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꺄'는 강아지 이름이다. 두 노인네가 돌아가시고 난 빈집에 새로 사람이 들었다. 늙숙한 내외분인데 이웃하고 살면서도 첫인사 외에는 한번도 말을 트지 못한 상태다. 내외분과 함께 강아지도 두 마리 식솔이 되어 왔다. 둘 다 하얀 백구로 크기가 한 놈은 한 사발 정도, 다른 놈은 두 사발 정도 되는 아직 어린 강아지다. 이름도 몰라 나는 그저 "야 시꺄!" 이렇게 부르고 있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그렇게 부르면 또 방울 달랑거리며 뛰어오곤 한다. 개 이름을 '한근'이니 '한사발'이니 '수육거리'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고 보면 '야시꺄'는 그래도 세련된 이름이 아닌가. 하루는 내외분이 골짜기를 내려가시기에 저녁이면 돌아오시려니 했다. 그런데 이튿날이 되어도 분들은 아니 오시고 빈집에 강아지 두 마리와 닭 네 마리가 비슬거리고 있었다. 그제야 강아지들이 어제부터 아무 것도 못 먹고 있다는 걸 생각했다. 어쩐지 녀석들이 자꾸만 나만 보면 달려와 다랑귀를 뛰더라니. 찬밥도 없어 일부러 밥을 지어 갔다 주니 아주 게걸스럽게 먹어 댄다. 그런데 이놈들, 이후로는 어떻게나 나를 못살게 구는지 성가셔 죽을 지경이다. 방문만 열고 나가면 냉큼 달려와 내 발에서 50센티도 안 떨어지고 줄곧 쫓아댕기는데 어느 땐 하도 귀찮아 저리 가라고 호통치며 발길질을 하면 아파 깨갱거리면서도 기를 쓰고 따라댕긴다. 나는 변소를 안 쓰고 숲이나 밭을 이용한다. 똥을 누려고 밭으로 나갈라치면 역시 놈들이 자꾸만 쫓아 오는 통에 그거 떼버리는 거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럴 때 또 한번 깨갱거리게 된통 맞기 일쑤다. 난 생각한다. 녀석들은 불안한 거다. 어느날 갑자기 주인이 자신들을 버리고 사라졌다. 생사가 달린 무서운 사건이다. 그러니 놈들은 어떻게든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저렇게 악착스럽게 달려드는 거다. 놈들에겐 내가 마지막 언덕인 셈이다. 나를 놓친다는 건 저들에겐 죽음보다 더 공포스러운 거다. 나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정 붙이는 걸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애완견이니 가축이니 하는 것들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혹 정이라도 들까 그게 두려워서다. 그렇지만 주인에게 버림받은 그 두 녀석들에게는 차마 정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일시적이지만 정은 당연히 들게 마련이다. 어쩌겠는가. 살아 있는 생목숨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으니. 또 저렇듯 불안해하고 있는 생명을. 주인 내외분이 돌아오셨다. '야시꺄'들에 대한 내 부양의무도 이젠 없어졌다. 그동안 쌓은 정이야 단숨에 무늘 수는 없을 게니 이제부턴 다시 정을 떼는 작업에 들어가려 한다. 또다시 멀어지기다. 내게는 이 '정떼기' 혹은 '멀어지기'가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진짜 나는 비정한 놈일까. 2005. 1.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