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무작정 떠나기

설리숲 2011. 6. 26. 20:10

 

 매일의 똑같은 일상이 지루하고 따분할 때 훌쩍 가방 메고 떠나곤 했다.

 나의 첫 번째는 내 생활, 즉 나의 삶이었다. 직장은 내 삶을 위한 방편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문득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때 나는 무조건 떠났다. 어디쯤 가서 오늘은 못 나간다고 직장에 전화 한번 넣으면 그만이었다. 나의 성실함에 직장의 어느 누구도 나를 질책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은 나를 동정하며 잘 쉬고 오라고 격려해주곤 했다. 그러자니 평소의 직장생활은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조금도 빈틈없이 소화하기 위해서 나는 참말 열심히 성실히 일했다. 그러므로 내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단결근을 해도 그들에게서 불리한 대접을 받지 않았다.

 왜 바다가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막상 가면 기껏해야 30분도 못 버티고 만다. 바다 풍경이야 처음부터 매 한가지여서 해안에 서서 잠깐만 있어도 금방 싫증이 나곤 한다. 그런데도 내륙에 살다 보면 어느 때 그 바다가 몹시도 그리운 것이다. 그럴 때 가방을 꾸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떠나는 기분은 어찌나 설레고 두근거리던지. 회사 따위는 집어치라지.

 

 

 이제는 집어칠 직장도 없고 아무 때나 떠나도 되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여행에 대한 무한한 설렘이 덜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바다는 내 마음 속에 아련히 그리움을 쌓고 있다. 바로 옆 동네가 강릉이라 아무 때라도 힁허케 도다녀올 수 있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게을러져서 뭉그적거리기 일쑤다.

 갑자기 왜 한려수도를 떠올렸는지 모른다. 아무튼 게을러진 몸을 추슬러 남행버스로 그곳 여수를 다녀오고 말았다.

 

 

 

 

 

 

 뭐 그저 그런 유람선여행이었다. 나빴다는 게 아니라 애초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과 딱 부합됐다는 말이다. 늘 푸른 바다 뜨거운 여름날의 태양. 평일의 한산한 풍경들. 바닷가 특유의 갯내음들. 뱃머리에서 맞는 짭조름한 바닷바람. 그리고 사람들. 제각각의 사연이 숨겨져 있을 듯한 사람들. 어느 때고 경험해 오던 풍경과 감상들이었다.

 

 

 

 

 원래는 밤무대 뛰던 몸이었지만 이젠 나이가 많다고 불러 주는 데가 없다고,

 크루즈회사에서도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승객들 팁으로 연명한다고 희화해서

 유쾌하게 말하더니 속으로는 얼마나 쓸쓸할까 동정이 가던 분들.

 배에서 내릴 때 뱃머리에 나와서 승객들을 위해 섹소폰을 연주하고 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손까지 흔들어 준다. 공연히 가슴이 짠하더니...

 유람선 1층에서는 이 분들의 공연이 있었고 나는 쿵짝대는 밤업소 분위기가 싫어 2층에 있었다. 2층 TV모니터에서는 안드레 류의 공연실황이 나왔다. 내가 평소에 즐겨 듣던 안드레 류였다. 클래식을 대중화하는데 큰 공헌을 했고 상업적으로도 엄청 성공한 사람이다. 지금도 전 세계를 돌며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금세기 가장 인기 있는 예술가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두 분의 마지막 인사를 저토록 성대히 받고 나니 잠시라도 1층에 들러서 저 분들 공연 안 본 게 몹시도 죄송스러웠다.

 

 아무려나 아무 때라도 걸리는 것 없이 훌쩍 떠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고 스스로 자찬한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위 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