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하나 둘씩 빠져나가니까 맥빠지고 재미없다. 나두 가고 싶어져"
어느 아침 내 옆에서 식사를 하던 두공 님이 한 말이다.
거기에 별다른 대꾸는 안했지만 나, 속으로 이렇게 뇌까렸다.
세라비!(C'est La Vie)
그것이 인생!
여행후기를 쓸라치면 왜 꼭 人生을 들먹거리게 되는지 나 자신조차 모르겠다.
허나 어쩌랴. 여행이란 영락없이 人生 그것 아니던가.
14일이란 별로 길지 않은 여정을 지나는 동안 난 거기서 또 하나의 우리 삶의 여정을 보고 만다.
출발은 같아도 마지막까지 동행할 수는 없는 것.
길을 걷다 떠나가는 사람도 있고, 새로이 만나 합류하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마음 맞아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러다 다투고는 혼자 걷게도 되고……
그것이 인생.
그렇지요 두공?
부산이란 목적지에 닿기까지 숱한 애환이 있을 테고, 그 속에서 아름다운 연인도 탄생할 것이고, 숙소를 찾아 헤매는 땀의 노력도 있을 테고, 열의 처음에서 끌어 주는 길라잡이가 있는가 하면 맨 뒤에서 낙오하려는 이들을 건사해 북돋워 주는 봉사자도 있을 테고, 또 노정에서 마시는 한 모금 물의 달콤함.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삶의 종착지 부산의 바다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
중도에서 헤어져 간 사람들 역시 길은 다르지만 어차피 부산에 도착할 것이고, 그것도 아니라면 잠시 숨을 고르며 힘을 비축하고는 다시 한번 바다로 향해 가지 않겠는가.
그리고 바다를 본다.
쏟아지는 햇빛 불어오는 바람 망망한 대해.
더이상은 갈곳이 없다 제각기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밖에.
윤회(輪廻).
다시 출발하기 위해 우리는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모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세라비!
돌고 돈다 삶은 끝이 없다.
나도 정든 숲으로 돌아온다.
어젯밤,
유성우(遊星雨)가 내린다기에 웃통 벗은 그대로 마당에 나가 섰지요.
여름밤,
참 별이 많습디다. 은하수 물결도 보이고.
그런데 밤기온이 매우 싸늘했습니다.
몸이 오싹 추워서 쏟아진다는 유성우는 못 보고 그만 방으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습니다.
덥다 덥다 해도 어느덧 계절은 또 그렇게 왔는가 봅니다.
저녁에 어스름만 내리면 지천으로 귀뚜라미 울어대고 벌써 몸에 닿는 바람의 느낌이 틀립니다.
이번 도보여행으로 여름은 다 가버린 모양입니다.
숲은 여전히 고요하고 그윽한데 이렇듯 시간은 흘러가는군요. 가는 시간이 아쉽고 아까워 거꾸로 되돌려 다시 한번 그 길을 걷고 싶습니다.
내일부터는 지게를 지고 숲속으로 들어가 겨울땔감을 져 날라야겠습니다. 아직도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는 있지만 겨울이 먼저 오는 이곳 숲에서는 일찌감치 땔감을 마련해야 합니다.
더구나 올봄에 서울 살던 내 친구가 이웃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녀 것까지 마련하려면 올 가을은 내내 숲속에서 살아야겠습니다.
연을 맺었던 모든 님들,
남은 여름 마저 즐기시고 함께 했던 그 시간들을 영원히 가슴 속에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2004. 8. 13. 숲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