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똑같은 음악은 싫어

설리숲 2007. 11. 27. 14:37

 

 음악을 연주하려면 악보가 필요하다.

 이건 서양음악에 해당된다.

 국악엔 악보가 없다.

 정통 국악공연을 보면 연주자들은 악보 없이 자기만의 연주를 한다.


 음악에 악보가 필요할까.

 악보는 그저 작곡자의 편의상 있는 것이지 그걸 연주에 쓰라고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음악은 전승된다. 악보라는 게 없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수되고 계승되어 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배웠느냐에 따라 그 음악이 달라지는 것이다.


 만약 서양처럼 악보가 있다면 그 악보대로 연주할 것이고 그러면 백 사람이든 천 사람이든 모든 음악이 똑같을 것이다. 그 얼마나 건조하고 재미없는 일이냐. 그건 예술이 아니다.

 그럴 거면 뭐하러 비싼 돈 뿌려 가며 외국으로 유학을 갈까. 악보가 있으니 그것대로만 연습하면 되지.

 그러니까 음악공부를 한다는 건 악보에 없는 그 무엇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만의 음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창 천 선생님의 대금은  한결같다. 거의 실력이 안늘었다.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언제나 초보실력이다. 가끔 마야의 <진달래꽃>을 불곤 하시는데 작년이나 올해나 나아진 게 없다. 몇 번이나 걸리적 거리다가 겨우겨우 끝내곤 한다.

 "나두 개울가에 나가 폼 잡고 하고 싶은데요, 거기 가면 악보가 날려서 좀체로 그럴 수가 없네요"

 가끔 내가 개울가에 앉아 오카리나를 부는 것을 듣고 그녀가 하는 말이다. 

 

 대중 앞에서 연주를 할 때 악보를 펼쳐 놓고 한다는 건 성의가 없어 보인다. 그건 내 실력은 형편없는데다가 또 제대로 연습도 안했다고 광고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수없이 연습하고 해석하고 했으면 굳이 악보가 왜 필요한가.

 이런 서양 풍습에 멋을 느꼈는지 요즘 젊은 국악도들도 연주 때 악보를 펼쳐 놓고 연주하는 걸 본다. 뭐 자존심도 없이 그런 걸 다 따라하느냐 말이지.


 이효리가 <10 Minutes>를 부를 때 손에다 악보를 펼쳐들고 서서 노래를 한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음악은 예술이다.

 모든 예술가의 그것은 똑같을 수가 없다. 이효리도 무대에서 노래할 때는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춤이 달라지고 음색도 달라지는 게 아니냐.

 물론 립싱크를 안 할 때의 얘기지만.

 

 

 

비발디 플루트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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