 자연이 주는 것에 감사하면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들. 이 땅의 어느 곳에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었다.

 짧은 가을 해거름에 석양을 받으며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는 농사나 약초채취보다는 관광객을 상대로 하여 생활하지만 그래도 산골정취는 그대로 남아 있다.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관광객을 상대로 주류와 음료 따위를 판다.

 처음 왔을 때 내가 너무 어려 보여 대학생인 줄 알고 반말로 응대했다가 사실은 내가 두 살이나 더 연배라는 걸 알고 엄청 미안해하더니.


 밤이 또 찾아왔다. 깜깜한 밤하늘 수없이 많은 별들. 고개가 아프도록 젖히고 쳐다보노라면 그 별들이 내 얼굴로 쏟아져 내릴 것 같다.

 달 없는 하늘에 누가 저토록 많은 보석을 뿌렸나.

 어린 시절 쑥을 베어다 모깃불 피워 놓고 옥수수 먹으며 하늘의 별을 세던 밤들이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결국은 현기증이 나서 어찔하게 그만두곤 했던 밤들. 어른이 되어 쳐다보는 하늘은 왠지 서글펐다.

 세상은 슬픈 거란다.

 한없이 서럽단다.

 어머니의 음성이 은하수를 건너와 내 가슴에 내렸다.

 아 어머니. 나는 언제쯤 방랑을 멈출까요. 어제도 외로웠고 오늘도 혼자였습니다. 이제껏 살아온 날들이 내 가슴에 머물지 못하고 바람처럼 사라집니다.

 내일 또 강가를 홀로 거닐 겁니다 어머니.


 주인 부부와 밤늦게 막걸리를 마셨다. 뭐든지 지게를 지고 나가야 가져올 수 있다. 막걸리 한 통을 지고 오려면 땀을 한 되나 쏟으며 두 시간을 다녀와야 하는 곳. 그럼에도 막걸리 반 통을 작살내는 밤이었다.

 희미한 산막의 창에 별살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밤은 깊어 나그네는 깊은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 골짜기 가득 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2000년 가을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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