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음악 이야기

머루랑 다래랑 먹고

설리숲 2007. 9. 20. 23:11

 

 청산에 살려면 머루와 다래는 꼭 먹어줘야 제격이다.

 이곳 스무골에는 다래덩굴이 엄청 많다. 많긴 한데 다래 열매가 열리는 덩굴은 드물다. 어쩌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덩굴을 발견하게 되는데 저 까마득한 낙엽송 꼭대기에 올라가 있어 도저히 따기 어렵다.

 나만이 아는 장소가 있다. 손만 뻗으면 되는 낮은 덩굴이고 이게 제법 오달지게 열린다.

 

 근데 무슨 조화일까. 9월 하순인데도 이게 물러지지 않는다. 원래 찬바람이 나면 약간 물러지고 따다 놓으면 며칠 후면 야들야들 달콤한 다래가 되는데 올해는 아직도 딱딱하니 영 소식이 멀다.

 “이노옴, 부랄이 얼마나 여물었는지 어디 좀 만져 보자~~”

 어른들이 꼬맹이 잠지를 만지듯이 오늘도 거길 가서 조물딱조물딱 만져 봤지만 역시 딱딱하다. 아마 열흘은 더 있어야지 싶다.

 열매라고 생긴 것 치고 다래만큼 달콤한 게 있을까. 먹을 것 부족하던 옛 시골에서도 가을철의 다래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을거리였다

 초군들이 나뭇단에 다래덩굴을 걸고 내려오면 비로소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것인데 자연환경이 변화해서 그런지 아직도 저 모양이다.



 그 다음엔 머루덩굴을 찾았다. 이것도 아직 새파랗다. 이것도 기상이변 탓인가 몰라.

 머루의 새콤한 맛이란 어디에도 비할 데 없지만 기실 이건 먹을 게 별로 없다. 껍질과 씨만 있지 포도 같은 과육은 전혀 없다. 감질나게 그 즙만 빨아먹는 건데 아마 그래서 더 맛이 있나 보다.

 먹을 게 없으니 술을 담가 놓으면 최고다. 술 좀 마신다는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게 머루주와 오디주라고 한다.

 올해는 나도 머루 몇 송이 따다가 술 좀 부어 놓을 요량이다. 여름철에 이미 오디주는 맹글어 놨으니, 술 한 고뿌 제대로 마실 줄 모르는 놈이지만 어디 나도 올 겨울은 한번 최고의 술로 똥폼 좀 잡아 보리.


 

            
                 흐르는 곡은 가사와 곡을 편곡 각색한 북한 가요다.


 민요 중에 신고산타령을 제일 좋아한다.

 신고산은 함경남도 안변의 면(面)으로 경원선 철도의 한 역이다.

 예전엔 고산이었는데 개화기 때 철도가 부설되면서 그 인근에 역을 개설해서 그곳을 신고산으로 명명했고 따라서 원래의 고산은 구고산으로 불린다. 타령에 “구고산 열두 고개 단숨에 올랐네” 하는 가사가 나온다. 바야흐로 개화의 문명이 소용돌이치는 시기의 정서를 잘 표현한 노래다. 고산 산골의 큰애기들이 너도나도 보따리를 싸서 고무공장엘 가는 부산한 시대였다. 통일이 되면 이 신고산타령의 발상지도 가고 싶은 곳 중의 하나다.

 원래는 '어랑타령'이지만 신고산이 우루루...로 시작되는 노랫말로 인해 신고산타령이로 부른다.


 삼수 갑산 머루 다래는 얼크러설크러졌는데

 나는 언제 님을 만나 얼크러설크러지느냐

 어랑어랑 어허야 어허야디야 내사랑아

 

 가을바람 소슬하니 낙엽이 우수수 지고요

 귀뚜라미 슬피 울어 고향 생각 나누나


 이곳 스무골 숲에도 머루 다래는 얼크러설크러지고 이 가을 나도 왠지 심사가 외롭다 크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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