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숲/햇빛 속으로

폭풍 후에

설리숲 2005. 9. 7. 23:08

 

 천지가 개벽을 하듯 만물이 어지러웠다.
 용이 승천을 하듯 숲이 뒤집어졌다. 하늘과 땅이 분노해 만상을 집어 삼키려는가.

 내륙에 살 때는 이름만 들어 봤지 태풍이 뭐야 그저 바람이 쫌 세게 부는 거겠지.
 정선에 온 후로 세 번째 맞는 태풍.
 온세상을 찢어 놓는 강력한 폭풍 루사 매미 나비.
 이게 태풍이구나 자연의 위력이 이런 거구나.

 내 골짜구니도 어제 하루 엄청난 진통을 겪었다.
 폭풍 안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무탈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

 얼마나 소중한가 집이란...
 천지를 진동하는 바람 속에서 그렇게도 굳건하게 내 한몸 보호해 주는 집의 소중함. 허술하고 누추하기만 한 오두막이지만, 기껏 눈가림처럼 흙으로 발라 막고 얇은 창호지 한장으로 가려 놓은 오두막이지만 바깥세상과 안의 세상은 천국과 지옥 사이 그거다.
 바깥세상은 저리 휘둘리는데 나는 따뜻하게 불때고 들어앉아 오카리나 불고 앉았고(요거 상상해 보면 디게 웃긴 시추에이션이다)-


  그리고 고요한 세상.
 숲의 나무는 꺾이고 흙은 파이고 온통 상처투성이지만 이 고요한 평화가 다시 삶을 이어가게끔 위로와 안식을 준다. 지극히 평온하고 안온한 세상.
 나의 일용할 양식들이 다 떨어져 흩어져 버렸다. 개복상, 대추, 옥시기, 머루...
 그래도 전화불통된 것만 내놓고는 별다른 피해 없이 잘 끝났나 보다.

 오늘은 정선 장날, 폭풍 후의 장풍경은 어쩐지 한산하고 썰렁하다.
 그래도 이것저것 이고메고 나와 좌판에들 앉아 있으니 우리는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는 치열함을 본다.
 그게 인생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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