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내 마음의 버스

설리숲 2011. 6. 21. 20:21

 

 지금은 사라진 언니들.

 버스 안내양.

 70년대 어린 눈으로도 그녀들은 이 사회 밑바닥 인생이었다. 만원버스 발차 정지 은행 앞 나오세요 운전사한테 당하는 인간이하 취급들.

 

 스튜어디스.

 항공사 여승무원.

 내실이야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고 고급한 직업으로 인식한다. 실제로도 그럴 것 같다. 보수 좋고, 남들은 못 하는 여행도 하고, 곱게 단장한 외모와 복장 등 말 그대로 럭셔리한 직업인 것 같다. 그 직업을 꿈꾸고 선망하는 여성들도 많고 남자들에게도 그녀들은 하나의 로망이다. 단지 외모 때문이긴 하지만.

 

 

 70년대에도 스튜어디스 아닌 또 다른 로망이 있었다.

 고속버스 안내양.

 시내버스 안내양과는 급수가 달랐다. 글쎄 고속버스에 안내양이 왜 필요했는지 모르지만 아마 그때는 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시내버스도 지금은 모두가 자동화가 돼 있어서 안내양이 필요했을 것 같지 않지만 분명 70년대에는 그녀들의 일이 많았었다.

 난 어려서 한번도 고속버스를 탈 기회가 없었기에 예쁘고 몸매 잘 빠진 세련된 유니폼의 그녀들을 접할 기회가 한번도 없었다. 정말 내 경우엔 로망이었다. 이담에 커서는 고속버스를 많이 타고 다니자. 그 아름다운 여인들을 마음껏 감상하자. 그랬었다.

 

 

 그랬는데 내가 여행을 할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는 이미 고속버스 안내양이 사라진 뒤였다. 글쎄, 그녀들이 고속버스 승무원으로 동승해서 하는 일이 뭐였을까. 그 업무가 도저히 짐작이 안 된다. 관광가이드처럼 지역을 당도할 때마다 설명을 해 주었을까.

 어쨌든 어릴 적 로망으로만 간직한 채 영원히 예쁜 그녀들을 못 보게 된 건 심히 아쉬운 일이다.

 

 고속버스에는 예쁜 여승무원이 있듯 버스에도 급이 분명히 있다.

 여행이라는 걸 하면서 버스에도 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일반버스와 우등버스. 그리 멀리 떠나본 기회가 없기 때문에 우등버스는 말만 들었지 타볼 기회가 없었다. 그것도 일종의 로망으로만 있다가 어느 땐지 처음으로 그것을 타게 되었다. 지금이야 보통으로 TV도 설치되어 있지만 그때는 TV는 아예 없었다.

 우등버스는 차가 깨끗했고 좌석이 넓었다. 음 괜찮군. 무엇보다도 음악이 서비스 되었다. 각 좌석마다 이어폰이 있어 잭만 꽂으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처음 탄 버스에서는 세 채널이 있어서 마음에 드는 음악을 선택해서 들었었다. 와 그게 얼마나 신기하고 놀랍던지.

 근데 지금은 모든 게 더 좋아지고 첨단화 되었지만 오히려 그런 서비스는 없어졌다. 단지 TV 한 대 걸어 놓고 운전기사 맘에 드는 채널을 틀어 놓는다. 승객들은 좋아도 보고 싫어도 보고 그것도 싫으면 잠을 자지만 그마저도 시끄러운 TV소리 때문에 여의치가 않다.

 지난 봄 산청엘 가는데 그 버스였다. 얼마나 반가운지. 내내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여행길에 가끔 음악이 몹시 구쁠 때가 있다. 끽연가가 담배연기가 궁박하듯이. 그럴 때 나도 MP3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소싯적 기차간에서 옆자리 연인들이 듣던 미니카세트에서 들려오던 그 노래를 잊을 수가 없다. ELO의 <Midnight Blue>. 그때가 겨울이고 창밖엔 자욱이 안개 꼈었다. 여행자의 고독은 낭만적이기도 하지만 지독한 고통이기도 했었다. 그때 들려오던 그 노래에 나는 무한히 감동했고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비져 나왔던 것 같다. 그때 역시 나도 삼성 마이마이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가 마이마이를 가질 만큼 여유가 생겼을 때는 이미 그것은 새로운 기기에 밀려 점차 뒤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 MP3도 지금은 갖기를 원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더 좋은 기기가 나올 것이다. 70~80년대 보다 지금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고3때 수학여행길에 들렀던 죽암 휴게소.

 그땐 그 휴게소가 엄청 컸었다. 역시 여행의 기능은 새로운 문물을 보고 듣는 것이라 그것이 내게는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고속도로라 휴게소도 격이 다르구나. 고 3이라 해도 그땐 너무 어린 눈이었다.

 지금의 죽암 휴게소는 왜 그리 작은지. 부쉈다가 다시 작게 짓지는 않았을 테니 그때의 그 어마어마해서 세상에서 죽암 휴게소가 제일 큰 휴게소로 알고 있었던 그 상식이 너무 허무하고 초라하게 주저앉는 것이다. 고속도로에는 죽암 휴게소보다 큰 것들이 엄청 많다. 아니 실은 죽암은 작은 편에 속한다. 아, 허망한 진리여 믿음이여. 절대 지도자라고 믿었던 박정희의 실체를 알고 났을 때의 그 박탈감과 한가지였다.

 

 

 MP3를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안개 자욱한 어느 고개를 넘을 때 아련하게 가슴을 적시는 음악을 듣고 싶다. 젖은 안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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